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봉

외통궤적 2008. 7. 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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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010126 백 정 봉

눈을 감고 시간을 초월한다. 사람은 특별히 지으신 하늘의 조화로 앉아서 구만리도 가고 눈감고 태고로 돌아가는가 하면 먼 앞날을 살기도 한다.

 

육십 년 전의 소풍 길을 더듬는 행복은 생각하는 나 외에는 아무도 누릴 수 없는 오직 생각하는 사람의 온전한 몫이니 누가 덮쳐 채 갈수가 있을까? 누가 허물어뜨리길 하겠나?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그 즐거움을 이제 다시 맛보려 하는 내 욕심이 너무나 지나친지는 몰라도 눈을 감고 그 길로 들어서고 싶다.

 

커다란 풍선 같은 인생의 밑, 한 끝에서 시작하여 둥그렇게 한 바퀴 돌아 이제 다시 출발 점 반대편의 다른 한 끝으로 돌아왔으니 팔을 펴서 싸안으면 반대편 출발점이 잡힐 것 같아서 더욱 욕심부려본다.

 

봄을 칠한 연녹색 산야가 싱그럽다. 산들거리는 바람은 풀잎 냄새를 바람에 실어서 우리의 옷자락을 펄럭이며 눈과 코에 넣는다.

 

왼쪽 바닷물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고 해안가 모래밭은 바다 밑 깊숙이 박혀서 밀려드는 파도를 부드럽게 다독이는 ‘말구리’동네 바닷가를 이제 막 지난다.

 

자갈길 신작로가 무명필을 깔아놓아 바래듯이 희고 길게 뻗어있다. 하늘의 깃털구름이 제비 떼의 사냥 길을 내려 보며 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바다는 점점 멀어지며 양옆은 넓은 들로 가득 채워지고, 멀리 구름을 이고 노니는 바위산 ‘백정봉’이 보인다. 까만 논둑을 따라 바둑판 줄처럼 모지게 심겨진 묘포기 사이가 넓어졌는가하면 좁아지고 다시 넓어지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넓은 논길이다.

 

개구리 뛰어 드는 물 첨벙 소리는 우리의 노래 가락에 잦아든다. 옛날부터 할머니들의 입을 통하여 풍년가 가락에 맞추어 부르던 귀 익은 소리다. 내 남 할 것 없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 가락이다.

 

 

‘백정봉’ 기묘한 곳 산수 구경 가세/ 천하명산의 금강산과 ‘백정봉’이 절경 일세/ 올해도 풍년 내년에도 풍년/ 명년 춘삼월에 ‘백정봉’ 이나 가세.’ 우리는 이 노래를 가르쳐준 이가 없는데도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서 곧잘 부르며 산기슭까지 다다랐다.

 

들과 솔밭을 건너 멀리 바다가 보이는 산등성에 이르러 굽어보니 세상은 점점 작아지고 하늘은 점점 높고 산은 점점 커 보인다.

 

흙이라기보다 모래를 다져 빚은 산, 뿌리를 내릴 수 없어서 허리가 꼬부라진 나무, 바위틈을 비집고 틀어 올린 용트림나무, ‘기묘한’ 산임에 틀림없다.

 

모래바위를 오르는 산행은 미끄럽고 위험하다. 바닥이 모래 같고 바닥이 바위 같아서 잘못 디디면 모래가 바위 위를 구르면서 우리의 발바닥을 간질이는가 하면 몇 발자국 되 물려 내려가기 일쑤다.

 

산등성이에 이르러서, 골 패인 능선 길은 손발이 다 필요한 길이다. 헐떡거리며 두 시간쯤 올라 정상에 이른다.

 

하늘이 물을 담아 두었다가 가뭄에 비를 내리는 솥이 백 개나 있다 해서 ‘백정봉(百鼎峰)’이다.

 

지름이 약 일 미터, 깊이가 약 칠팔십 센티미터나 되는 웅덩이들이 올망졸망 하게 있다. 이런 것이 산꼭대기의 ‘너레바위(넓은바위)’ 위에 백 개가 넘게 흩어져 박혀있다.

 

그래서 이 산은 신령한 산이고 부정을 탄 사람이 오르면 신령이 노하여 바람과 비와 천둥번개를 내린다하고 하여 먼저 이웃과 친목하고 등진 사람과는 화해하고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집채 같은 바위틈에다 돌로 다듬어서 조그만 집을 만들고 돌문도 만들어 달았다. 그 문을 열고 정성을 담은 돈을 놓으면 좋은 일이 있다하여 누구든지 이곳에 오른 사람은 얼마간의 돈을 놓고 가게 마련이다.

 

헌데 이 돈의 임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무서워서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람소리만이 귀를 울린다. 이곳의 바위는 신발을 잡아당기듯이, 달라붙는 특이한 바위라서 미끄러지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잘못 디디면 가마솥의 물속에 발을 헛디딜까봐 늘 조심하고 있어야한다.

 

이곳에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없고 고함을 치는 사람도 없다. 마치 하늘나라에 온 것같이.

 

솥 안의 물이 마르거나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야한다.  제물의 피를 이곳 바위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면 사흘 안에 바위를 씻으려고 비를 내리고 백 개의 솥에다가 물을 채워 넣는다는 것이다.

 

신묘한 바위솥을 만든 하늘의 능력을 경외하여 몸을 사리고 말도 줄이고 행동도 삼가는 이곳, ‘백정봉’이 내게 준 영험(靈驗)을 고이 간직하고 평생을 살고 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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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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