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방 ‘응철’이네 집에 ‘원산’에서 온 ‘응철’의 이종형이 며칠간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다.
묵직하게 생긴, 쇠뭉치 같은 집게 칼을 ‘응철’에게 선물한다며 내놓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 그 칼은 자기가 만들었다며 뻐기면서 그 칼이 어디에도 없는, 그 칼 하나밖에 없는, 수제품임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다.
그때에는 단지 그 칼이 멋있게만 보였지, 지금의 내 생각처럼 공예의 의미까지 깊이 생각하는 도량도 없던 때였으니까 그저 외양만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 모양이 여느 칼과는 달리 실한 것같이 보였다. 굳고 단단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나보다 두어 살 정도 더 먹음직한 그가 이런 쇠뭉치를 어떻게 다루었는지가 무척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손잡이를 잘 갈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난히 반짝이고, 칼끝은 날카롭지 않으면서 미끄러지듯 마무리되고, 칼날은 세운 듯 새파랗다.
그 칼날이 얼마나 강한지는, 오래 써 봐야 알 일이겠지만, 그 무렵의 우리는 양철 쪼가리로 만든 것 같은 얇고 휘는 것만을 지니고 있던 때여서 그런 것들과 비교되어 ‘응철이’가 꽤 부러웠다.
갖가지 기계를 써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까지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소리였기에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찮은 일인데도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것은 ‘응철’에게 이런 칼을 정성 들여서 만들어 줄만 한 친척이, 그것도 동년배의 형벌 되는 이가 있다는 것이 나를 은근히 기죽였다.
형이 없어서 풀 죽어지내는 나의 심경에 대해서는 이 세상 아무도 모른다. 나 혼자만이 당해야 하는 숙명이다.
‘응철’이나 내가 형 없기는 둘이 같지만, 오늘 같은 일을 당할 때는 정말 먼 곳에 사는 사촌이라도 있다면 얼른 그를 불러들여서 우리 사촌 형이라고 자랑이라도 했으면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적이 위안이 되는 것은 작은집의 형님이 계신 것이다. 사촌이 없는 내겐 친형이나 다름없는 재종형이지만, 낯선 외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몇 집 건너서 조석으로 대하는 편이라서 오늘과 같이, 멀리 온 형이 새삼 자랑거리로 될 때는 가까이 계시는 것이 오히려 심정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샘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예민해서일까, 그렇지도 않으면 ‘응철’에게 모든 게 뒤져서일까. 하긴 그렇다. 그는 나보다는 한 살 더 먹고 올 됐으니까! 모든 게 나보다는 낫다. 그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칼로 인한 나의 상처는 오늘에 이르도록 아물지 않고 있다.
집게 칼은 우리 꼬마들에게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어서 인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연필 깎기 기계가 없던 시절이니 우선은 연필을 깎는 데 쓰일 것이고, 밤을 깎아 먹는데, 등교할 때 음식점 처마 밑에 매달린 문어 다리 잘라 먹는데, 손톱 검사할 때 손톱 자르기, 산에 올라가 놀면서 '송기' 벗겨 먹는데, 새 잡는 고무총 손잡이를 나무에서 잘라 만드는데, 땅 따 먹기 놀이할 때의 둘레 동그라미 갓 금 긋기, 깨진 사금파리 도려 긁어서 다듬어서 동전 크기로 만들기, 솔 딱지 깎아 배 만들기 등, 실로 무궁한 쓰임새의 놀잇감이다.
그 무렵 우리 꼬마들의 생활 전부가 이 주머니칼과 관련이 있었던 만큼, 칼의 의미는 우리를 사로잡을 만큼 컸었다.
이즈음의 완성된 장난감을 그냥 갖고 노는 것 정도의 일부분이 아니라 모든 장난감을 스스로 만드는 그 재미를 이즈음의 애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니 집게 칼을 만드는 과정을 상상하는 내가 그 칼에 빠지다 못내 숨죽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나 보다.
내가 칼을 만든다는 것은 동무들에게서 얻은 시게 태엽 쪼가리를 돌에 갈아서 손잡이에 천 쪼가리를 감는 정도다.
가장 손쉽게는, 동무들과 작당하여서 건널목 곁의 철길 위에다가 기차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못의 대가리가 놓이게 하여서 지나가는 기차 바퀴에 못이 눌려서 납작하게 하는 것이다.
이 방법도 많은 실패 끝에 터득한 우리 나름의 방법을 찾은 후에야 가능했다. 즉, 건널목 바로 위에서 하면 튀겨서 나무 틈에 들어가 버리면 안 된다. 또 그 못을 레일의 반짝이는 면에다가 맞추어 나란히 놓으면 못 전체가 얇게 되니 손잡이가 없어진다. 그래서 못의 대가리는 기차의 진행 방향으로 하되 레일 위의 녹슨 곳에다 맞추어서, 비스듬히 놓는 것으로 우리들의 칼 제작 초벌 공정이 되었다. 기차가 지나간 다음 각자는 자기의 못을 주어서 마무리한다.
보잘것없는 우리의 작품에 비해서 접었다 폈다 펴지는 그 칼을 만든 그 형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 외통-
인간은 시도하고 신은 결정한다. (밝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