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생활이 겨울철에는 여느 집과 조금 달랐다. 이는 여느 집 방의 세 곱이나 될 만치 넓은 안방에서 이루어진다.
방이 워낙 크다 보니 사람도 그만큼 많아야 훈기도 날 것이고 대화도 많아질 텐데 그렇지 못했다. 동생들 재롱을 함께 보고 즐겨 기쁨을 나눈다지만 주로 밤에 한자리에 모이는 이유는 밝기를 베푸는 전등 때문이다.
아홉 칸짜리 그 큰 집에 달랑 세 등. 칸막이가 없는 대형 방도 한 개의 방으로 쳐서 전등을 달아주니 전깃불의 혜택은 비교적 일찍 본 일정 때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턱없이 억울하다. 전깃불을 켜기 위해서 마음대로 줄을 매고 늘릴 수도 없고 옮겨갈 수도 없도록 엄중한 관리를 하던 때였다. 우리 집도 등수대로 돈을 내는, 일반 수용가일 수밖에 없었다.
영업집이 아니라서 계량기를 달기는 더욱 어렵다. 저녁 열 시만 되면 불은 저절로 가고, 그다음은 캄캄하다. 그래도 이런 전깃불일망정 전기가 있는 집은 저녁 한때만은 광명천지다.
여름 한철 전깃불 밑에 전기 없는 이웃이 모여서 저마다의 일거리를 매 만지는, 그런 이웃 간의 형편은 흑백 텔레비전 처음 나올 때와 비슷한 처지였다.
배 깔고서라도 책만 펴고 있으면 흰 이를 드러내시는 아버지의 기분을 내가 조금은 생각했으리라. 보기 싫은 책을 펴놓긴 했지만, 마음은 영 콩밭에 가 있다.
그 가마니 짜는 소리가 신명 나고, 해보고 싶은 일인데도 내게는 짧은 팔밖에 없으니, 억지를 부려봤자 소용이 없다. 주리만 틀린다.
쓱 사악 쿵, 쓱 사악 쿵, 이 소리의 박자는 베 짜는 소리와 같으나 그 음색은 판이하여서, 마치 베 짜는 소리를 바이올린 음색에 비한다면 가마니 짜는 소리는 첼로의 무거운 음색을 닮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두 가지의 작업을 동시에, 베틀의 북 놀림과 가마니틀의 바늘 놀림을 같은 박자로, 베틀의 ‘바디’와 가마니틀의 ‘바디’를 같은 박자로 맞추어서 작업을, 아니 연주한다면, 더해서 서로 반대되는 손놀림을 한다면 그야말로 절묘한 화음과 리듬이 어우러져서 요즈음처럼 양은 냄비, 젓가락, 수저, 옹기단지, 상머리 합주보다는 차원이 다른 가락이 됨직 한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으니 아마도 그 소리를 들어본 음악 애호가가 없거나 그 악기, 아니 그 틀을 만질만한 악사(?)가 없거나 해서 그렇지 않겠나 싶다.
베틀에야 못 앉아 봤지만, 가마니틀 바늘은 만져 봤으니, 연주가의 한몫은 단단히 할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무엇들을 하느라고 이런 음색과 리듬을 흘러 버리는지 일깨우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두 가지 악기는 세계에서 제일 큰 악기가 될 것 같으니, 이것이 또 우리 악기의 세계적 명물이 될 것이 아닌가. 아쉽다 아쉬워.
꿈 깨고서. 며칠을 억지 부리는데, 만류 차원의 증원으로 할머니까지 참여하셨으니 내 억지는 불통 고집이었나 보다. 말씀의 요지는, 네가 짤 가마니의 날이 될 새끼는 네가 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하면, 백번 옳은 말씀이었는데 그때는 왜 내가 새끼를 꼬아야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울며불며 몇 날 몇 밤을 서툰 손놀림으로 조금 조금씩 꼬았다. 하룻저녁 한 일이래야 겨우 새끼 몇 발이 고작이고, 짧건 길건 반드시 할머니께서 검사하시고 뭉쳐놓으신다.
성취의 그날이 왔다. 선반 위의 새끼 뭉치를 모두 내려서 가마니틀에 메이는데, 짜기도 전에 풀리고 터지고 하는데도 한 번 약속하신 말씀하신 내용들이니 중도에 팽개칠 수도 없었지만, 아들의 끈기를 인정이라도 하듯이 아버지는 인내로써 ‘바디’의 한 구멍 한 구멍에 내가 꼬아 놓은 새끼줄을 넣어 보지만 번번이 풀리고 끊어지는 데도, 다시 이어 붙이고, 꼬아 붙여서 잇고, 다듬으며 매어 틀을 끝까지 완성하셨다.
이제 바늘을 드는 방법과 짚 두 오리 밑 끝을 바늘 코에 접어서 ‘바디’를 틀어 벌어진 새기 줄 사이로 집어넣는 일, 들어간 바늘로 아버지가 반대편에서 메긴 짚을 바늘 코로 끌어당기는 일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데, 그 무거운 ‘바디’를 한참씩이나 올려 들고 계시면서도 즐거워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생을 짜는 기술을 가르치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으리라./외통-
-매일의 생을 한결같이 살자.-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