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질 첫날

외통궤적 2008. 5. 27. 08:41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507.0000816 작두질 첫

작두. 그 어원을 나는 아직 모른다. 마소의 여물거리를 써는 연장이라고 풀이한다나?

 

틀림없이 소여물을 써는 칼이다. 늘 아버지가 짚을 먹이고 어머니가 칼의 디딤 목을 밟아 내린다.

 

작두날이 눈앞의 손등을 향해서 순식간에 내려칠 것 같이 입을 벌리고, 그 칼날 밑에다 짚을 한 옴큼 쥔 아버지의 양손이 놓인다.

 

한 치의 여유도 없어 보이는 볏짚 끝에 마음과 몸이 한 덩어리로 되어 집중돼있다.

 

그것도 성에 안차서, 작두 날 안쪽으로 바싹 밀어붙일 때는 으레 있는 얼굴 표정이 그 일과 일체를 이루는 양, 그대로 일그러지며 하얀 이가 드러난다.

 

온 힘이 손목과 짚에 전달되는듯 팔뚝의 심줄이 튀어나오며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고, 왼발의 뒤꿈치가 약간 들리면서 바닥을 힘 있게 밀어낸다.

 

발판 위의 어머니 발은 아버지의 손등을 찍어 내릴 것처럼 힘차게 내리 밟는데, 싹둑 잘려 나가는 소여물 짚에 아버지의 손가락도 있을 것 같은 두려움마저 있어서, 나는 소스라친다.

 

가슴이 쪼그라드는 듯, 가슴에 주먹을 얹어가면서도 똑바로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내 가슴은 새가슴이 된다.

 

두 분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숨결이 같아야 되고 응시(凝視)의 초점이 같아야 되는, 손을 작두 밑에 집어넣으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은 어쩌면 내 손이 모두 잘려나갈 수도 있는 공포의 작두날임에도 믿음과 사랑으로 그 일을 완성 해 나가신다.

 

이 공포를 믿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 공포와 믿음이 교차하는 접점과 순간의 산물이 고작 소가 먹는 여물이란 말인가?

 

두려워 당황하기만 하던 내 어린 한 때의 추억이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믿으셨다. 그리고 나를 작두 디딤 목 위에 올려 세웠다. 두말없이 올라서는 나를 보시고 대견스럽게 여겼고, 나 또한 한 번도 아버지 말씀을 거역한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늘 하던 순종만이 내가 해야 할 태도, 그 전부였다.

 

어쩌면 자식이 밟아 내리는 작두 칼날에 아버지의 두 손이 없어질 수도 있다.

 

허나 아버지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기의 두 팔을 아들의 작두 칼날 밑에 서슴없이 내밀 차비를 갖추신다.

 

딛는데 따라서는 여물 짚 길이의 곱절이 넘는 너비를 작두날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원시적 기구임에도 아들의 정신을 믿고 또 그 아들의 행동에 아버지 스스로 도취하신다.

 

온 정신을 쏟고 힘을 다하여 첫 번째 작두를 내리 디뎠다. 무사했다.

 

정신을 놓치지 않고 발을 한쪽으로 밀면서, 매 회마다 같은 방법으로 디디면 됐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신뢰가 아들을 한 순간에 훌쩍 키웠다.

 

그렇게 해서 자라갔다. 귀한 대 이음 응석바지를, 그렇게 행동으로, 본으로 보여 키우셨다.

 

아버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외통-

 

마음을 빼앗기면 눈은 아무것도 못 본다.(영국격언)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깃불2  (0) 2008.05.29
가사보조  (0) 2008.05.28
제삿날  (0) 2008.05.26
성묫길  (0) 2008.05.25
생명1  (0) 2008.05.25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