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일본군에서 돌아오고, 장정들이 징용에서 돌아오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외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그들의 직장이 문 닫혀 돌아오고, 멀리 해외에 나갔던 이들도 '해방'의 선물로 고향을 찾아 몰려들었다.
해방되고 첫 번째 단오다. 이전엔 없던 여러 행사를 벌였는데, '대 동아 전쟁 총동원' 체제하에서 엄두도 낼 수 없던 일들이다.
몇 달 전만 해도 할머니께서 고집하시어 겨우 절후의 마디로만 여기고 쇠었으니, 나 또한 그냥 농사짓는 데 필요한 날짜 마디로만 여겼다. 한데 이렇게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고 각종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고 웅성거리며 몰려다니는 것은 처음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널찍한 풀밭에 시원시원히 서서 그늘을 지우는 우리 동네의 명당 서낭당, 이곳이 행사장이다.
복판에 선 두 그루 소나무 사이가 여느 소나무들보다 가깝게 나란히 서 있다. 이 나무 사이에 높이 매단 그네는 내가 아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아우름이었다.
자연과 인공가설물의 조화된 아름다움도 이제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그곳은 그네뛰기 경연장으로선 손색이 없는, 인공적 구조물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의 앉을 자리가 넓어서 그렇고, 해가리 자연 송림이 하늘을 뒤덮었으니, 햇볕이 들지 않아서 그렇고, 한쪽에 봇도랑이 있어서 땀 흘리는 이의 목덜미를 씻을 수 있어 그렇고, 반대편에 하얀 돌과 모래가 깔린 개천이 있어서 따라 나온 개구쟁이들의 멱 감는 터가 돼서 그렇고, 이 솔밭이 큰길가에 있어서 언제든지 어디든지 바로 나설 수 있어서 그렇다. 공중 집회 장소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네 뛰는 누나들의 치마가 단속곳과 어우러져서 그렇고, 검붉은 소나무 등치가 그 머리 위에 겹겹이 이고 있는 솔잎이 노랑 저고리 남치마와 어우러져서 그렇고,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갈 때 남색 고름이 한 움큼 쥔 하얀 주먹과 밧줄에 걸쳐 나부끼어 선녀처럼 돼서 그렇고, 하늘을 차고 다시 내려올 때의 옷고름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드리운 솔가지에 붙은 솔방울에 닿은 듯해서 그렇게 아름답다.
땅 위에 있는 구경꾼의 목 고개가 일제히 따라 움직여서, 마치 훈련된 도수체조(徒手體操) 팀 같아서 신기하다.
해방의 덕인지, 분출되는 민초(民草)의 울분(鬱憤)인지, 단오(端午)의 행사는 다양(多樣)하고 성대(盛大)했다.
마라톤도 있었는데 나도 짧은 구간을 뛴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기억할 수 없으니 아마도 중도 포기가 아니었나 싶다.
단옷날 행사는 며칠씩이나 이어졌다. 이름하여 ‘전국씨름대회’라는걸 벌려놓았으니 여유롭게 하는가 보다. 이유는 인근에서 오는 꾼들의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 같다.
고을마다 제가끔 '전국'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씨름꾼은 한정돼 있고 또 그 주최하는 곳에서는 씨름깨나 한다는 씨름꾼이 나타나야 신도 나고 소문도 나서 그곳의 판이 정착되리라는 계산도 있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러니까 몇 안 되는 씨름꾼이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면서 소도 끌어가고 그곳의 이름도 날려주고, 이렇게 짝꿍이 맞아서 행사를 오래 끄는가 보다.
별도의 공연장이 없으니까 일단 많이 구경할 수 있도록 넓은 곳을 마련했을 것이다. 제방을 뒤로하고 펼쳐진 강변 안쪽의 자갈밭을 고르고 모래를 모아서 높이고 거적에다가 모래를 넣어서 둘레를 두르고, 앉을 자리를 돌의자로 나란히 놓아서 만든 씨름판이다.
거기에 수동 소방펌프가 배치된 것이 수상쩍었는데, 싸움판이 벌어지면 뜯어말리며 물 총질을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기 씨름’이란 것을 시키고 점점 덩치를 키워가고 나이를 더해가면서 저절로 본 씨름으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이 조금은 싱겁고 따분하다.
장난삼아 나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힘자랑하려고 나오는 이도 있으며 평소에 미웠던 놈이 있으면 혼내주려고 나오기도 한다. 또 창피를 주려고도 나온다.
이것은 정한 규정이 없고 관객의 청에 따라서, 소리 큰 사람의 주장대로 진행된다. 주최 측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제대로 된 씨름꾼이 나타날 때까지는 별수 없이 욕도 얻어먹고 삿대질도 당할 줄 각오했나 보다.
그럭저럭해서 시간을 보내고, 한다는 꾼들이 오면 그때에는 판이 꾼들의 주도로 이끌리게 된다. 꾼 하나에 십여 명씩 붙어 다니며 씨름꾼의 적수 노릇을 거짓으로 하는 것이 싱겁다.
한 판에 다섯을 넘겨야 예선에 드는데, 이 초판에 진짜 적수끼리 붙으면 공연히 힘만 빠지고, 하루를 걸러야 다시 신청할 수 있으니, 그들도 꾀를 내어서 이런 불필요한 힘 낭비를 막자는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황소가 한 마리 걸렸으니 아무렇게나 넘어갈 수 없을 법도 하지만, 이때에도 샅바 싸움은 있었던 듯, 판정을 시비하고 싸움이 벌어지면 그때엔 소방호스로 불난 집 불 끄듯이 막 퍼부어서 양편을 혼비백산토록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장사’가 정해지면 그야말로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무질서하던 때라서 장사가 소를 끌고 가는 데는 맞상대 패와 적잖은 갈등을 겪어내면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곳 동네 패의 집단행동에 힘입어서 겨우 빠져나가는, 힘겨운 황소 싸움은 이레가 돼야 끝이 난다.
놀자고 있는 날이니 놀아야 마땅하지, 만 그때의 질서는 조금 이상하게 비친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 단오는 노는 날로 됐다. 이날에, 민족의 ‘해방’과 겹쳐서 비로써 우리 집도 식구 모두 하루를 일에서 ‘해방’되어 쉬게 되었다. /외통-
무엇이든지 주의 깊게 하고 결말을 보라. (밝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