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땀방울이 솟구친다. 텃밭 울타리 밑 비름나물이 축축 늘어지는 여름날의 한낮엔 신작로를 나다니던 한량도 없고 바지게 얹은 지게를 지고 꼴 베러 나가는 머슴들도 안 보이는데, 활짝 열린 문틀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방마다는 텅 비어 죽은 듯 고요하다.
요란한 매미 노래에 맞춰 툇돌 밑으로 한 올 실처럼 줄지어 드나드는 개미 소리가 오히려 크게 들리는 듯하다.
삼베적삼 앞자락으로 솟은 땀을 훔치고 한 바퀴 집 주위를 휙 돌아보기는 했지만 놀아줄 사람 아무도, 매달려 떼쓸 그 누구도 없는 '꼬마'는 이웃집 텃밭 호박 줄기에 다가간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솜털이 간지럽게 난 꼭지에 매달린 애호박은 윤기가 흐르고 매끄럽다. 이 애증의 애호박 한 가운데 쇠말뚝이라도 박고 싶었다.
나와 함께 한 바퀴 돌아 들어간 부엌의 검은 낮, 냉수 한 바가지 들이키고 또다시 휙 집을 나가 강변으로 치닫는다. 거기에 넓은 내 터전이 펼쳐져 있다.
기적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열풍처럼 쏘다니는 내 발바닥에 모래알이 알알이 느껴지는 내 집 주변, 내 성장의 영양소인 흙냄새, 들릴 듯 말 듯 한 개울물 소리, 언제부턴가 서 있어서 고목이 되어 까치들의 놀이터가 된 앞집 감나무와 돌배나무, 일 년에 한 번씩 오디 따먹는 뽕나무, 이것들은 나의 성장, 마음의 양식이었다.
이제는 그 들판은 볼 수 없다. 지금은 오히려 그 나무들, 그 애호박이 눈감은 나를 지탱한다. /외통-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어렸던 시절이다.(쿠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