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검사

외통궤적 2008. 6. 2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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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001217 위생검사

턱받이를 겨우 면한 내가 소(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럭저럭 일 년을 때웠다.

 

학년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엄격한데도 그때마다 눈치코치 보아가며 위기를 넘겼지만 이 이번에는 된통을 무릅써야 할 일이 닥쳤다.

 

전날 일러준 오늘의 손톱검사를 새까맣게 잊고 있던 나는 오늘 아침 교실에 발을 들여놓고서야 깨달았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 볼 양으로 앞뒤 좌우를 훑어서 덤비지만 마땅한 연장이 없다.

 

필통이래야 몽당연필 두어 자루, 쓸 만한 연필은 한 자루도 없고 지우개가 매어 달린 연필 끝을 이빨로 물어뜯어서 심만 뾰족이 내민 것 한 자루와 다 닳아빠진 연필 한 자루다. 연필깎이 칼은 아예 없다. 누나는 어제 숙제가 많았던지 내 필통을 챙기지 못했나보다.

 

이제까지 꾸중을 들어본 일이 없는 내 마음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는 나와 같이 손톱이 긴 또래의 원군이라도 찾으면 위안이라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나면서, 행여나 뒤 줄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까하는 욕심으로, 주위를 더듬었다.

 

한 아이를 찾았다.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런 것을 기지고 덜덜 떠느냐는 투로 제 손을 내 앞에 내미는데, 나도 적이 위안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톱이 너무나 긴데 놀랐다. 그러면 이대로 매를 맞을 것인가를 묻는 내게 걱정하지 말란다.

 

그 시간의 가르침은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내 귓구멍에 분필도막을 틀어넣었는지 몰라도, 가르침의 말씀이 내 귀를 뚫지는 못 했다.

 

기나긴 한 시간이 끝나자마자 뒤로 달려가서 매달렸다. 어떻게 하느냐를 재촉하는 나를 보고 웃기만 한다.

 

둘은 사이좋게 밖으로 나갔다.

 

어디에 가서 가위나 칼을 구한단 말인가. 점점 속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러다가 그냥 내 빼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없는 뒷마당으로 갔다.

 

물받이 밑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숙였다.

 

만사가 순식간에 해결됐다. 지금 생각해 봐도 통쾌하다. 쾌재를 불러 마땅하다.

 

그 때를 상기하면 지금 벌떡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고 싶다.

 

교사의 기초를 닦은 기나긴 '콩크트'주추위에 열 손가락을 일시에 문질러서 보드랍게 마무리까지 했으니 내겐 이런 기적이 없다.

 

친구 왈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마라.’ 이후 내내 손톱걱정은 아예 없었다.

 

 

누구는 어딜 가나 돈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모든 것이 돈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설파했다. 이 말은 구실을 말하는 궁한 이들을 위해 마땅히 귀담아 들어야 할 격려의 말이다.

 

손톱은 가위로만, 칼로만 깎아야 되는 줄 아는 내게 무한의 변칙적 가능성을 교사(敎唆?)하고, 이것이 사회가 용인하는 테두리 안이라면 결코 지탄은커녕 환영받아서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 대목이다.

 

궁조입회(窮鳥入懷)인가 아니면 궁여지책(窮餘之策)인가,

 

체험을 통한 터득은 내 인생에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참을성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심었으며 지녀야하는 덕목을 남겼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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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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