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둔한 내가 ‘하늘의 말’, 음을 터득한다는 것은 나를 바꾸지 않고는 되지 않을 어려운 일이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단순한 북소리 같은 것과 그 높낮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여서 그나마 농아(聾啞)의 신세를 면한 것은 요행이다. 그래서 평생을 노래 따위에는 기죽어 지내야 하는 나의 고질(痼疾?)이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늘 다른 과목은 상위이지만 음악만이 평균을 밑도는데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야말로 능력의 한계였다.
어느 날 오후의 음악 시간이었다. 도무지 흥미 없는 콩나물 대가리와 오선의 아롱거림에 몸을 쥐어틀든 나는 다음 시간의 준비를 한답시고 연필을 다듬을 생각으로 필통을 뒤졌다.
칼을 꺼내서 연필을 말끔히 다듬고 다시 필통에 넣으려고 필통을 훑어봤다. 안에는 연필 너비만 하고 손가락 길이만 한 얇고 강한 시게 태엽 한 토막을 보고 무심코 이를 집어냈다.
이 태엽 쪼가리는 너비의 한쪽을 갈아 날을 세우고 길이의 한쪽을 천으로 감아서 손잡이가 되게 하여 밤 갉아 먹는 칼을 만들 참이었다.
선생님은 박자 틀을 교탁에 올려놓고 음표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책상 뚜껑(덮개 있는 책상) 위 갈라진 틈에 ‘태엽’을 꽂았다. 내 마음은 그저 이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아무 뜻도 없이, 어떤 의도도 없이, 꽂힌 태엽의 위 끝에 검지 손끝을 눌러대고 앞으로 휘어 댕겼다가 놓았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저마다 어디에서 이런 아름다운 소리가 났는지 두리번거린다.
선생님은 내 앞으로 다가오시고, 나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묽게 물들면서 석상(石像)처럼 굳어 있었다. 교실의 친구 모두 나를 응시하다가 곧 선생님에게 시선을 보내다가는 이윽고 번갈아 본다. 맑고, 높고, 구르는 소리가, 처음에는 천장에 닿았다가 옆으로, 온 교실로 펴져 나가다가 점점 밑으로 깔리고, 발밑을 스쳐서 마루판을 가늘게 핥으면서 잦아들었다.
실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경쾌한 음을 선생님과 우리가 듣고 놀랐다. 나도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선생님의 교탁이 내 책상으로 바뀌어졌다.
도두 주목하도록 지시하고 내 책상 뚜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순간 또다시 난 긴장했다. 내게 중벌이 내릴 것에 마음조이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의외의 말씀에 당황하기조차 했다.
‘이런 쇠판을 여러 가지 길이로, 여러 가지 두께로 된 것을 늘여 꽂으면 좋은 악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후 아직 이런 음을 내는 타악기는 보지 못했다. 근사한 것, 실로폰이 있을 뿐이다.
나락에서 천상의 복숭아를 딴 기분이었다.
난 선생님께 음악교재를 즉석에서 제공한 꼴이 되었고, 선생님은 무난히 수업 분위기를 재치 있게 바로잡았다.
이제 돌이켜본다.
선생님의 기지(機智), 상황을 반전시키는 순발력, 어떤 경우에도 수업과 관련지어서 이끄는 그 진지한 태도에 고개 숙인다.
극언과 괴변을 빈다면, 그 선생님은 그 시간에 어느 학생이 방귀를 뀌었어도 ‘이 소리는 취악기(吹樂器) 일종, 음계(音階) 중 한음을 나타낸 소리다’라고 온 교실을 향해서 일갈(一喝)했을 것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