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느 만큼은 컸는지, 먼 곳에 모신 윗대의 시제 지내는 곳에 끼여 가게 되는 때를 맞았다.
작은댁 재종형은 아버지를 따라 더 먼 곳을 해마다 다녔지만, 아직 나는 우리 중시조 할아버지의 시제는 참례(參禮) 못 했다.
온 동네 일가가 모여서 법석대는, ‘매봉산’에 있는 '안염성'골에 해마다 시월이 되면 업히고 걸려서 가기는 했지만, 우리 가까운 집안끼리 지내는 시제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싸다니기를 퍽 좋아하는 내게 이 걸음은 재미있고 새 세상을 맞는 기쁨이다. 일러주시는 대로 꼬박꼬박 따라 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아내시고서 딸려 보내는 어머니의 손길이 내 머리에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발걸음을 띠었다.
난생처음, 먼 길을 떠나는 나를 오히려 앞장서게 한 것은 어른들의 뒤돌아보는 염려를 없애려고 하는 부추김이지만 나는 신이 났고 활개를 한껏 뻗었다.
하늘을 반쯤이나 가리고 높이 솟은 큰 산은 한낮인데도 벌서 검은 그림자를 우리 발밑에다 드리운다. 양지바른 '송방' 마을은 우리 동네에서 시오리나 떨어진 먼 곳이어서 간이학교(簡易學校) 가 있을 뿐이다.
마을을 지나서 어느새 학교 앞을 지나니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는 등 뒤에서 멀리 들리고, 오색으로 물드는 산골짝에 매달린 다랑논 벼 이삭의 메뚜기 떼가 우리와 함께 떼 지어 날아 옮겨간다. 산골에도 풍성한 가을은 어김없이 왔다.
허옇게 등걸만 남은 이름 모를 나무가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고 묘소의 평평한 둔덕 말고는 삼면이 급히 경사져, 밑은 천 야 만 야 깊은 골짜기 벼랑으로 떨어졌고 그곳으로 흐르는 실개천이 이따금 반짝일 뿐이다. 새소리조차 깊은 숲으로 잠겨, 그 속에 편이 쉬시는 혼령을 불러 우리를 알린다.
제사를 올리는 동안에도 내 눈은 발아래 펼쳐진다. 저 아득한 곳의 나무 위에 사뿐히 내려앉을 한 마리의 새를 그리면서, 날아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킨다. 그러면서 온몸이 자지러지듯이 조여들고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어머니 말씀은 까맣게 잊고, 잿밥 아닌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어느새 꼬치가 하나씩 나뉜다. 예까지 왔으니 당당히 내 몫도 있다.
한 꾸러미를 받은 나는 작은 배를 몇 개의 떡 조각으로 채우고서 나머지를 들고 또 발아래 깊은 곳을 내려 보면서 날개를 폈다.
떡은 적당히 큰 조각에다 무게도 내 손으로 쥐어 던지기 알맞은 무게다. 나는 힘껏 던져서 흰 덩어리의 포물선을 기분 좋게 관상하고 있다.
그리고 재차 던지려 뒷걸음질 칠 때 어른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어깨가 무겁게 당겨지고 앞을 가로막는 흰 두루마기가 펄럭였다. 귀중한 곡식을 아무렇게나 버리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 곡식은 이 할아버지이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그 흰떡이, 날개는 안 닳았지만 날아가서 어느 소나무의 햇순까지에 사뿐히 앉고, 이를 본 예쁜 때까치 한 쌍이 날아들어서 정답게 쪼아 먹을 것을 생각한다.
그 떡 한 쪽이 평생 내 마음속에 고운 새순을 돋게 한다. 그날의 꿈은 대자연을 접한 꼬마의 현실이었다.
꿈은 밤에만 꾸는 것이 아니라 생시에도 어디서나 꾸어지는가 보다./외통-
-근면이 집을 떠나면 빈곤이 창으로 들어온다.-밝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