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깃털구름이 날아갈 듯 서북 하늘을 가롤지른 산맥을 향한다. 팔월의 해풍 또한 발아래를 스친다. 작열하는 태양을 잡을 듯 손을 뻗던 텃논의 벼 포기는 소리 내어 일렁인다.
멀리, 한바탕 먹구름이 몰려 천둥번개를 치고 지나간 듯 하늘이 묵직하게 운다. 교사 외벽에 붙은 송판의 골탄 기름이 녹아 방울져 흐르고, 교정의 모든 활엽수는 축 늘어져서 물기를 기다린다.
모든 것이 조는 듯, 숨죽여서 쉬는 듯 고요한 한 낮이다.
벌써부터, 오래전부터 파기시작한 방공호를 앞으로 며칠이나 더 파야 할지 우리 또래는 아무도 모른다. 며칠 몇달이 걸릴지 모르지만 아직은 파고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한다.
괭이와 삽을 들고 철길 건널목 넘어서 '강터'고갯 마루 못미친 길 가의 산자락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산은 거의가 마사토인 것은 내가 사는 고장의 특성이다. 고사리 손에 무겁게 들린 괭이로 쪼고 삽으로 퍼내서 하루에 일 이 미터씩 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지질의 덕을 보는 것이다.
얼마만큼의 진동으로 무너지는지 얼마만큼의 응집력으로 벽면과 천장이 부지하는지를 시험도 없고 측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학교의 방침으로 시키니 할 따름이다.
매일 우리의 방과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얼마를 파들어 갔던지, 제법 굴 같은 깊이가 되었으니 오히려 그곳이 우리의 놀이터가 된 듯, 싫지 않았다.
여름날의 피서지가 됐고 우리 마음대로 작품화(?)되는, 그런 이상한 쾌감마저 맛본다.
벽면에 여러 가지 그림도 그려보는가 하면 조각도 해보면서 파 들어가도 무너질 염려가 없는 토질이 이 '석비레'다.
그러나 무한정 깊어지질 않았다. 얼추 십 여 미터쯤을 파 들어갔을 수평 깊이에서 지질의 색과 무늬는 같은데도 파는 손에 다가오는 촉감은 달랐다.
손목이 아프고, 괭이는 튀고, 삽은 제자리에서 겉돌며 미끄러진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몫이다.
학교에서 이곳까지는 십 여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임에도 공습에 대비한다는 것은 조금 걸맞지 않게 보인다.
아마도 명목상의 시설인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방공호란다.
정작 방공호는 학교마당 한구석, 교장선생 사택 앞에다 파놓고 그 위에다 통나무를 걸치고 또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양쪽이 트여서 들어가기는 쉬워도, 이게 또 방공호가 되는 것으로 알아야하는 나의 머리가 좀 복잡하다.
총알받이는 될지 몰라도 폭탄 피하기는 영 그른 것 같지만 이런 것도 방공호인줄 알아야 한다. 폭탄이 떨어졌을 때 사람이 날아가지 않고 눈알 나오지 않을 만한 장소로는 그럴싸한지, 그것도 모르겠다.
그 후, 한 번도 우리가 판 이 방공호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공습도 없었다. 다만 총검술이나 방화 훈련이나 공습에 대비한 훈련을 매일 반복해서 했을 뿐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강산도 변했으리라. 그러나 제발 우리가 판 그 굴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다.
그래야만 내가 강산을 확인하고 만져보고 볼을 비벼볼 것이 아닌가. 모름지기 모든 것이 변했어도 그 산과 내 손길이 닿은 그 굴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 산은 나를 낳은 우리 동네의 등허리이니까 지구가 없어지는 날까지는 버티고 있을 것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