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택

외통궤적 2008. 7. 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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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010113 사택

집은 내가 사는데 불편하지 않을수록 좋은 집이 될 텐데 이런 집에 살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형편에 맞아야 비로써 자기 집으로서 걸맞는 것이다. 모든 공간이 이용되며 손길이 미치고, 적어도 하루 한번은 들락거려야 내가 쓸 공간이다. 이래서 또한 내 손이 미치는 곳까지가 내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식구들의 수만큼 공간이 더 필요하리라. 이런 뜻으로, 내가 다닌 ‘소학교’의 사택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집이었다. 동남향으로 앉아있지만 이는 학교의 운동장과 옆으로 나란하여서 보기 좋고 달리 남쪽으론 커다란 침실을 넣고 북쪽으로 부속 방을 배치하고, 다시 남쪽 한 귀퉁이에 목욕탕도 설치하고, 커다란 거실을 한가운데 배치한 전형적인 일본식 집이다.

 

벽은 이중으로 되어서 난방과 냉방이 썩 잘된 여섯이나 일곱 칸쯤 되는 아담한 집인데 이곳에 교장선생님 식구가 살고 있다.

 

일본토박이인 이 교장선생님은 심신이 교육자의 자질로 흠뻑 배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저 학년생인 내가 알 수 있게 될 만큼이나 남달랐다.

 

채소를 손질한다든가 학교의 울타리나무를 손수 손질한다든가 화단의 꽃밭을 손수 물 준다든지, 구석구석을 내 집처럼 돌보고 손질한다. 이런 성품이니 어린이들에게도 자상하여 아마도 이 교장선생님 사택의 방안까지 들어가 보지 않은 어린이는 없을 것이다.

 

하교에 늦게 남아서 공놀이라도 할 때든지, 토끼 당번을 마치고 돌아갈 때든지 눈에 뜨이면 불러들여서 과자나 떡을 내놓는다. 그냥 돌려보내는 때가없다. 하다 못해서 찻잔이라도 내놓으며 우리를 따뜻이 맞아들이는 그 사모님의 인상은 남다르다.우리 모두의 어머니처럼 우리를 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해 졌는지 모른다. 우리의 위생시설을 익히 아는 부부는 우리를 목욕탕까지 빌려주며 베풀었다. 그래서 꼬마, 내가 그 집의 구조를 상세하게 알고 그 고마움을 못 잊어서 이렇게 되새기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외는 천생으로 교육을 떠맡은 분 같았다. 비록 식민지의 오지(奧地)에서 지금이나 장래에 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법한 우리들을 천사같이 떠받들었던 것은 이제 생각해도 참으로 경탄하고 존경스럽다. 이 교장선생님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어디론가 전근되셨다. 

 

후임 교장선생님의 우리를 대하는 방법은 영 달랐다. 그래서 전근하신 '스스키' 교장선생님이 더욱 돋보이나보다. 어느새 전쟁은 끝났다.

 

 

이 집에 어느 날 해방군이 들이닥쳤다. 고을을 평정할 주둔지로서, 전승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사택은 그 날부터 집이 아니라 병영으로 바뀌어서 집안은 신을 신고 들고나는 풀밭으로 변했다.

 

벽에는 꼬부랑글자가 쓰여지고 마당에는 기관총이 걸리고, 말과 마차가 마당, 교정을 차지하고, 채소밭은 말먹이가 싸이고, 나뭇잎은 총구멍을 내어 달랑거리다가 뱅글뱅글 돌면서 떨어지는 표적이 되었다.

 

패전의 당사국이 아닌 우리의 시골에도 이토록 변화가 닥치는데, 당사국 일본의 본토는 오죽했으랴 싶다.

 

넓은 공터, 운동장이 있고 공용건물인 사택이 있는 한 그 후에도 이곳의 주인은 몇 번은 더 바뀌었으리라. 사택은 그냥 말이 없이, 주인만 바뀌니 그들 주인의 됨됨이를 사택 너만은 잘 알리라.

 

그러나 장차 그 사택한테 물어본들 대답 없이, 그냥 울을 친 큰 나무만 쳐다보라고 할 것 아닌지!.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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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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