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時祭 날

외통궤적 2008. 5. 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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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001010 시제時祭 날

나도 어느 만큼은 컸는지, 먼 곳에 모신 윗대의 시제를 지내는 데에 끼여 가게 되는 때를 맞았다.

 

작은댁 재종형은 아버지를 따라 더 먼 곳을 해마다 다녔지만, 아직 나는 우리 중시조 할아버지의 시제는 참례를 못했다.

 

온 동네 일가가 모여서 법석대는, 매봉산 너머에 있는 '안염성'골에 해마다 시월이 되면 업히고 걸려서 가기는 했지만, 우리 가까운 집안끼리 지내는 시제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싸다니기를 퍽 좋아하는 내게 이 걸음은 재미있고 새 세상을 맞는 기쁨이다. 일러주시는 대로 꼬박 꼬박 따라 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아내시고서 딸려 보내는 어머니의 손길이 내 머리위에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발걸음을 띠었다.

 

난생 처음 먼 길을 떠나는 나를 오히려 앞장서게 한 것은 어른들의 뒤돌아보는 염려를 없애려고 하는 부추김이지만 나는 신이 났고 활개를 한껏 뻗었다.

 

하늘을 반쯤이나 가리고 높이 솟은 큰 산은 한낮인데도 벌서 검은 그림자를 우리들 발밑에다 드리운다. 양지바른 '송방' 마을은 우리 동네에서 시오리나 떨어진 먼 곳이어서 간이학교가 있을 뿐이다.

 

마을을 지나서 어느새 학교 앞을 지나니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는 등 뒤에서 멀리 들리고, 오색으로 물드는 산골짝에 매달린 다락 논 벼이삭의 메뚜기 떼가 우리와 함께 떼 지어 날아 옮겨간다. 산골에도 풍성한 가을은 어김없이 왔다.

 

허옇게 등걸만 남은 이름 모를 나무가 군데군데 너부러져있고 묘소의 평평한 둔덕 말고는 삼면이 급히 경사저서, 밑은 천 야 만 야 깊은 골짜기 벼랑으로 떨어졌고 그곳으로 흐르는 실개천이 이따금 반짝일 뿐이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깊은 숲으로 잠겨들어, 그 속에서 편이 쉬는 혼령을 불러 우리를 알린다.

 

제사를 올리는 동안에도 내 눈은 발아래 펼쳐진다. 저 아득한 곳의 나무 위에 사뿐히 내려앉을 한 마리의 새를 그리면서, 날아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킨다. 그러면서 온 몸이 자지러지듯이 조여들고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어머니 말씀은 까맣게 잊고, 잿밥 아닌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어느새 꼬치가 하나씩 나뉘어졌다. 예까지 왔으니 당당히 내 몫도 있다.

 

한 꾸러미를 받은 나는 작은 배를 몇 개의 떡 조각으로 채우고서 나머지를 들고 또 발아래 깊은 곳을 내려 보면서 날개를 폈다.

 

떡은 적당히 큰 조각에다 무게도 내 손으로 쥐어 던지기 알맞은 무게다. 나는 힘껏 던져서 흰 덩어리의 포물선을 기분 좋게 관상하고 있다.

 

그리고 재차 던지려 뒷걸음질 칠 때 어른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어깨가 무겁게 당겨지고 앞을 가로막는 흰 두루마기가 펄럭였다. 귀중한 곡식을 아무렇게나 버리면 죄를 받는다는 것이고 그 곡식은 이 할아버지의 것이란다.

 

허나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그 흰떡이, 날개는 안 달았지만 날아가서 어느 소나무의 햇순가지에 사뿐히 앉고, 이를 본 예쁜 때까치 한 쌍이 날아들어서 정답게 쪼아 먹을 것을 생각한다.

 

그 떡 한 쪽이 평생 내 마음속에 고운 새순을 돋게 한다. 그 날의 꿈은 대자연을 접한 꼬마의 현실이었다.

 

꿈은 밤에만 꾸는 것이 아니라 생시에도 어디서나 꾸어지는가보다./외통-

 

 

-근면이 집을 떠나면 빈곤이 창으로 들어온다.-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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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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