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기

외통궤적 2008. 6. 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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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001218 혼란기

해방의 참뜻을 미처 모르고 어영부영하는 사이 한 달이 지났다.

글이야 한글을 배우면 되지만, 우선은 애들을 통솔해야 하는 구령을 만들지도 못하여 각 학교 나름의 임의 조치가 불가피했다. 따라서 학교마다, 선생마다 발상이 백출했다.

구령만 해도 ‘차려’의 순우리말은 몇 달이 지나고서야 불리었고 그때까진 ‘기착’(氣着:교쓰께) 이었으니, 그야말로 ‘기가 차’는 노릇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구령에 의해서만 집단이 통솔되는 특질을 감안(勘案)하면 알 수 있듯, 구령을 만들지 못한 학교생활은 일대 혼란이다.

아무 대책이 없으니,

‘얘들아’.

‘저리 가거라.’

‘이리 오너라.’ 로 됐고 집단체조나 노래는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갈까마귀’ 떼처럼 앞서가는 애를 따를 수밖에 없고, 손짓으로 몰아가는 선생님의 수고 또한 측은하다.

이 무렵 우리 어린이는 공중에 던져진 풍선같이 바람 부는 대로 떠다니는 형편이 됐고, 망하는 것이 무엇이고 새로 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우리네가 이 기막힌 민족의 설움인들 알기나 했겠는가?

주도하든 일본인 선생님들은 종적을 감추고 조선인 선생 몇만 남아서 이 학급 저 학급을 돌며 징검다리 가르침에 애들은 무성한 상사(想思)의 급류를 타고 ‘공산주의’ 나라로 ‘자본주의’ 나라로 자맥질해 떠내려간다.



이직은 우리 동요나 가곡은 보급되지 않았고 재빠른 선생님은 일본 동요 곡에 우리말 가사를 지어 붙여 가르치기도 했다.

음치여서 노래를 늘 경원(敬遠)하던 나였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단 한 가지 노래, 그 선생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은 노래, 지극히 단조롭고 짤막한 토막노래가 평생을 두고 맴도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울을 동경해서였을까? 아니면 노래의 멜로디가 너무나 엉킨 엉터리 노래여서 그럴까? 이제까지 우리의 정서와 동떨어진 노래만 부르다가 우리와 친근한 지명과 우리의 생활과 이웃에서 찾을 수 있는 모습을 그려서일까? 아무튼 곡도 가사도 깡그리 생각나는 이 토막노래가, 이 노래를 발표하며 오르간 반주도 없이 가르치던 선생님 얼굴과 교차하며 선명히 떠오른다.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어/ 엿장수 늙은이가 있어 가위질하네/ 천천히 걸어가며 엿을 팔아요/ 석양에 한없이 가며 엿을 팔아요.

전부다.

석양의 종 거리를 지극히 간명하게 표징하고 있는, 해방 직후 내가 배운 첫 노래.

검증되지도 않았고 악보도 없으니, 노래책에 실리지도 않은 이 가사와 곡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요행을 바란다면 그때의 다른 친구들이 아직 고향을 지키면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을 것을 바랄 뿐이다.

얼굴이 넓적하고 자그마한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이 선생님은 공부를 서울에서 했나 보다.

촌뜨기 시골 소년, 내게 종로 거리 이름을 알려줌으로써 동경하든 서울의 풍경을 그리게 한, 그 선생님의 생사는 어찌 됐을까? 격동의 ‘광복’ 혼란기를 슬기롭게 엮어 넘긴 스승의 안위가 뒤늦게 떠오른다.

그리고 보고 싶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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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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