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자연학습을 안 해도 자연 속에 묻혀서 사는 시골인데도 짜인 프로그램은 으레 도시형이다. 노력 봉사가 제격인 ‘식목?소풍’이 있는 날, 그래도 가슴은 부풀었다.
어린이들에게 나무 심기를 가르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을 테지만. 나무를 대규모로 심는 산행을 시킨다는 것은 어린이에게는 부담이 컸다.
이런 행사는 소풍이란 이름에 숨겨진 노동력 노림이고,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그때의 형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래도 잘 심던, 못 심던, 묘목(苗木)을 산 위까지는 들고 가서 버릴 것이니, 두벌 손볼 것을 각오 하드래도 얼마간의 노력은 얻을 판이니, 운이 좋아서 비라도 오는 날이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리라.
이런 심산(心算)이 아니었으면 묘목을 버리고, 모아서 묻고, 허술하게 심고 내려오는 애들의 실태를 잘 알면서도 해마다 행사하는 것은 딴 이유론 설명할 수 없으니, 그렇다.
아무튼, 내가 이만큼 자랐으니, 나무도 제대로 심을 것 같은 믿음이 우리를 멀리 ‘송방’이라는 산골까지 10리 길을 데려갔었지 않나 싶다.
내가 시골에 살지만, 이곳은 또 다른 시골 맛을 보게 하는 색다름이 있다.
산허리를 질러서 동네의 등 뒤로부터 양쪽으로 나눌 듯, 한가운데를 꼬불꼬불 후미져 내려오면서 집들이 길 양쪽으로 빼곡히 차 있다. 지붕 위로 아름드리 밤나무가 가지를 깔아 덮고 있다.
돌담과 더불어 태고 때부터 내려오는 집터임을 알아보게 한다. 평지에는 우마차도 다닐만한 골목길도 나 있지만 거지반(居之半) 지게꾼밖에 다닐 수 없는 좁은 길도 많다.
돌담은 이끼가 끼어서 검푸르게 물들었고, 지붕은 이엉이 내려앉아서 곧 쏟아질 것처럼 드리워 있다.
준령(峻嶺)을 가로채서 동해로 내달아 곧장 바다까지 이은 가지산의 뿌리에 깊이깊이 박아서 이끼 낀 바위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동네다.
동네는 남향이지만 태백이 동남으로 솟아 있어 햇빛이 그립다. 그래도 은혜로운 해는 능선을 타고 거닐면서 햇빛을 나누어 동서로 골골이 준다.
정오가 아직 멀었는데도 벌써 산 그림자는 기슭을 벗어나서 나막신 바닥만 한 ‘다락논’ 남쪽 절반을 길게 차지하고서 동네로 밀어붙이고 있다.
가지 친 산줄기 겨드랑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이미 짙은 녹색을 넘어서 검게 물들어 가고 있다. 아직 햇빛을 그리는 조각 논의 벼 포기는 초조하기만 하다.
바다를 향해서 비슷이 비껴서, 숨을 쉴 만큼의 논과 밭이 섞여가며 이어지는, 작은 들을 질러서 앞산으로 가노라면 이 골짜기 최대의 구조물이 보인다.
애송이 소나무 숲을 이기지 못하고 짓눌렸는지, 골짝에서 불어닥치는 산바람을 이기지 못해서 엎드렸는지, 기듯이 낮게 엎드려 있다.
세 칸짜리 교실의 남쪽 창 조각 유리가 번 갈아서 햇빛을 튀기며 우리의 눈을 찌른다. 나무가 울창해서 지겨운지, 꽃이 지천이라서 무심한지, 교정은 사람의 손길을 외면한 듯,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빈틈없이 닫아버린 창들은 이미 오전수업이 끝났음을 알리고 있다. 몇 안 되는 어린이가 교문도 없는 둑을 아무렇게 지나서 동네로 들어가고, 그중 한 아이는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다. 제 그림자를 긴 나무토막으로 그리고 나서 멀리 가버린 친구들을 뒤쫓아서 달려간다. 하나같이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다.
나무는 심었는지 말았는지, 능선 위 소나무 사이를 기어가는 해가 낱낱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선생님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우리를 그늘진 개울가로 데려가 도시락 보자기를 풀게 했다. 골짜기에서 싸늘한 바람이 물길을 타고 흐르면서 개울가 바위틈의 갈 풀을 흔든다.
나무의 진가(眞價)를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의 회상이 오늘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서, 내 일생에 보람을 더한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