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외통궤적 2008. 7. 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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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010318 오누이

아버지는 손위의 누님을 끔찍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 가을철만 되면 고모님을 기다리신다.

 

껑충거리며 온 동네를 쓸고 다니는 내게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고모님 마중을 내 보내신다. 고모님 마중은 한적하고 단조로운 나의 하루를 신나게 했고 핑게 삼아서 정거장에 나가는 일상으로까지 나를 이끌었다. 고모님 마중은 아주 어릴 적, 코흘리개 때부터 있어왔다. 때문에 가을철엔 아침밥만 먹으면 서슴없이 정거장으로 나갔었다.

 

그 고모님에게 아버지의 사랑 표현을 듬뿍 담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나로 인하여 만들어지고, 그동안 못한 할머니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도 담아 보내는, 마음의 달구지가 처음으로 먼 길을 떠나 여기'오릿말(오류리)'에 와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내게 고모님은 아버지가 오늘 다녀가셨다고 알려주시면서 내 머리에 또 손을 얹으신다. 툇마루 한쪽 구석에 쌓은 쌀가마가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게 했다. 부자의 정이 이런 것인가 싶다.

 

 

짐작하건대, 개학 때 내게 짊어 보낸 낱알이 누님의 생활에 별다른 보탬도 드리지 못한 채로, 몇 달씩을 그냥 파먹고 있었으리라고 여기신 아버지께서는 미안하시기도하고 또 어려운 살림에 양반체통 지키시느라 굶고도 내색 없으실 사돈마님의 처지를 지극히 염려하셨을 할머니의 마음이 오늘에 이르게 됐음이 틀림없다.

 

나를 고모님 앞으로 떠나보내시고 여러 날을 재고 다듬어서 오늘을 만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진종일 준비하느라 바쁘셨을 터다.

 

미루어 보면, 며칠 전에 쌀을 찧어서 뒤주와 독에 담으셨고 또 새 쌀가마를 골라서 여기다가 일등미를 고봉으로 담아 정성들여 묶어서 몇 개를 만드셨을 것이다. 이렇게 분주히 마치고 이발도 하시고 매무새도 다잡아 보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오늘 조반(朝飯)은 새벽에 찹쌀떡을 드셨을 것이다. 이미 따끈한 인절미를 곱게 잘라서 팥고물과 콩고물에 듬뿍 묻혀 작은 고리에 담아 보자기로 다시 싸서 얌전하게 한구석에 모셔놓은 뒤였을 것이다. 그 한옆에 작은 보시기와 따로 싼 떡 뭉치와 물병이 나란히 있었을 것이고 이것들이 아버지의 참이었을 것이다.

 

기차가 나르는 소화물로 부쳐도 되련만 이것은 너무나 사무적이고 상업적이라서 애초부터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이시다. 전날에는 바쁘신 중에서도 소달구지를 손질하시고 쇠털 긁기로 소머리로부터 등허리를 걸쳐서 뒷다리의 쇠똥 딱지도 말끔히 빗겨 내렸을 것이다.

 

아버지의 옷차림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흰 고무신을 신으셨을 것이다. 모자는 중절모를 쓰셨을 것이다. 어둠이 가시면서 아버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셨고 이어 달구지는 달가닥거리면서 신작로에 들어섰을 것이다.

 

농사일만 하는 암소에는 발바닥에 쇠 발굽을 달지 않는다. 모름지기 무논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는 일소는 발바닥과 쇠 발굽 사이에 흙이나 다른 몹쓸 것이 스며서 소가 고통을 받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운송수단을 삼는 전문운송달구지의 황소는 자갈밭길로 된 먼 신작로 길을 며칠씩 달구지를 끌면서 걸어 가야하니까 그런 소의 발바닥에는 반드시 쇠발굽을 달아야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끄시는 우리 소는 맨발의 일소이기에 그 점이 아버지의 신경을 몹시 쓰시게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날의 행로가 이런 소로 인해서 즐겁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다.

 

사 십여리가 족히 되는 자갈밭 신작로를 맨발의 소가 무거운 쌀가마를 몇 개식이나 싣고, 게다가 커다란 쇠 바퀴가 달린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를 바라봐야 하는 아버지로서는 안쓰러운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해서, 그 날만은 할머니의 특별한 관심 속에서 콩을 많이 섞어 넣은 아침여물을 소에 먹였을 것이고 질름질름 쉬면서 함지다 퍼온 콩 섞인 여물을 먹이면서 달래며 쉬게 하였고 소발바닥도 식혔을 것이다.

 

깨끗한 마대(麻袋)를 달구지 앞자리에 깔고 그 위에 걸터앉아서 오랜만에 산천의 관조(觀照)도 하련만, 아버지는 그렇게 하시질 않고 꼬박꼬박 걸어 오셨을 것이다. 이렇게 당도하신 아버지는 갖은 잡곡 낟알과 푸성귀가 함께 내려졌을 것이고 고모님은 하얀 이를 드러내시며 동생의 꺼칠한 손을 맞잡았을 것이다.

 

 

오누이의 만남은 더운점심 한 끼로 짧고 진하게 농축되었고 사돈의 체모도, 누님의 입장도, 오라버니의 치레도, 이렇게 나의 하숙비 명목의 양식조달로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지 못하고 그 흔적만 바라보는 하학 후였다. 이번 주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 내려가 뵈어야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떠나가신지 벌써 두 시간 가량 되었다는 고모님 말씀에, 긴 ‘덕 고개’ 언덕을 넘어서 ‘통천’읍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가볍게 내려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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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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