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더라, 개똥참외 맡아놓듯이, 개똥같이 군다, 개똥벌레, ‘개똥쇠’란 낱말들은 바닥에 머물러 사는 무리가 늘 써 대는 말이다. 사람이나 동식물에 '개' 자를 붙여 이름을 천하게 부름으로써 일반적인 부류보다 하층을 이르는, 이 극단의 말속에 숨어 있는 의미는 용수철이 바닥을 치는 듯한 항변과 넘보지 말고 근접하지 말라는 경계의 나팔 소리가 감추어진 말이다.
바닥에 사는 이들조차 애써 외면하여 떨치고자 하는 몸부림이 담긴, 더는 아랫말을 찾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예전엔 갓난아기의 이름을 ‘개똥쇠’로 짓는 일이 흔했던 것은 그 이름대로 천하니까, ‘염라대왕이여 그냥 지나치소서’라는 호소의 뜻이 담겼을 것이고, 혹 어린이들끼리 놀더라도 누구든지 귀히 여겨 불러주지 않기를 은연중 바라는 마음이 그 이름에 담겨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옛날에도 유괴의 걱정은 있었나 보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바닷가 밭에 간 일이 있었다. 그 인근에 참외밭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데, 조그맣고 노랗게 아주 잘 익은 참외를 몇 개 따오셔서 밭머리의 샘물에 담가 놓았다가 주시는 아버지.
그 참외를 받을 손이 나오기 전에 입이 먼저 열린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눈망울이 아버지의 능력에 감탄하며 넓은 들판이 온통 노란 참외밭으로 변하며
‘어디서 났어요?’
물었지만 말씀은, 하얀 이를 드러내시는 웃음으로 끝이 나고 만다.
깎을 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입에다 드려 대는 참외를 다시 달래시고, 늘 준비하고 다니시는 망태 속에서 낫을 내시더니 마치 나무토막 깎으시는 것처럼 비껴서 껍질을 벗긴 다음 한 입 맛보신 후 건네주시고는 돌아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신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참외 맛,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는 맛이다.
바다 가운데 떠 있는 ‘희역섬’의 푸른 소나무가 아버지의 넓은 시야를 오로지 한곳으로 모으는 유일한 표적이 됐다.
이 참외가 ‘개똥참외’인 것을 안 것은 훨씬 뒤이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어린 시절이긴 했어도 그때 그 참외의 맛은, 내 입이 내 혀와 더불어 내 영혼의 찬미로 보증하고 있다.
그 참외는 신의 섭리로 또 다른 방법의 생육을 의미하고 고마우신 ‘어버이’ 사랑을 내게 가르쳐주신 큰 사건이었다.
사람이 섭취한 참외씨가 사람의 활동으로 인한 넓은 곳으로 퍼져서 배설되면, 그 배설물을 다시 개가 섭취하여 산과 들로 넓혀가서 배설하였을 것이고, 거기서 자란 참외를 사람이 맛볼 수 있는, ‘개똥참외’가 이렇게 생육 되는 것이리라.
모든 건 가치가 있고, 순수하고, 존귀하다. 이 진리를 사람의 눈으로 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뿐이다.
어찌 되었든, 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그 “개” 자가 붙은 참외 덕으로 여기고 ‘개’자 붙은 모든 사물을 존귀하게 여기리라./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