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집

외통궤적 2008. 5. 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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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000826 불탄 집

'쌍가마'네 집 아래쪽의 타지 않은 양철집은 마치 쑥밭 한가운데 피어있는 해당화 같았다. 빨간색 지붕이 불을 이고 견뎠는지, 이웃의 잿더미를 멋스러운 배경으로 삼으려 했는지, 유독 빨갛게 고고히 서 있다. '쌍가매(마)'네 집과 우리 집 사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집이다. 기와, 흙, 양철의 불연성재료의 영향일 것이다. 아무튼 훗날 불탄 집들은 새 짓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으리라.

재앙의 그날, 바람은 불을 이고 하늘을 날아 집집이 떨어뜨리는데 양철집은 지붕 위에 떨어진 불덩이를 잡아먹었는지 집은 아무 탈 없었다. 오히려 양철 지붕이 받아내는 불똥이 다시 바람을 타고 다른 집에서 되살아났을 것이다.

시야는 사방으로 휑하게 트여있고, 드문드문 서 있는 뽕나무 울이 뉘 집터인지를 가늠하게 할 따름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쌍가마'네 집까지 답답하게 가려져 거치적거렸든 장애물, 그 집들은 일시에 사라졌다. ‘쌍가매’는 양철집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내가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불러도 '쌍가매'는 곧 튀어나올 것만 같다.

변해있는 이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맑은 하늘을 보고, 또 보고. 했지만 나로 인한 결과라거나 잘못했다는 죄의식은 전혀 없었다. 천진. 그것 일뿐이다. 다만 불의 조화를 깨달았다. 엄청난 재앙도 어른들 것이지 내게는 한낱 놀이터일 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매일의 변화를 흥미를 더해보며 쇠붙이를 주워 날랐다. 보이는 것은 오직 쇠붙이뿐이다. 그것도 호미나 삽이나 괭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신성한 것이요, 이를 손댄다는 것은 부정한 짓으로 여겨 피하고, 작대기로 잿더미를 저어서 타버린 못이나 철사(鐵絲)를 주어서 호주머니에 넣는 게 고작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모르겠다.

타다 남은 나무 동강이 더 흥미 있을 뿐이다. 쓰임새,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다. 그야말로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든가, 집집이 집터 닦기가 한창이다. 혼이 나가서인지, 어른들의 호통에 기죽어서인지, 집짓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집 밖을 못 나오는 또래, '정환'이와 '쌍가매'가 놀아 줄 때까지, 내 철사 못 줍기는 계속됐다.

바가지에 담긴 불탄 못은 훗날 헛간과 돼지우리, 뒷간을 짓고 피죽을 붙일 때 유용하게 쓰였다.

재활용과 자원의 효용가치를 일찌감치 터득한 나는 일 후 무엇이든지 모아 두는 버릇이 스몄다. 더욱 요새 애들이 기절하는, 나의 버리지 않는 습성이 이미 그때 배어 고질(痼疾)이 됐다. 개미의 근성인가. /외통-



만물은 변화한다. (마르쿠스 이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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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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