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1

외통궤적 2008. 6. 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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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001227 일요일1

기다란 화단 위에 성큼 성큼 자란 해바라기 씨를 초가을의 햇빛이 갈색으로 물들이며 운동장 밖의 먼 초가지붕을 덮고 흔들거리는 밤송이의 가시를 헤집고 들어가서 밤아름을 익히는 일요일의 오후였다.

 

때를 놓친 매미가 홀로 하늘에다 외친다. 소리는 푸른 하늘을 더 푸르게 비웠고 맑게 울려 퍼지고 있다. 파장은 높아만 갔다.

 

화단 위의 나뭇잎과 꽃잎이 일제히 교실을 향해서 절을 하고 손을 흔든다. 소슬바람이 살짝 화단을 지나갔다. 넓은 운동장은 쓸어 간 듯이 말끔하고 평화롭다. 그 위의 수많은 발자국이 바람이 지나가는 넓은 호수 위의 작은 여울처럼 무늬저서 융단의 부풀은 털같이 포근하다.

 

어제의 즐거움을 되새기며 조용히, 모두가 신을 벗어들고 복도에 올랐다. 복도 끝은 멀리, 맞은편에 작은 네모자비로 터져 있다. 저곳이 우리가 드나들던, 많은 나날을 신 벗고 신 신고 재잘거리며 드나들던 그 출입구다.

 

다른 출입구에서 맞은편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천장도 자세히 올려다보고 상급반의 치장도 엿보게 되는, 새로운 우리만의 학교 체험인 것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어떻게 하다가 어울려서 예까지 온 것뿐이기 때문이다. 진정 아무도 없는 빈 학교를 체험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복도는 기차 굴처럼 길었다. 뚫린 맞은편 출입구밖에 강한 태양 빛이 쏟아져 복도의 그늘과 대조되어 스크린처럼 하얗다. 반짝이는 마루는 저편의 작은 네모자비 출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아 물결을 이루며 밀려오고 있다.

 

첫 교실에 들어갔다. 우리 중 아무도 이 높은 반의 교실을 훑어보며 감상한 애는 없었다. 그럴 기회는 좀처럼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만끽하고 있었다. 다음 교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제일 높은 반보다 한 학년 아랫반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교실에서 공부하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것, 몹시 흥분하여 자세히 살피며 재잘거린다.

 

다음 교실에 들렀다. 우리의 관심은 점점 식어서 머무는 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나오려는데 맞은 편 복도 끝에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나면서 이리로 걸어오는 이가 있다.

 

얼떨결에 그대로 되돌아 뛰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렸다. ‘도마레(서라:멈추어라)!’ 복도는 일시에 쫓기고 쫓는 토끼몰이 장이 됐다.

 

덮치는 고양이에게 쫓겨 갈 곳을 잃은 쥐 꼴이 됐다. 퇴로는 들어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이게 멥새의 뜀박질이 황새의 걸음을 당하지 못한 턱이 됐다.

신발장에 내려서면서 신으려는 신발을 모조리 낚아채는 품이 독수리 같았다.

 

덜미를 잡힌 우리는 교실로 몰려가서 신원을 확인 받았다. 허나 이유는 대지 못했다. 왜 일요일에 학교에 왔으며 왜 교실에 들어갔으며 왜 도망을 쳤느냐는 것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서라는데 왜 도망을 갔느냐는 데는 다시 할 말이 없다. 일렬로 늘어서서 뺨을 한 대씩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오는 길, 운동장 한쪽 돌담이 한없이 높아 보이고 해바라기 꽃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 할 수 없었으리라. 드넓든 운동장은 까만 고무신 바닥처럼 어둡고 좁아 보였다.

 

이것이 '조선사람'의 순박함인가, 아니면 우매함인가, 아무튼 현명하지 못했던 처사였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서라는데 뛰어 달아난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성실과 정직을 최대의 덕목으로 여기든 ‘나까사도(中里)’ 선생님은 상급반을 맡았고 우리는 그 선생님의 성품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뛰었다. 이때에 무엇을 어떻게 정직하게 설명해야 되는지 아직도 나는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 그때의 우리 행동을 이렇게 설명하겠다.

 

"선생님. 우리는 학교가 좋습니다. 학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상급반으로 오르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미리 알고 싶었습니다."  "일요일은 우리에게는 무료한 날이었기에 놀이터삼아서 갔었습니다."

 

이 말을 일본말로 알아듣게 설명하기란 우리가 너무 미숙했고 선생님은 너무나 의무감이 강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당직이셨고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인 선생님이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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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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