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

외통궤적 2008. 6. 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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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010211 여인숙

객실이라고는 고작 아홉 자 크기로 두 칸짜리 방 한 개와 사방 아홉 자 크기의 방 한 개, 이렇게 큰방 한 개와 작은 방 한 개, 모두 두 개의 방으로 하는 여인숙 영업이니 오죽했으랴. 이즈음의 민박집만도 못하다.

둘 중 작은 방에는 할머니께서 주무시니 손님을 받으려면 동숙을 원하지 않는 한 한 사람 박에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즈음의 민박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말 그대로 지친 몸 하룻밤 비바람 막고 의지하면 될 것인, 초라한 행인들의 부담 없는 유숙(留宿)으로 밖에는 쓸모가 없는 여인숙이다.

행세한다든지 고을의 유지랄까, 아무튼 좀 깨끔스러운 사람은 우리 집을 외면하고 원래부터 있던 붉은 양철집, ‘돼지’네 집으로 가게 되는데, 이것이 내 마음을 아주 부끄럽게 했다.

창피하여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돈 만드는 기계라고는 오직 곡식을 내는 방법밖엔 없었으니 귀한 곡식을 낼 수 없어서, 나의 장래를 생각해서는 돈을 마련해야 했기에, 이런 업을 시작했으니, 식구가 합심해서 꾸려 가야 했다. 그러니 내가 하지 말자고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나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일러주신 대로, '숙박계(宿泊屆)' 책을 갖고 손님 앞에 나아가서 이름, 주소를 적고, 숙박목적과 다음 갈 곳, 행선지(行先地)와 묵을 날을 적어야 하는데, 죄다 한자(漢字)로 적는다.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내가 해야 한다. 한자를 새 발 개발처럼 써도 내가 그려야 하며 얼버무려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건 나와 이 숙박계(宿泊屆)를 검사하는 ‘보안서(保安署)’ 직원이 더불어 공부하는 꼴로 돼버렸다.

비슷한 글자는 정자로 일일이 바로잡고 그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때는 ‘다시 가서 받아 오라’고 한다. 이런 때면 또 짜증과 피할 수 없는 외곬의 막다른 길을 걷는 것 같아서 앞이 캄캄하다.

어둡도록 들에서 일하시다가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다시 ‘숙박계’를 들고 들어가시면 이번에는 손님이 야단을 치신다.

‘숙박계는 몇 번이나 쓰느냐’고. 이번에는 오히려 내가 아버지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송구할 뿐, 다른 대책이 없다.

이건 그냥 심부름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내 일이 돼버렸으니, 적극적으로 익히고 배워야 했다. 아버지 말씀같이 일 년 안에 어지간한 한자는 손님이 부르는 대로 받아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보안서’의 검열에서 되돌아오는 곱 일을 안 하게도 되었다.

‘보안서’ 직원의 짜증 섞인 말투도 듣지 않게 돼서 좁쌀만 한 내 자존심이 다시 쪼개지진 않았다.

열네 살배기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은 글이 아니라 내몰리면서 두 번 밟아야 하는 ‘보안서’ 문턱과 손님의 책망이었다.

여러 가지를 스스로 만들어 쓰던 옛날에, 아니 마음에 드는 것을 사 쓰는 요즈음도 매한가지지만, 우리가 쓸 물건을 고를 때엔 이 입장에서만 서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파악하고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런데 물건을 만드는 처지에서는 사는 사람의 층이 다양해서 늘 고민에 싸인다. 여러 부류의 사람과 그 기호(嗜好)를 분류하고 맞춰서 생산하듯이, 어느 한쪽에 서서 다른 편 여러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흥미 있고 해볼 만한 일이다.

그래서 그러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제게 여러 사람을 대할 좋은 기회이니 잘해보라고, 한데 숫기 없는 나는 늘 겉돌았다.

손님에게 매료 시킬만한 재주도 없고 붙임성도 없으니, 방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숙박계’쓰는 시간 정도였다.

조금은 아쉬웠든, 기회의 상실인 것을 지금 알아차리니 엄청난 둔감아(鈍感兒)였음을 새삼 되새긴다.

나의 이런 아둔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류의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 집이 차츰 인정 어린 집으로 소문났고 이를 듣고 들리는 이들 또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거의 숙박료를 떼어먹고 달아났다. 즉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단정하게 인사하고 이유를 달아서 집주인인 우리의 기를 죽이고 책이나 서류뭉치를 방안에다 놓고 드나들면서 며칠씩 파먹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미리 숙박료를 받지 않는 점을 악용하고 새벽 줄행랑을 친다. 이때 반드시 ‘나는 잠깐 일 보러 밖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무언의 말을 하는 물건이 있게 마련이다.

책이거나 서류 뭉치거나 심지어는 가방까지도 떠난 사람의 말을 대변한다. 물건을 며칠씩 얌전하게(?) 모셔 봐도 감감무소식, 이런 사람은 우리 집에서 미리 점쳐놓은 사람이고 이 점은 거의 들어맞았다.

그러면서도 미리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장삿집이 아니라 농삿집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뿌리박고 사는 집이기 때문이었다.

행여 그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몰래 줄행랑을 쳤다 하드래도 훗날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찾아오리라는 좋은 감정을 갖고 손톱만큼이라도 원망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았다.

어떻게 가름하여 알 수 있나? 우리 집에서 묵을 위인이 아님에도 친절하고, 행색이 좀 남루한 다른 이들과 합숙할 형편이 아님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도 다음날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 이, 이는 수상쩍은 사람이지만 아무려나 얼마나 어려우면 우리 집 같은 데서 유숙(留宿)하고 돈 떼어먹을까 싶어서 오히려 측은하기까지 하다며 혀를 차시는 부모셨다.

돌이키면,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아들의 앞날을 알 수 없어서, 우리 아들 같은 이라고 측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농사를 지으니 식비의 원가 개념이 없고 있는 방 놀리느니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씨를 내가 조금이라도닮았으면 오죽 좋으랴만, 아니었던 것 같아서 지금에 와서는 조금은 속상하다.

그런가 하면 행색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보부상이나 지팡이를 짚고 먼 길을 가는 이들이 묵을 때엔 적선의 마음을 다졌건만 다음 날 아침 한사코 돈 받기를 청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같이 묵고 있었든 만큼 한 푼도 에누리 없이 내놓으며 고맙다며 인사까지 하고 떠난다. 아마도 이들은 행색을 보아가며 들이는, 많은 영업집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그리 쉽지 않은 주인을 맞은 듯이, 감사하여 초가집의 영마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허리 굽혔다.

이들이 우리가 건설할 미래의 나라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올바른 상이다. 이들은 하나같은 하층민이었다. /외통-



진정 우리의 마음을 알고자 하면 우리의 행동을 공정하게 관찰하자. (T.월슨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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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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