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교사

외통궤적 2008. 7. 6. 09:13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860.010311 신축교사

새로 지은 교사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졸업하기 전에 공사의 상당한 진척이 있어서 형체가 들어날 즈음에 고향을 떠났으니까 아직 내 머리엔 미완성의 교사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배움의 터전이라고 애착이 가는 이 교사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우리는 어느 날 벽돌을 찍는 현장에 우르르 몰려갔다. 다들 관심이 있는 애들이긴 해도 더러는 다른동네 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우리 동네 애들이 적극적으로 이 교사에 관심이 많다. 그들의 대부분은 학교의 위상을 겉으로 나타나는 교사의 크기나 화려함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위축된 심리를 달래보려는 바람이 또한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나의 또 다른 유별난  욕심은 그림 같이 아롱이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과수원 길 건너 넓은 공터에서 시멘트 벽돌을 찍는 아저씨들에게 묻는 첫마디는 ‘몇 층으로 짓느냐’이고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언제 다 지어지느냐’는 물음이라야 옳을 법한데 한결 같은 물음이 ‘몇 층이냐'이니 여기엔 우리 또래나름의 소원이 담겨있다.

 

 

앉는 자리를 넓히려고 벽을 털어서 그렇게 됐겠지만  실내에 기둥이 있는 가(임시)교실은 영 부끄럽기 그지 없다. 하늘아래 없을 것이기에 더욱 면하고 싶은 곳이련만 오히려 층 타령만 하는 어린것들의 순박한 애향심일 애닯다. 그들의 머리엔 금전이란 개념은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며칠 뒤, 이번에는 쌓는 일을 하는 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함께 간 패거리는 그때에도 거의 같은 애들이었다.

 

묻는 애들의 입빠른 순서는 전번과 조금도 엇갈림 없이 이어졌다. ‘단층’을 짖는다는 대답이었고 이 소리를 듣는 애들은 일제히 왜 ‘한 층’으로 짖느냐는 볼멘소리를 저마다 내뱉었다. 일꾼들의 몫이 아님을 알면서도 누구에게라도 항변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공감이었기에 같은 불만이 터저나왔다.  저마다 입은 모래를 씹은 듯 한마디씩,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 지르고 교실로 되돌아가면서 뒤돌아보곤 했다. 무척 아쉬운 표정들이었다.

 

 

적어도 자기들의 눈앞에서 지어지는 자기의 모교가 자기마음에 들도록 지으려는 충정은 누구의 가르침도, 누구의 사주도 아닌 순수한 그 고장의 정서에서 울어나는 것이니 타 지역에서 지으려고 온 분들에게 먹혀들 리도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래서 더 우울하다. 이는  늘 내 마음한구석에 내가 사는 고향이 다른 고장보다 낫기를 바랐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는 비교적 교통과 문물이 일찍이 튼 면소재지었다.  비교적 인구가 많은 면소재지인데다 갖출 것은 다 갖추었지만 그 면모는 그래도 늘 농촌의 한 마을이다. 그래서 내 마음 한구석에 똬리 틀어 있는 잠재의식에 불씨가 살아났을 것이다. 

 

내 어렸을 적 한  때 였다. 내가 하루 거르는 학질이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고열에시달리는 학질을 앓을 때였다. 어머니를 따라서 읍내의 한 양방의원에 갔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 본 읍내의 거리가 우리 동네와 사뭇 다른 것 중 단 한가지, 이층집이 여러 채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 때만 해도 높은 곳이면 어디든지 기어오르고 싶은 충동에 날뛰던 때였으니 읍내 나들이에서 처음 보는 이층 집이 몹시 부러웠던 것도 그럴만하다. 이층에 올라가고 싶은 충동에 어쩔 줄을 몰랐다. 다락같은 이층이래도 이층이면, 이층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 까싶은, 부러움의 극에 달했던 기억이 내면에 자리해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학교의 교사가 적어도 우리 동네의 체모를 바꾸어주었으면 하는 한자락바람 또한 뭍여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쩌면 조그마한 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 집이 아니래도 좋고, 비록 거리의 면모가 새로워지지는 못 하드래도 우리 마을에 이층집이 있다는, 그것이 작은 몸집의 나를 무척 기쁘게 할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무렵 이층집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손에 끌려갔던 읍내의 거리가 우리 마을에 조성됐으면 하는, 야무진 꿈이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교사의 꿈은 이미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그 교사는 전란으로 인하여 앞으로 영영 못 보는 교사로, 우리 마을 전체와 함께 불타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꿈속에서나마 벗듯한 이층 교사(校舍)로 장식 할 것이다. /외통-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누이  (0) 2008.07.07
쌀자루  (0) 2008.07.07
낙동강  (0) 2008.07.05
음악  (0) 2008.07.04
백정봉  (0) 2008.07.03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