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돌이 떠 내려와서, 자갈 속에 촘촘히 박혀, 머리를 반쯤 드러내고, 또 그 자갈은 빽빽하게 모래를 사이에 둘러서 바탕 삼았다.
장마에 큰물이 지나가며 짜 맞춘 듯이 얽히고설켜서 평평한 바닥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 달맞이꽃이 성큼성큼, 성글게 자랐다. 포기마다 핀 노란 꽃잎은 얼굴을 감싸 가리고 고개를 숙이는 칠월의 뜨거운, 어느 날이었다.
늘, 나대는 내 새까만 얼굴은 오늘은 더욱 더위에 익어서 검붉은 밤톨이 됐을 것이다.
이 검붉은 얼굴에 눈 자만 희맑게 됐는지, 세상은 흐려 보인다.
삼베적삼은 땀에 절어서 흐느적거리고, 중이는 아예, 땀에 젖어 끈적인다. 넝쿨에 파묻혀서, 춤추듯 들썩이며 뒤로 벌렁 누었다가 잠시 후 일어나 다시 걷던 바로 전까지의 기운은 어디로 날아갔기에, 이토록 늘어지는 것일까?
장장(長長) 십리 길을 오가는 곳, 산에 올라 머루 넝쿨을 걷었다.
맨몸으로도 힘겨웠을 터인데 스스로 대견하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 정도는 누구나 해야 하는, 보통의 ‘근로봉사’다.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만한 노고(勞苦)조차 견디지 못한대서야 어떻게 앞으로 그 힘든 농사일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다시 기를 쓰며 이곳까지 끌고 오긴 했어도 앞날을 생각하면, 사방이 꽉 막힌 통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몸부림을 쳐보아도, 뛰어보아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간신이 도착했다.
사방(砂防)으로 심은 ‘아카시아’가 울창(鬱蒼)하다.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더니, 내 눈앞의 가마솥에서 부글거리며 끓는 ‘산머루 넝쿨’의 열기와 김을 몰아간다.
배만큼 널따란 네모 가마솥 속의 꺼먼 진액은 군데군데 입을 벌리며 김을 토한다.
동그랗게 벌렸던 여러 개의 입이 불규칙하게 따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다른 곳이 터진다.
이 가마 속 묽은 물이, 아마 마지막 무엇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아카시아 그늘에서 몸을 식힌다.
넝쿨은 산더미로 쌓였고, 인부들은 비지땀을 흘린다.
이 더위, 그늘 한곳 없는 뙤약볕 아래서 무엇 때문에 저런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가르칠 수 없는 것, 궁금해서 알려고 한다. 이 간절함은 호기심이 아니라 이즈음의 학교생활이 공부보다는 ‘근로봉사’라 일컫는 일이 더 잦고 많으니까 그렇다.
푸른 하늘 위에 흰 실구름을 꼬리 붙여서 서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한 점을 B-29 라고 하며, 그것이 적기(敵機)라는 설명뿐이고 대책은 방공호뿐이다.
공부 시간을 쪼개 환등기를 이용한 적국의 만행(?)을 보여주는 그림은 어린이들을 적개심으로 불태운다.
낮도깨비 같고, 짐승 같은 놈이란다.
도대체 서양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상상하랴! 그렇건만 도깨비들은 날마다 구름을 타고 서북쪽으로 올라가지 않는가?
허기를 느끼며 엉덩이에, 더덕더덕 붙은 모래를 양손으로 털어 내며 서서히 가마솥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비행기를 탐지하는 ’레이더‘의 전파를 교란하는 약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 다나?
솔뿌리는 무엇을 하는 데 쓰느냐고 물었다.
‘비행기 뜨는 데 필요한 기름’을 뺀다나?
산다는 건 앞날을 겪는다는 정도, 냄새를 어렴풋이나마 맡는 나이에 앞날이 훤히 보여야 할 향로(向路)가 뿌옇고 아득하다.
가 없는 허공에, 하늘을 나는 실구름과 땅 위의 가마솥 머루 넝쿨 가루가 어떻게 엮어질지, 이 또한 뿌옇다.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감자가 태반인 점심은 먹어야 한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