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산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림 같다.
남향으로 운동장과 텃밭을 지나고 철길을 건너면 이번에는 텃논이 나오고, 산은 텃논 위에 수석처럼 떠서 있다.
이른 봄, 교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이 산이 온통 붉게 물들어 꽃동산이 되어 공부하는 우리를 불러 손짓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 마음도 설레고 들떠서 선생님을 조른다.
‘산에 가자고.’
산은 눈앞에 우뚝 서서 햇살을 녹여 꽃밭에 담고 바닷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 넓은 들을 핥아 냉이 향을 머금고 창가에 쏟아놓는다.
창밖 화단 위 진달래가 꽃잎을 간지럽게 떨며 꽃술을 부추기고 꽃술은 고개 숙여 바람에 응답한다.
키 큰 진달래꽃 밑을 감싼 돌 틈에 파란 새싹이 여린 손끝을 흔든다.
몰려나와 둘러선 또래들의 눈길이 한 곳에 모이지만,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진달래꽃 외엔 아무것도 없다. 하나씩 물러서고 홀로, 엄마 같은 자연의 숨결을 들이키며 가슴에 듬뿍 채운다.
아늑하고 따스한, 양지바른 창가 꽃밭은 비단 요가 깔린 잠자리가 된 듯, 환상에까지 이르는, 자연의 신비 속으로 함몰된다.
봄의 전령이 이미 꽃밭을 지나갔고 앞산을 넘어서 북쪽으로 휘어져 달려갔다.
우리도 산으로 달려갔다.
무리 진 한패의 반 동무가 산언덕 빼기 진달래꽃밭을 헤치며 부지런히 꽃잎을 따먹는다.
이미 입술에 엷은 물이 들은 애들도 있다.
부드럽고 촉촉한 꽃잎은 봄을 익혀 우리들의 기가 되고 혼이 되려는지, 아무 저항도 없이 목을 내밀어서 순응한다.
옳거니 너는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그 가지에 꽃 피고, 네 자태가 아름다웠느니라.
올해는 우리를 위해서 소나무 사이를 뚫은 햇빛을 받았고 눈 속에 머금은 물기를 빨아올렸지 않았느냐!
모름지기, 다음 해는 네 이웃이 우리에게 입술을 내밀어 반기리라!
그때 너는 올해를 얘기하며 따먹히는 이웃을 위해 손벽 처라!
이것이 네가 있고 이웃이 있는 이곳, 우리와 함께 사는 땅이요 하늘이다!
진달래꽃. 봄을 그렇게도 급하게 맞고 싶어서 움 틔우기 전에, 잎도 나기 전에 꽃부터 피우느냐!?
긴 겨울, 에이는 찬바람, 어찌 피해 봉우리 맺고 키 넘은 눈 속을 어찌 이겨, 꽃잎을 만들었느냐!
얼고 부러지고 마르고 꺾이건만, 네 어찌 실 같은 긴 목을 부지하여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생명의 뜻을 전하느냐!
말하리다.
일찍 하늘의 별이 차가워 빛날 때, 따스한 대지의 품으로 내 가느다란 몸과 팔다리의 물기 내리고, 찬 바람 불 때 가느다란 내 몸은 바람 사이 비꼈고, 함박눈이 쌓이면 내 곁에 재우고, 더불어 누워서 긴 잠을 잔다오.
눈 이불 걷어 가면, 키 큰 숲속에서 나를 알리고자 먼저 꽃부터 피운다오.
숲이 우거지기 전에 나를 반기는 그대들을 부르려는 것이오.
내가 있는 것은, 그대들이 세는 세월을 알리며 세월을 가늠하는 봄을 알리고, 그대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힘을 더하기 위함이요.
봄은, 화전놀이와 함께 아지랑이 속으로 숨어서 간다.
기암절벽을 이루며 흐르는 물가의 반석 위에서 화전놀이가 펼쳐진다.
진달래가 봄을 가져왔대서 화전놀이, 꽃놀이하는 어른들의 봄기운은 이미 진달래꽃이 겨울을 이기고 피운 꽃잎으로 하여 충만 됐다.
진달래는 마른나무에서 내 뿜는 봄이요, 회초리 끝에서 솟는 힘의 꽃, 생명의 꽃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