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나쁜(?) 버릇을 지금 와서 되새겨 생각하는 것은 그 버릇이 교활했다는 자책을 하면서부터다. 바로 그때 동생에게 옛, 그 일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만 있었다면 내 머리에선 이미 지워졌을 것이다. 육 십여 년을 가슴에 새기고 응어리진 채로, 이제까지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은 동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손이 내 등을 쓸어내리면 어김없이 잠이 들었다. 이런 나날이 어느 날부터 할머니의 손이 동생에게 넘어갔고, 이후 나는 조금은 성장한 탓이겠지만, 홀로 잠을 청해서 자야 하는 형편이 됐다. 궁리 끝에 한 꾀를 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아서 글을 모르는 동생에게 낮 틈을 타서 글 몇 자를 가르쳐주고 이 글을 익히도록 엄한(?) 다짐을 받아 놓았다. 그날부터는 할머니의 대리 역할을 동생에게 떠넘겼다. 동생의 숙제 검사는 잠자리에 들어 자면서 하기로 정했다. 손가락으로 내 등에다 한 글자를 쓰게 하여 맞으면 맞다 고,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쓰도록 하는데, 동생은 익힌 글자를 검사받으려고 진지하게 내 등허리를 ‘흑판이나 공책같이 생각하면서?’ 열심히 한자씩을 적는다.
맞다, 맞다, 맞다, 틀린다. 지우고 다시 써라.
내 말에 쫓아 동생이 보드라운 손바닥으로 내 등에 썼던 글자를 지우면 그 감촉이 할머니의 손길처럼 느껴지면서 내 소리는 점점 작아지며 먼 나라 여행을 떠난다. 동생은 반복하여 쓰다가 형의 반응이 없으면 스스로 합격했다고 만족하고 잠들었을 것이다. 매일 이렇게 함으로써 동생도 자랐고 나도 컸다.
이 잠버릇이 아직도 남아서, 지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잠을 청하고서 삼 분 안에 잠드는 버릇을 스스로 터득하였으니 그 방법은 이렇다. 자리에 누워서 엎드린 자세로 눈을 감고 고향에 간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우리 집 윗집을 그린다, 그 윗집을 그린다, 또 그 윗집을 그린다, 또 그 윗집, 기억해 낼 수 있는 대로 기억하려 한다. 그러면 대개 여섯 집을 못 넘겨서 잠들어 버린다. 즉 기억나지 않는 집들을 억지로 기억하고자 함으로서 결과를 반대로 이끌어 유도하는 꼴이다. 이 경우 아마 최근에 내가 보고 온 고향이라면 잠들지 않을 것 같다.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한 육십 년 전의 실상을 두고 고향을 더듬는 나의 그 짓을 참아 보기 싫은 할머니께서 나를 잠 들게 한다고 믿고 싶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