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머루넝클

외통궤적 2008. 6. 2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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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001216 산머루넝쿨

크고 작은 돌이 떠 내려와서 촘촘히 자갈 속에 박혀 반 머리를 드러내고 또 그 자갈은 빽빽하게 모래를 사이에 둘러서 바탕 삼았다.

 

장마에 큰물이 지나가며 짜 맞춘 듯이 얽히고 설켜서 평평한 벌판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 달맞이꽃이 성큼성큼 성글게 자라났다. 포기마다 핀 노란 꽃잎이 얼굴을 감싸 고개 숙이는 칠월의 뜨거운 어느 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까만 얼굴인데, 오늘은 더위에 익어서 검붉은 밤톨이 됐을 것이다.

 

이 검붉은 얼굴에 눈자만 희맑게 커 가는지, 세상이 흐려 보인다. 삼베적삼은 땀에 절어서 흐느적거리고 중이는 아예 물이 흐른다.

 

넝쿨에 파묻혀서 춤추듯 들썩이며 뒤로 벌렁 드러누었다. 일어나서 다시 걷던 바로 전까지의 기운은 어디로 날아갔기에 이토록 늘어지는 것일까.

 

장장 십리 길을 오가는 곳, 산에 올라 머루 넝쿨을 걷었다. 맨몸으로도 힘겨웠을 터인데 스스로도 대견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 정도는 누구나 해야 되는 보통의 '근로봉사'다.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만한 노고조차 견디지 못한대서야  앞으로 그 힘든 농사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며 다시 기를 써서 이 곳 까지 끌고 오긴 했어도 앞날을 생각하면 사방이 꽉 막힌 통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몸부림을 쳐보아도 뛰어보아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간신히 도착했다.

 

울창해진 사방용 아카시아 나무가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더니 눈앞의 가마솥에서 부글거리며 끓는 산머루넝쿨의 열기와 김을 몰아간다.

 

배만큼 널따란 네모 가마솥 속의 꺼먼 진액은 군데군데 입을 벌리며 김을 토한다. 동그랗게 벌렸던 여러 개의 입이 불규칙하게  제각기 사라지는가 하면 곧이어 다른 자리가 터진다. 꼴이 아마 마지막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아카시아 나무그늘에서 몸을 식힌다. 넝쿨은 산더미같이 싸였고 인부들은 비지땀을 흘린다. 이 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아래서 무엇 때문에 저런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간절한 것은 호기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즈음의 학교생활이 공부보다는 '근로봉'사라고 일컫는 일이 더 잦고 많으니까 그렇다.

 

 

푸른 하늘 위에 흰 실구름을 꼬리 붙여서 서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한 점이 'B-29' 라고 하며 그것이 적기라는 설명뿐이다. 대책은 방공호뿐이다.

 

공부시간을 쪼개 환등기를 이용한 적국의 만행(?)을 보여주는 그림은 어린이들을 적개심으로 불태운다.

 

낮도깨비 같고, 짐승 같은 놈이란다. 도대체 서양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상상하랴! 그렇건만 도깨비들은 날마다 구름을 타고 서북쪽으로 올라가지 않는가.

 

허기를 느끼며 엉덩이에 다닥다닥 붙은 모래를 양손으로 털어 내며 서서히 가마솥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비행기를 탐지하는 '레이더'의 전파를 교란하는 약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나? 솔뿌리는 무엇을 하는데 쓰느냐고 물었다. 비행기 나는데 필요한 기름을 뺀다나?

 

산다는 것은 앞날을 겪는다는 정도의 냄새를 어렴풋이나마 맡는 나이에 앞날이 훤히 보여야할 향로(向路)가 뿌옇고 아득하다. 가 없는 허공에, 하늘을 나는 실구름과 땅위의 가마솥의 머루넝쿨 가루가 어떻게 엮어질지 이 또한 뿌옇다.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감자가 태반인 점심은 먹어야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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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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