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내가 살기에 불편함이 없을수록 좋은 집이 될 텐데 이런 집에 살기란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형편에 맞아야 비로써 자기 집으로서 걸맞은 것이리라.
모든 공간이 이용되며 손길이 미쳐서, 적어도 하루 한 번은 들락거려야 내가 쓸 공간이다. 이래서 또한 내 손이 미치는 곳까지가 내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식구들의 수만큼 공간이 더 필요하리라.
이런 뜻으로 본다면, 내가 다닌 ‘소학교’의 사택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집이었다. 동남향으로 앉았기는 하지만 이는 학교의 운동장과 옆으로 나란하여서 보기 좋고, 그런가 하면 남쪽으론 커다란 침실을 넣고 북쪽으로 부속 방을 배치하고, 다시 남쪽 한 귀퉁이에 목욕탕도 설치하고 커다란 거실을 집 한가운데 배치한, 전형적인 일본식 집이다. 벽은 이중으로 되어서 난방과 냉방이 썩 잘된 여섯이나 일곱 칸쯤 되는 아담한 집인데 이곳에 교장선생 식구가 살고 있다.
일본 토박이인 이 교장선생은 심신이 교육자의 자질로 흠뻑 배 있는 전형임을 낮은 학년인 내가 알 수 있게 될 만큼이나 남달랐다. 즉 채소를 손질한다든가, 학교의 울타리 나무를 손수 손질한다든가, 화단의 꽃에 손수 물 준다든지, 구석구석을 내 집처럼 돌보고 손질한다.
이런 성품이니 어린이들에게도 자상하다. 아마도 이 교장 선생님 사택의 방안까지 들어가 보지 않은 어린이는 없을 것이다.
하교에 늦게 남아서 공놀이라도 할 때든지, 토끼 당번을 마치고 돌아갈 때든지 눈에 뜨이면 불러들여서 과자나 떡을 내놓는다. 그냥 돌려보내는 때가 없다. 하다 못해서 찻잔이라도 내놓고 우리를 따뜻이 맞아들이는 그 사모님의 인상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처럼 우리를 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위생시설을 익히 아는 부부는 우리를 목욕탕까지 빌려주며 베풀었다. 그래서 꼬마, 내가 그 집의 구조를 상세하게 알고 그 고마움을 못 잊어서 새기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외는 천생으로 교육을 떠맡은 분 같았다. 비록 식민지의 오지(奧地)에서 지금이나 장내에 그와는 아무런 연관(聯關)이 없을법한 우리 꼬마를 천사같이 떠받들었던 것은 이제 생각해도 참으로 경탄하고 존경스럽다. 바로, ‘스스키 고타로’ 교장 선생님이시다.
그런데, 후임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대하는 방법은 영 다르다. 그래서 더욱 돋아 보이나 보다.
이 집에 어느 날 ‘해방군’이 들이닥쳤다. 한 지역을 평정해야 하는 대상인 주둔지는 전승국의 전리품이다.
전락한 사택은 그날부터 집이 아니라 병영으로 바뀌어서 집안은 신을 신고 들고나는 풀밭으로 변했다.
벽에는 꼬부랑글자가 쓰이고 마당에는 기관총이 걸리고, 말과 마차가 마당을 차지하고, 채소밭은 말먹이가 싸이고, 나뭇잎은 총구멍을 내어 달랑거리다가 뱅글뱅글 돌면서 떨어지는 표적이 되었다.
패전의 당사국이 아닌 우리 시골에도 이토록 변화가 닥치는데, 당사국인 일본의 본토는 오죽 하랴 싶다.
넓은 공터, 운동장이 있고 공용건물인 사택이 있는 한, 그 후에도 이곳의 주인은 몇 번은 더 바뀌었으리라. 사택은 그냥 말이 없이, 주인만 바뀌니 그들 주인의 됨됨이를 사택 너만은 잘 알리라.
그러나 장차, 그 사택에 물어본들 대답 없이, 울 친 큰 나무만 쳐다보라고 할 것 아닌지?/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