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 그 어원(語源)을 나는 아직 모른다. 마소(馬牛)의 여물 거리를 써는 연장이라고 풀이한다나?
틀림없이 소여물을 써는 칼이다. 늘 아버지가 짚을 먹이고 어머니가 칼의 디딤 목을 밟아 내린다.
작두날이 눈앞의 손등을 향해서 순식간에 내려칠 것 같이 입을 벌리고, 그 칼날 밑에다 짚을 한 옴큼 쥔 아버지의 양손이 놓인다. 한 치의 여유도 없어 보이는 볏짚 끝에 마음과 몸이 한 덩어리로 되어 집중돼 있다.
그것도 성에 안 차서, 작두날 안쪽으로 바싹 밀어붙일 때는 으레 있는 표정, 그 일과 일체를 이루는 양 그대로 일그러지며 하얀 이가 드러난다.
온 힘이 손목과 짚에 전달되는 듯, 팔뚝의 심줄이 튀어나오며 왼쪽으로 몸이 기울고, 오른발의 뒤꿈치가 약간 들리면서 바닥을 힘 있게 밀어낸다.
발판 위의 어머니 발은 아버지의 손등을 찍어 내릴 것처럼 힘차게 내리밟는데, 싹둑 잘려 나가는 소여물 짚에 아버지의 손가락도 있을 것 같은 두려움마저 있어서, 나는 소스라친다.
가슴이 쪼그라드는 듯, 가슴에 주먹을 얹어가면서도 똑바로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내 가슴은 새가슴이 된다.
두 분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숨결이 같아야 하고 응시(凝視)의 초점이 같아야 하는, 손을 작두 밑에 집어넣으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은 어쩌면 내 손이 모두 잘려 나갈 수도 있는 공포의 작두날임에도 믿음과 사랑으로 그 일을 완성해 나가신다.
이 공포를 믿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 공포와 믿음이 교차하는 접점과 순간의 산물이 고작 소가 먹는 여물이란 말인가? 두려워 당황하기만 하던, 내 어린 한때의 추억이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믿으셨다. 그리고 나를 작두 디딤 목 위에 올려세웠다. 두말없이 올라서는 나를 보시고 대견스럽게 여겼고, 나 또한 한 번도 아버지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늘 하던 순종만이 내가 해야 할 태도, 그 전부였다.
어쩌면 자식이 밟아 내리는 작두 칼날에 아버지의 두 손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기의 두 팔을 아들의 작두 칼날 밑에 서슴없이 내밀 채비를 갖추신다.
딛는 데 따라서는 여물 짚 길이의 곱절이 넘는 너비를 작두날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원시적 기구임에도 아들의 정신을 믿고 또 그 아들의 행동에 아버지 스스로 도취하신다.
온 정신을 쏟고 힘을 다하여 첫 번째 작두를 내리 디뎠다. 무사했다. 정신을 놓치지 않고 내 발을 아버지의 양손 반대쪽으로 밀면서, 매회 마다 같은 방법으로 디디면 됐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신뢰가 나를 한순간에 훌쩍 키웠다.
그렇게 해서 자라갔다.
귀한 대(代) 이음 응석받이를, 그렇게 행동으로, 본으로 보여 키우셨다.
그러나, 그러나, 이젠.
아버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외통-
마음을 빼앗기면 눈은 아무것도 못 본다. (영국 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