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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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001229 기차통학 기차가 다니고 있지만 난 아직 타 보지도 못한, 볼거리에만 그치고 있는 기차다. 그 무렵 기차 타고 통학하는 애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기차가 연착하여서 단체로 지각해도 꾸지람을 듣지 않는 특혜(?)가 더 이상하고 부러웠다. 산과 들이 푸를 때는 학교 앞의 언덕을 지나 ‘철다리(鐵橋)’를 향해서 숨을 몰아쉬는 기차 소리가 바로 옆에서 배웅이라도 하듯 줄줄이 서 있는 산과 그 산에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 빨아들여서 한결 가볍고 부드럽게 들렸는데, 이 한겨울의 오르막길 숨소리는 강바람을 타서 그런지, 기차도 추위를 타서 그런지, 더욱 숨 가쁘게 들려온다. 숨소리는 막힘없이 터져 나왔다. 이 기차 숨소리는 추위를 이겨야 하는 우리의 귀를 더욱 요란스레 때린다. 겨울의 기차가 내 뿜는 김은 유달리 희맑고 드세게 뿜는다. 타다 남은 탄가루를 섞어 토하는 연기가 기차 등줄기를 타고 흘러서 둑 밑으로 깔려 흩어지면 헐떡이며 내 뿜는 김은 더욱 희어 바퀴 밑에 숨어버린다. 힘겨운 기차는 언덕져 굽은 길에서 꼬리를 겨우 감추었다. 우리 모두의 눈은 창가에서 흑판으로 돌아왔다. 겨울 방학 전의 차가운 날씨는 교실 안의 남쪽 창가 절반의 책상에 앉은 애들에게는 햇빛이 따뜻이 감싸는데, 그곳 빈 책상은 그늘에 앉은 우리를 유혹한다. 아직 기차 통학생은 출석 호명에 응답이 없고, 마지못해 수업은 시작됐다. 이러니 기차에의 동경(憧憬)은 끊이지 않는다. 정거장에 쉬었다 떠나오는 기차래서 관성을 잃은 탓인지, 오르막길이라서 그런지, 보기에 안쓰럽다. 이 기차를 타고 어디든지 가보고 싶건만 기회가 아직 오지 않는다. 언제나 아무 생각 없이 기차를 바라볼 뿐이다. 나완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의젓 하려고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동으로는 바다로 막히고 서로는 태백 준령이 버티고 서있으니 뚫린 곳은 남북으로 길게 늘여서 뻗어있는 영동(嶺東)의 전형적 지형이다. 동서 너비는 한껏 오십 리쯤 되니 동서의 교통수단은 걸음이고 수송 수단은 달구지가 고작인데 남북의 교통과 수송 수단은 주로 기차다. 가끔 ‘목탄 자동차’가 선을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오십 리 밖을 나가보지 못한 내가 펴는 나래짓만은 천만리(千萬里)에 내달아서 구름을 탄다. 어느새 내 입이 벌어져 하얀 이가 드러나고 볼은 복숭아같이 튀어나오며 눈이 실눈이 됐다. 기차 가는 소리는 ‘철다리’를 건너서 멀리 다음 역에 알리는 긴 기적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하다. 그 위를 날아가며 객실 안의 또 다른 나를 본다. 기차가 폭발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분필 도막이 책상을 때리고 퉁겨서 옷자락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됐다. 그때 여닫이 유리문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길게 나면서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기차 통학생들을 따라서 찬바람이 밀물같이 쏟아져 들어왔다. 빈자리가 채워졌다. 내 옆자리도 채워지면서 김치 냄새가 한동안 교실 안을 휘돌다 출석부 밑으로 숨어버렸다. 점심때마다 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 나로서는 도시락도 부러웠다. 얼마나 맛있을까,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어 보지 못한 나는 기차 통학의 엉뚱한 꿈도 꾸었다. 배부른 꿈이었다. 출석을 다시 불렸다. 한동안 어수선하든 교실은 제자리를 찾은 우리 반의 때깔에 맞게 정돈되고 나는 비로써 달리든 기차에서 이탈되었다. 내려가는 기차가 짤막한 경음을 던지고 언덕을 미끄러지며 우리의 시선을 잠시 뺏어갔다. 연기도 안 나고 김도 내뿜지 않고 소리도 부드러웠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