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맞은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문맹자를 없애야 국가건설에 이바지하고 문화민족이 된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 남 없이 외쳐댔다.
인적자원이 없으니 병아리 걸음의 어린이를 동네마다 내몰았다. 우리들의 한글 실력은 겨우 ‘맞춤법 통일안’을 떼었을 따름인데, 우리더러 ‘문맹 퇴치’를 담당하라며 분담시키니,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어머니가 글을 모르시니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달은 휘영청 밝은데, 공책 하나 들고 밤나무 그림자를 딛고 걷는다. 내가 가는 곳, 어머니들의 야학인 ‘동구’ 아저씨네 집 안방이다.
벌써 어머니들 대여섯이 모여서 열심히 쓰고 읽고 있다. 책상도 없고 책도 없으니 그냥 방바닥에 퍼져 앉아서 한글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섞으며 사랑방처럼 말 꽃을 피우는 구실도 함께 하는 꼴이다.
글공부는 어머니들에게는 어렵지만, 어린이들의 성화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나오긴 했는데 진전은 그저 그렇다.
홀소리와 닿소리를 조합하는 것을 매일 반복하고 쓰기를 한다. ㄱ ㄴ ㄷ ㄹ…ㅎ에다가, ㅏ ㅑ ㅓ ㅕ…ㅣ를 붙여서 읽고 쓰게 하고, 다음으로 각 글자에 ㄱ 부터 ㅎ 까지 붙이고, 다음 반모음 ㅚ ㅟ ㅐ ㅒ ㅔ ㅖ를 붙여서 각각 발음하게 하니 우리말에 없는 발음도 나오며 여러 가지의 이상한 글자가 되는데도 아랑곳없이 그대로 밀고 나간다.
글자 읽기 발음을 또렷이 해야 하기에 각각의 글자를 열심히 읽다 보니, 어느새 우리말 한글은 비교적 정확한 발음이 되어갔다.
이것이 오늘날 내가 각 지방 사투리에 동화되지 않고 지켜 가는 나름의 밑 걸음이 됐다. 어설프게, 가르친다면서 내가 배운 꼴이다.
내가 편지 봉투에 아무아무 ‘빌딍’을 썼더니 딸 녀석이 깔깔대고 웃는다. ‘딍’자는 없다는 것이다. 낱말로 보아서는 없을지 몰라도 엄연히 있는 글자라는 게 내 지론이다.
낱말부터 배운 딸과 글자를 조합하며 맞추어 배운 나와의 차이이다.
그러니 나는 우리말에 없는 글을 쓰고 잘도 발음한다. 우리말도 아니고 우리글도 아니라면 이는 버려진 글자일터인데 아쉽다. 즉 구+ㅐ, 구+ㅒ, 구+ㅖ,…등, 당시엔 이런 것도 글자로 알고 발음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글의 자모음을 어떻게 맞추어 놓아도 발음은 정확하다. 아마도 요새 사람이 들으면 박장대소할 것이다. 그렇지만 글자로 배운 사람들이 방언을 못 고치거나, 제대로 발음 못 하는 사람들이 만약 나와 같은 방법으로 글자를 익혔다면 모름지기 그들의 말이 사투리라고 하드래도 발음조차 낼 수 없는 엉터리, 지성인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경’을 ‘갱’으로 발음하는 것은 잘못 익혀서 그렇다 치자. ‘의’는 ‘으’로 밖에 발음하지 못함은 자모음의 조합을 차례로 읽게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들에게 글자를 조합하여 차례대로 읽게 했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즉 겹으로 읽도록, 두 글자의 조합임을 가르쳤다면 발음 못 할 리가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읽는 사람 스스로 각 글자를 귀로 들어야 알기 때문에 저절로 글자의 옳은 발음이 나올 것이다.
이것을 한 음으로 발음하도록 ‘낱말’부터 가르치니 문제가 생겼다. 우리말의 깊은 맛은 사라지고 ‘된소리’와, ‘한 음절 소리’만을 하기 쉽다고 굳힌다면 머지않아서 우리도 받침을 떼어버리려는 움직임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
아무튼, 그때 우리는 고지식하게, 미련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판자를 주어다가 먹을 갈아서 칠하고 분필 가루 받침을 붙이고, 한쪽 벽에 기대어 세워서 쓰게 하고 틀린 것과 맞는 것을 가려주는 것이 고작인 셈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책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시는 어머니들이야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 농촌의 많은 어머니는 평생을 불편 없이 잘도 살아오셨음을 생각할 때 머리가 숙여 질 뿐이다.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는 마음이 앞서며 감정을 자제하고 자식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물며 계셔서는 안 될 우리 어머니가 늘 야학에 계시니 내가 신경이 쓰여서 가르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맡은 구역에는 분명 어머니가 포함되었으니 제외할 수는 없었기에, 함께 고통을 받는 날이 얼마간은 계속됐기에 빛은 본 셈이다.
문맹은 벗어나셨고 나의 수치도 가시고 의무도 다한 셈이니 효과는 거두었다.
과연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글을 몰라서 불행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글을 몰라서 차라리 속 편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내 생각은 깊은 수렁으로 점점 빠져든다.
생각건대 알수록 고뇌의 폭은 넓어질 것이고, 아는 것만큼 못다 한 의무는 다시 고뇌의 몫으로 더해진다고 보아,
‘아는 것만으로는, 행복(幸福) 못할 게다.’
고 못 박는다.
지식과 행복을 등식화하려는 우리의 삶이 옳은 것인가를 되새겨봐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생각을 이어간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