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외통궤적 2008. 7. 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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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010305 낙동강

백 리 밖을 나가보지 못한 내가 앉아서 천 리를 보고, 서서 구만리를 본다 한들 누가 곧이들을까 마는 그래도 나는 앉아서 낙동강을 보았으니, 그것은 집을 떠나온 후 지금까지 이름조차 다시 들어 보지 못한 ‘이태준’의 어느 글 속에서 발췌해서 가르친 국어 시간의 영향이다.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외마디 구절이 한반도의 남쪽 끝을 앉아서 보게 했고, 눈을 감고 넘실넘실 흐르는 강물을 연상하고 주변의 자연을 그리곤 했다.

강의 범람으로 유역의 농경지가 침수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물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몇 해가 계속돼도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찾질 못하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집을 떠나서 머나먼 북간도로 향해 가는, 유랑의 길을 묘사한 어느 대목에선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가 당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몹시 내 마음이 아렸다.

아마도 그들 일행 중 어느 집은 긴 여행길의 길목에 있는 우리 동네를 지나면서 우리 집에서 고달픈 하룻밤을 지내고 한 끼의 밥을 얻어먹고 다음 날 새 길을 재촉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노자가 떨어지면 며칠씩 일을 하고 노자를 마련하여 떠나기도 하고 더러는 일 년을 머슴 살기도 했을 성싶다.

그들이 떠나온 강, 넓은 강폭을 감싸 안은 갈 때가 가을바람에 쓸려서 커다란 물결을 이루어 간다. 이 갈꽃의 물결은 떠나는 유랑민을 향해서 앞으로 닥칠 눈보라를 예시하여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철새가 강 유역을 찾아서 날아오건만 정작 이곳에 살던 민초(民草)가 줄을 지어 북으로 한 집 두 집 떠나가는, 자리바꿈의 처절한 사연을 아는 이는 다 안다.

계절이 따로 없는, 입치레의 북쪽 텃새가 되려는 것이다. 철새만도 못한 인간이다. 철새는 따스한 남쪽으로 먹이를 찾아서 날아드는데 사람은 먹이를 찾아서 다시 올 수 없는 추운 시베리아로 떠나는, 지상과 공중의 환지(換地) 계약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 기막힌 사연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저 있어서 먹고, 있어서 사는 것이다. 이제 정든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땅을 기어 북쪽으로 머리 두었다. ‘이태준’은 그렸다.

외마디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기러기 떴다. 낙동강 위에 갈꽃이 나부낀다.’ 는 이 시대의 전부를 축약한 글, 이 글은 가보지도 못한 낙동강 유역의 한곳의 땅덩어리와 함께 나의 작은 머릿속에 깊이깊이 박아놓았다.

그래서 나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이 한 글귀로 해서 생생히 느끼며 사무치도록 새겼고, 그 모두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듯하다.

또, 그래서 낙동강은 가난의 상징이요, 민족 유랑의 상징이요, 치욕의 낙동강, ‘육이오’의 상흔으로 기억된다. ‘이태준’, 글 속의 낙동강을 건너가는 기회는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뒤였다.

한적한 강 건너 언덕 위의 외딴집 언저리에 키 큰 버드나무 끝에 걸린 연의 하얀 꼬리가 바람길을 알리고 있다. 소리 지른 한참 만에 언덕 위의 외딴집에서 사공인 듯 흰옷이 움직이고, 이윽고 삐걱 소리를 한번 내드니 조용했던 강기슭에 물결을 이룬다.

사공의 삿대 소리라도 들릴 듯 한적한 늦가을 들판이다. 이 이쪽으로 부는 바람에 발밑의 강물이 철썩거린다. 강폭은 좁고 깊다. 양옆의 갈 때 밭은 길고 좁게 하늘거리고 있지만 내가 익히고 있는 낙동강은 아니다.

낙동강 칠백 리 중 지류인 남강의 한 지점 ‘경상남도’의 '함안'이다.

아직 나는 ‘이태준’의 ‘낙동강’을 감상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갈꽃이 피는 초가을 기러기 떠가는 낙동강을 보고 싶다. 더하여 저녁노을이라도 지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나 낙동강을 떠난 많은 우리의 먼 살붙이들은 북쪽 어디에서 그 후손의 입을 통해서 이 갈꽃을 갈구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마음은 흐르는 낙동강 물의 깊이만큼, 깊게 넓게 저며 온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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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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