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리 남쪽으로 내려가면 자그마한 어촌이 있다.
‘두백’. 바닷가 마을의 근처에 있는 한 곳은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가는 소풍 터였다.
바다를 끼고 한길과 철길과 산을 나란히 하여 걸어가는 소풍 길, 해안가는 마치 그림 속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풍광이니 멀어도 즐겁기만 하다. 좋아서, 저마다 줄에서 빠져나가기 일쑤다.
금강산으로 내려가는 기찻길을 오른쪽으로 비켜 보내면서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의 좁은 길이 바다를 끼고 길게 늘어지다가 마침내 길은 없어지고, 산 등으로 좁은 길이 이어지면서 오솔길로 접어든다.
바닷바람에 고기 비린내를 더해서 이곳이 어촌임을 알게 한다. 퇴비 썩는 냄새를 향수같이 맡아온 내가 이곳의 고기 비린내엔 아직 코가 익숙하지 못하다.
오른쪽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초가집들이 어깨를 이어대고 있다. 초가집들은 양철집 금융조합과 어업조합이 버텨 서서 내려다보고 있어서 더욱 낮고 초라하게 보인다.
해풍과 가난에 찌든 얼굴의 노인들이 몇몇 어린이들을 데리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뿐, 장정들은 눈을 굴려 찾아봐도 없다. 길은 뉘어놓은 낚싯바늘처럼 굽은 코끝쯤에 이르러서 높은 언덕 위로 가늘게 이어져 휘어지듯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와 있다.
낚싯바늘 코 끝머리처럼 생긴 곳의 바위와 소나무가 그림같이 어울려서 해풍을 가리고 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낚시에 달린 미끼같이 낚시를 따라서 보기 좋게 휘어져 매달려 있다.
하얀 물결이 가늘고 길게 모래사장에 닿는다. 갈매기는 지붕 위를 넘나들며 방금 모래밭 위로 끌어올린 조그마한 배 위를 선회하며 서로 마주칠 듯이 날아다닌다.
뒤돌아보면 멀리, 들판을 지나서 내가 사는 곳, 우리 동네가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고 있다.
위에서 손잡고 밑에서는 발바치며 하나하나씩 내려간다. 오월의 태양도 이곳의 천연 피서지를 데우지는 못했는지, 바닥은 싸늘하다. 고기 비린내 없는 바다 냄새는 콧속을 한없이 넓히며 깊이깊이 파고들어 폐부를 넓혀간다. 이름하여 ‘뒷장’, 아마도 마을의 앞을 어장의 ‘앞장’으로 부르고 이곳을 어장의 ‘뒷장’이라 부르는가 보다.
이곳은 바위로만 둘러쳐진 작은 항아리처럼 생긴 곳이기에 배를 댈 수 없고, 그래서 그물을 놓을 수도 없어서인지 규모 있는 고기잡이는 하지 못하고 그저 낚시하는 배가 드나들 정도의 어장이다.
바다 밑은 온통 바위로 깔려있다. 그러나 신통하게 우리가 노닐 수 있는 바닥은 굵은 모래로 깨끗이 깔아 놓은 모래사장, 파도와 산의 조화가 신비롭게 이루어졌다.
절벽을 이룬 뒷산을 파도가 때려서 무너뜨리고 이 바위를 잘게 부수어서 흙을 만들고 잔잔한 물결로 씻어서 조금 큰 물결로 날라다 이렇게 넓고 희고 깨끗한 놀이터를 만들었나 보다.
수정같이 맑은 물밑은 온갖 수중 생명의 천국이다. 파도도 웬만큼 처서는 밀려오지 않는 천혜의 수족관이다.
해조류가 자라 새파란 옷을 입고 있는 바위 사이를 건너뛰며 물밑을 바라보던 한 친구의 고함에 놀라 모두가 긴장한다.
좀은 바위에 몰려갈 수 없는 친구들은 발을 제자리에 붙이고 일제히 맞장구를 치며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했다. 문어란다. 문어는 물속에서 무서운 힘을 낸다고 알려주는 그곳 두 백 친구의 말에 주눅 들어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같았으면.
그러나 그때는 불의 사고를 예방하려는 선생님의 억제(抑制)로 이루지 못한 점이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절벽이 남쪽 하늘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다. 해는 이미 산을 넘었고 햇빛이 비친 곳은 한 곳도 찾을 수 없다.
남쪽으로, 고기 등지느러미 같은 날카로운 칼바위가 이쪽 절벽 위 소나무그림자를 받아서 더욱 검다. 그 칼바위 끝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뒤로하고, 밑에서 발 받침 해주고 위에서 손잡아 당기며 하나씩 올라오던 그날의 소풍은 내 생애의 한 토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찌 이 한 토막을 잊으랴!/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