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받이를 겨우 면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럭저럭, 일 년을 때웠다.
학년이 달라지니 모든 게 새롭게 되어 엄격한데도 눈치코치 보아가며 위기를 넘기지만, 이 이번에는 된 통을 무릅써야 할 일이 닥쳤다.
전날 일러준 오늘의 손톱 검사를 새까맣게 잊고 있던 나는 오늘 아침 교실에 발을 들여놓고서야 깨닫고는 앞뒤 좌우를 훑어서 어떻게 해 볼 양으로 덤벼들지만, 마땅한 연장이 없다. 필통이라야 몽당연필 두어 자루, 쓸 만한 연필은 한 자루도 없고 지우개가 매달린 연필 끝을 이빨로 물어뜯어서 연필심만 뾰족이 내민 것 한 자루와 다 닳은 연필 한 자루다. 연필깎이 칼은 아예 없다.
이제까지 꾸중을 들어본 일이 없는 내 마음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엔 나와 같이 손톱이 긴 또래의 원군이라도 찾으면 위안이라도 될 것 같은 생각과 함께 행여나 뒷줄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까 하는 욕심으로 주위를 더듬었다.
한 아이를 찾았다.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런 것 갖고 덜덜 떠느냐는 투로 제 손을 내 앞에 내미는 데는 나도 적이 위안이 되면서도 그의 손톱이 너무나 긴데 놀랐다. 그러면 이대로 매를 맞을 것인가를 묻는 내게 걱정하지 말란다.
그 시간의 가르침은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내 귓구멍에 분필 도막을 틀어넣었는지 몰라도, 선생님 말씀은 내 귀를 뚫지 못했다. 기나긴 한 시간이 끝나자마자 뒤로 달려가서 매달렸다. 어떻게 하느냐를 재촉하는 나를 보고 그는 웃기만 한다.
둘은 사이좋게 밖으로 나갔다. 어디에 가서 가위나 칼을 구한단 말인가? 점점 속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러다가 그냥 내빼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없는 뒷마당으로 갔다.
물받이 밑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굽혔다.
만사가 순식간에 해결됐다.
지금 생각해 봐도 통쾌하다. 쾌재를 불러 마땅하다. 그때를 상기하면 지금 벌떡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고 싶다.
교사의 기초를 닦은 기나긴 콩크리트 틀에 열 손가락을 일시에 문질러서 보드랍게 마무리까지 했으니 내겐 이런 기적이 없다.
친구왈(曰).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마’, 이후 내내 손톱 걱정은 아예 없었다.
누구는 어딜 가나 돈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모든 게 돈으로 되는, 가능성을 설파했다. 그 말은 구실로 외면하는 궁한 이들을 위해 마땅히 귀담아들어야 할 격려의 한마디다.
손톱은 가위로만, 칼로만 깎아야 하는 줄 아는 내게 무한의 변칙적 가능성을 교사(敎唆?)하고 이것이 사회가 용인하는 테두리 안이라면 결코 지탄(指彈)커녕 환영받아서 마땅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한 대목이다.
궁측통(窮則通) 이라던가? 체험을 통한 터득은 내 인생에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참을성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심었고, 지녀야 하는 덕목을 남겼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