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농사철이 되려면 얼마간 더 기다려야 한다.
군것질이 끊이지 않았던 겨우내 파먹은 감자 구덩이도 깊어졌고 철 맞춰 볶아먹던 콩 맛도 눈 녹은 들판의 쑥 잎에 기운을 빼앗겼는지, 영영 맛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밖에서 만나는 동네 아이들의 입가는 황갈색으로 칡 물이 들어있다. 칡 토막을 들고 연신 입으로 가져가며 길바닥을 어슬렁거린다.
따뜻한 봄날이다.
입이 심심하여 집안을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이 칡뿌리 씹는 아이를 보고서 내 마음이 동했고, 지금 산언저리 언덕 위에 올랐다.
그늘진 북향 언덕의 가슴은 흰 눈을 안고 있다. 푸른 소나무 숲의 그늘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골짝 물을 건너왔다. 바람은 쉼 없이 양지쪽에 기대 누운 벌거벗은 산자락의 빨간 흙을 땅속 얼음에서 건져내고 지나간다. 뒤이어 따라온 돌개바람은 보드라운 이 황토 한 알 두 알 언덕 밑으로 굴려 가면서 노란 콩고물을 만들어서 봄을 쌓아간다.
무언가 얻으려고 괭이를 들고 튀어나왔다. 하지만 산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득 될 것이 없는, 푸른 소나무와 말라빠진 갈나무와 쓰러진 잡초뿐, 황량(荒凉)하기 그지없는 골짝일 뿐이다.
이런 산에 온 사람들은 내남없이 괭이를 들었다. 여기저기에 뭉쳐 웅크리고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은 칡을 캐려는 사람들이다. 엎드린 이들이 녹지 않은 눈덩이같이 드문드문 희게 보인다.
땅 밑에 있는 칡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토양을 보고 안다는 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이전에 산을 오르내렸을 뿐이다. 처음 칡을 캐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도 자주 하다 보면 이골이 난다는 말을 경험이 있는 친구들로부터 얻어들은 터라, 그냥 짐작으로 이곳에까지 오긴 했다.
모든 식물의 뿌리가 비슷하겠지만 흙이 깊고 바위가 있으면 그 칡은 무척 크고 길며 많은 살을 담고 있다. 이것은 섬유질이 많아서 씹을 때 물이 많이 나오지만 가루는 없다. 맛 또한 달다. 그러나 더러는 쓴맛을 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땅이 썩은 바위같이 깊이가 얕은 사질토이면 여기서 자란 칡뿌리는 작지만 알차고, 물이 적고 달며 가루가 많아서 요기로도 될 만큼 먹음직스럽다. 또 아주 굳은 점토에서 자란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것은 불에 구워 먹기도 한다.
나 홀로 괭이를 메고 이런 사질토나 황색 점토를 골라 다니느라 헤매기를 얼마나 했던고.
그래서 오늘, 이 양지바른 곳에 왔건만 칡넝쿨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 수확을 농사에 비할 수야 없지만 어린 내가 그 무렵에 부러워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알이 차서 통통하며 한발씩이나 되는 칡뿌리를 여러 개씩 지게 팔에 걸쳐 얹어서 집으로 가는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딱히 말한다면 아버지는 칡뿌리나 캐러 다니는 한가한 분이 아니시다. 그 시간에 새끼를 꼬든지 가마니를 짜든지 짚신을 삼든지 달구지를 몰고 멀리 나무를 하러 가시든지 해야지, 그까짓 칡뿌리나 캐러 다닐 수 없으셨다. 다행, 식량은 자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입이 다물어졌고 먹고 싶은 칡뿌리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싸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서 있다.
어찌어찌해서 앳되기 칡을 만나면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목적이 이룩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희망이 성취됐기 때문이다. 남 보기엔 하잘것없이 작아도 내게는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쁘다. 소망이 이루어졌다. 하루가 기쁨으로 가득할 것 같았다.
신발 안에 흙이 들어가서 양말이 흙투성이다. 서서만 되는 것이 아니어서 무릎을 꿇고 괭이자루 목을 붙잡고, 캐다가 또 마땅치 않으면 이번에는 팔꿈치를 땅에 대고 한쪽 손으로만 캐다가 점점 구덩이가 깊어지고 뿌리도 안 빠지면 숫제 양손으로 후벼서 파기까지 하는데, 이건 완전히 홀리고 미치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온 신경이 뿌리에 집중되고 이 뿌리가 나를 있게 하는 전부인 것같이 혼을 다하여 캔다. 힘이 없으니 큰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여리고 갓 심은 고구마 뿌리 같은 크기의 것이 고작이지만 맛은 그래도 이것이 좋다.
돌아온 내 몰골을 보시는 부모님의 마음은 아리고 쓰렸을 것이다. 그래도 양식을 구하러 다닌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랄까. 흰 눈덩이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양식으로서의 칡뿌리를 캐러 다니지 않으니 말이다.
이 해의 산은 산돼지의 식량이 인간들의 식량으로 돼버렸을 터이니 산돼지가 굶어 죽지 않았는지 누가 알랴! 유사 이래 기근(飢饉)인 '해방(광복)' 이듬해의 일이다.
그 이듬해 여름이 오기 전 춘궁기는 산의 소나무가 하얗게 된 해였다. 살아있는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그 속껍질을 도려내서 약간의 곡식을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그래도 산과 들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탓인지 소나무의 둘레 중 반씩만은 반드시 남겨놓았다.
이처럼 우리 '어버이'들은 어려운 봄 고비를 극복하면서도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을 역력히 나무에 새겨 놓았다.
이 나무들이 살아있다면 그때의 배고픔을 거증(擧證)하리라! 뱃가죽이 하얗게 드러나게 벗겨진 소나무로 하여 눈 아닌 눈을 허리에 두르고 봄날의 인간 배고픔을 하늘에 알리고 있었다.
그 소나무들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그들이 겪은 대로 보여주리라!
착하고 순박한 우리 마을 어른들의 마음씨를 허리나 배에 깊게 새겨 차고, 보이며, 바다와 들과 하늘을 향해 외치리라! 보시오. 이 착한 사람들을! /외통 -
자기 시간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언제나 잘 살 것이다. (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