개똥참외

외통궤적 2008. 5. 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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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8.001020 개똥참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더라. 개똥참외 맡아 놓듯이. 개똥같이 군다. 개똥벌레. 심지어 개똥쇠란 이름조차 지어 부르는 이 낱말들은 바닥에 머무는 인생들이 늘 써대는 말이다.

 

사람이나 동식물에 '개'자를 붙여 이름을 천하게 부름으로서 일반적인 부류보다 하층임을 이르는 이 극단의 말속에 숨어 있는 의미는 용수철이 바닥을 치는 항변과 넘보지도 말고 근접하지도 말라는 경계의 나팔소리가 감추어진 말이다.

 

바닥에 사는 이들조차 애써 외면하여 떨치고자하는 몸부림이 담겨진, 더는 아랫말을 찾을 수 없는 말들이기도 하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엔 갓난아기의 이름을 개똥쇠로 짓는 일이 흔했던 것은 그 이름대로 천하니까 ‘염라대왕이시여 그냥 지나치십시오.’라는 애절한 호소의 뜻이 담겼을 것이고 혹 어린이들끼리 놀더라도 누구든지 귀히 여겨 불러주지 않기를 은연중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옛날에도 유괴의 걱정은 있었나보다.

 

어릴 때에 부모님을 따라서 바닷가 밭에 자주 갔었다. 그 밭에 갔을 때다.

 

인근에 참외밭이라고는 눈비비고 보아도 없는데도 조그맣고 노랗게 물들은, 아주 잘 익은 참외를 몇 개 따오셔서 밭머리의 샘물에 담가 놓았다가 주시는 아버지께, 그 참외를 받을 손이 나오기 전에 입이 먼저 열린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눈망울이 아버지의 능력에 감탄하며 넓은 들판이 온통 노란 참외밭으로 변하는 착시를 체험하며 ‘어디서 났어요?’ 물었지만 대답은 하얀 이를 드러내시는 웃음으로 끝이 나고 만다.

 

깎을 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입에다 가져가는 참외를 다시 달라하시고, 늘 준비하고 다니시는 망태 속에서 낫을 내시더니 마치 나무 깎으시는 것처럼 비껴서 껍질을 베낀 다음 한 입을 맛보신 후 건네주시고는 돌아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신다.

 

주시는 대로 받아먹는 시절이긴 했어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참외 맛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는 맛이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희역섬>의 푸른 소나무가 아버지의 넓은 시야를 오로지 한곳으로 모으는 유일한 표적이 됐다.

 

이 참외가 개똥참외인 것을 안 것은 훨씬 뒤이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시절이긴 했어도 ‘하늘에서 떨어진’ 그 참외의 맛은 내 입이 내 혀와 더불어 내 영혼의 찬미로 보증하고 있다.

 

그 참외는 신의 섭리와 또 다른 방법의 생육을 감당하시는 고마우신 어버이 사랑을 내게 가르쳐주신 큰 사건이었다.

 

사람이 섭취한 참외의 씨가 사람의 활동으로 폭넓게 퍼져서 배설되면 그 배설물을 다시 집짐승이나 새들이 섭취하여 산과 들로 넓혀서 배설하였을 것이고 사람은 또 어디서나 그렇게 자란 참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개똥참외는 이렇게 생육되는 것이리라.

 

모든 것은 가치가 있고 모든 것은 순수하고 모든 것은 존귀하다. 이 진리를 사람의 눈으로 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뿐이다.

 

어찌 되었건, 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그 ‘개’자가 붙은 참외를 먹은 덕으로 생각하면서 ‘개’자 붙은 모든 사물을 존귀하게 여기리라. /외통-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척도로 해서 남을 판단한다.(영국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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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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