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골 어디에 가나 사람이 있는 곳이면 전기가 가설되지만 '일정(日政) 때 전깃불이 켜는 시골은 극히 드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동네는 전깃불 덕을 볼 수가 있었는데도 우리 집은 새로 지은 집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한동안 남폿불로 지냈다.
일상 일과는 낮에 이루어지니 밤은 밝기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 겨울밤은 새끼꼬기, 여름 밥은 감자 깎기가 고작이고, 나머지 시간은 내일을 위한 휴식이다.
이런 생활이 일상이니 내가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하는 것은 낮에 해야만 하는, 그야말로 자연 순응의 규칙 생활이다. 그렇던 일상이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생활 흐름이 달라지고 내 일과도 변했다.
밝은 전깃불 방에서는 누구든지 전등 밑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랬다. 더구나 일에 대해서만은 뒤지기 싫어하시는 우리 부모님의 성미가 이 좋은 기회를 흘러버릴 턱이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밤공부를 하고 싶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때는 방이 작거나 크거나 한 방에 한 등만 다는, '전깃불 규정'이니 보통 방의 두 배가 넘는, 두 칸 너비 우리 집 큰방의 윗목에 놓인 내 책상까지 밝힐 수는 없다.
전등은 내 책상 오른쪽 아랫목 한가운데에 달려 있으니 내 팔 그림자만 길게 늘여 책장을 가릴 뿐인 데다 막상 불빛이라고 비추는 자리도 남폿불 정도의 밝기뿐이다.
그런데 방 전체가 같은 밝기로 어두우면 될 테지만 등이 꽃인 바로 밑에만 밝으니 나는 이게 불만이다. 방의 밝기가 고르지 않으니, 시계(視界)의 혼란은 더하여 환한 쪽에 마음이 가며 신경 쓰이고 짜증스럽기 그지없다.
'전등갓'을 사다 끼워도 소용없다. '전깃줄'을 늘여 끌어 달자니 줄도 구할 수 없고, 더구나 '쌍소켓'을 끼워서, 줄을 매서 등을 하나 더 달면 되련만 그때는 집집이 ‘등 수제’로 요금을 받으면서 전기의 부속품은 철저히 통제하던 때니까 그것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파는 가게도 없다. 그렇거니와 조금이라도 줄을 늘이거나 등을 더 달거나 촉수를 늘이다 들키면 엄한 벌, 즉 전기를 끊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이런 것을 뻔히 아는 우리, 모두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밝기의 조절 면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공부할 때마다 책상을 옮겨 놓는 번거로움도 문제지만 불 밑에서 잔일을 하시는 어머니의 형편도 새겨야 하므로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동네의 한 분의 말씀을 우연히 들었다. 전기의 세기가 별것이 아니라서 손으로 만져도 죽지 않고 그냥 견디어 낼만 하다는 것이다.
내게는 기쁜 소식이요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된 정보였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주물러보고 싶다. 호기심과 배짱이 은근히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뒤 마음을 정하고 이어 일을 저질렀다. 허용된 전기용품의 구매 범위는 오직 전구와 갓뿐이다. 그 밖의 모든 부품은 통제하는, 폐쇄 시기인데도 내 야무진 꿈은 현실로 옮겨간다.
가게에서 실 같은 가느다란 구리철사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사고 전등을 하나 사서 공사를 시작했다.
모든 일은 집안 어른들 모르게, 빈집을 틈타서 조금씩 가설하였다. 가설이 아니라 벽지 밑에 묻는 매설이었다.
칼로 긋고, 오리고, 그 자리를 흠내어 줄을 깔고 다시 벽지를 붙인다. 천장에도 이렇게 한 다음, 내 책상 위 벽에는 못을 두 곳에 하나씩 박았다. 그 못에다 각각의 줄을 감쪽같이 감아 맸다. 음, 양 두 줄을 이렇게 '매설(?)'했다.
줄 깔기의 모든 과정은 완벽히 끝났다. 이제 ‘두꺼비집’을 열고 결선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전깃불을 밝히려면 등을 달아야 하지 않나. 전구(다마?)에는 줄을 맬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소켓’도 구할 수 없으니 전기 등에다 바로 연결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는 며칠을 궁리 끝에, 전구 꼭지의 납을 칼로 긁어서 등속으로 들어가는 짧은 구리 선을 펴서 아주 작은 고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토막 철사를 이 전구 선 고리에 걸고 조였다. 그런 다음 한 뼘 길이에서 못에 걸리도록 고리를 만들었다. 다른 한쪽의 도선은 그냥 전구 겉의 등 나사에 얽어맨 다음 한 뼘 길이에서 걸 고리를 만들었다.
누가 방에 들어와 보아도 방안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내 책상 위 벽면의 눈높이에 못이 나란히 두 개가 박혀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낮에는 가려놓는다. 못을 시험지로 가려놓든지 시간표를 걸어놓든지, 하여간 무엇인가를 걸어놓으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두꺼비집을 열어서 전기를 차단하고 아랫목 천장 위의 전깃줄 꼭지를 틀어 열고 나무판 속으로 철사를 끌어대 이었다. 이 철사는 너무나 가늘어서 앞니로도 얼마든지 끊긴다.
내 이빨은 칼날 같아서 지금도 무섭게 날카롭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무서운 짓을 서슴없이 이룩했다.
두꺼비집을 닫고 전등을 살며시 못에다 걸었다. 백열등의 니크롬선이 아래위로 삐쳐지면서, 오리발 갈퀴 모양의 발간 줄이 달아오르며 빛을 발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된 내 책상 위의 등을 바라보는 내 기분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한쪽 못에 한 손가락을 대고 다른 못에 다른 팔 손가락을 멀리서 가까이, 점점 가까이 가져가면서 전기의 흐름도 느껴 보고 세기도 가늠해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만용이었다. 무식(無識) 소치(所致)였다.
그날 저녁, 나는 일장의 극적 효과를 노릴 양, 어둡기를 기다려서 감추었든 전기 등을 꺼내서 못에 걸었다.
일시에 두 배로 밝아진 방안, 온 식구들의 기쁨으로 더 밝아지는 듯했다.
잠시 후 이 기쁨은 걱정으로 반전되고, 방안은 다시 어두운 기류가 전등의 밝기를 압도하여 내 눈은 다시 예전의 어두움으로 되돌아갔다.
물리적 밝기는 심리적 어둠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무리 밝게 보려 해도 책은 여전히 어둡게 보였다.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 집은 특별증설신청을 해서 한 등을 늘려 달게 됐다. 이때의 밝기야 말로 온 집안의 웃음의 밝기와 버금갔다. /외통-
과일을 얻으려는 자는 과일나무에 올라가야 한다. (T.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