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자란다는 말이 있다.
성장기에 누구나 한 번쯤 싸우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생각일까?
내가 싸울만한 체구도 못되면서 싸운다면 누구나 거짓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사지가 남다르게 길어서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느리고 둔하게 비쳐서 그런지 자주 놀림을 당한다. 민첩하지 못하고 굼떠서 얕잡아 보는 가보다.
일직이 이점을 알아차린 나는 내 운동신경을 발달시키고자 남몰래 무진 애를 쓰면서 갈고 닦았다. 철봉에 늘 매달려서 살았고 멀리 뛰기와 공차기도 열심히 따라붙어서 했다.
그러나, 역시 달리기의 발놀림이 빠르지 못하고 운동신경이 덜 발달해서인지, 번번이 뽑는 데는 빠지곤 했다. 나를 연마하는 셈 치고 집에다가 줄을 매고 두 발을 띄워서 차는 연습을 오랜 기간을 했었다. 덕택에 자신이 생기고 두려움도 없어졌다.
이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기에, 이제는 자신이 생겼다. 한데 이것이 실전(?)에 이용되는 불미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숙방에는 셋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까불이’ 별명을 갖고 나와 같은 ‘인민학교’ 다녔던, 우리 동네에서 바닷가로 오리나 내려가야 하는 ‘말구리’에 사는, 키가 작고 민첩하고 날쌘 애였다.
다른 한 애는 ‘통천’에서 중학교 다닌 친구인데 나보다는 체구도 크고 듬직한 친구였다. 우리 셋은 학교에선 서로 다른 반이었기에 학교생활에서 만남은 비교적 잦지 않았다.
그렇지만 학교 밖의 생활권(生活圈)은 하숙집이 대부분이다. 이때 자주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문 가에서는 자지 않으려고 이미 만들어 놓은 순번을 망쳐놓는다든지, 어리광도 아니고 놀림도 아닌 변화무쌍한 ‘카메레온’ 같은 얼굴을 하며 때로는 조롱도 하고 때로는 아양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다른 한 친구와 이간을 시키는 말재주도 부리는 짓, 이런 짓도 장난이라며 서슴없이 자행한다.
이 모든 걸 용납하는 것은 ‘최용상’. 이 친구다.
그는 관용의 미덕을 충분히 쌓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서 공통적인 것은, 나도 용납할 수 있지만, 내 개인의 신상(身上)이나 신체적 취약점을 들어서 자기의 즐거움으로 삼는 꼴을 보아 넘길 수 없는 게 나의 단점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고 폭발하고 만다.
키 160cm에 체중 47kg, 내 체격이 잠자리에선 볼품없는 막대기쯤으로 느낄 수 있었겠지만, 이것을 들어서 하릴없이 되뇌고 집적이고 공부를 방해한다.
그에게 ‘땅콩’이나 ‘쥐새끼’로 표현하여 대하지만 그의 천부적 호탕함은 호기를 만난 듯, 매일 밤을 공부는 아예 제쳐놓고 일삼아서 장난을 걸어온다.
그로선 아주 잘된 일이다. 어쨌든 공부는 하기 싫은 애니까. 여기서 ‘최용상’ 친구도 못마땅한 ‘떠버리’, ‘까불이’의 행동을 상 찌푸리며 며칠을 참았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때, 까불이는 내 반응이 신통치 않고 아무리 집적거려도 장난으로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든지 이번에는 ‘최용상’ 친구에게 별명을 붙이며 짓궂은 장난을 또 걸어댄다.
‘까불이’에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천부적 재질이 이런 짓을 하고도 능히 다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낙천적으로 지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저녁밥을 먹은 지 벌써 오래돼서 한창 공부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말리고 뜯어도 먹히질 않는다. 밖으로 불러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밖이니까 한술 더 떠서 약을 올리고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싶은 듯, 지르고 내빼는 것이다.
오늘은 결단을 내리라고 마음먹었다.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해서 붙잡기로 마음먹고 쫓아갔다. 인내(忍耐)로 달리는 나와 피(避)하는 ‘까불이’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고 드디어 목덜미가 잡혔다.
한데, 진지한 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까불이’는 또 한마디하고 내뺀다. ‘신작로’ 한 길가에서는 쫓고 쪼기는 소리가 고함과 함께 요란했고 까불이는 또 붙잡혔다. 그런데도 또 내뺄 생각으로 약 올리면서 뒷걸음질 친다. 번개같이 날라서 이번에는 주먹을 날렸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와서 엎드려서 책을 폈다. 옆자리의 ‘최용상’ 친구는 아무것도 모른다. ‘까불이’는 기가 죽었으나 여전히 명랑하다.
아침밥을 먹는데 까불이의 눈 통이 멍들어 있었다. 그는 아랑곳하질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토요일, 집에 다녀오는 날이다. 이런 때 ‘까불이’는 집에 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굳이 기차 시간에 같이 떠난다는 것이다.
나는 은근히 겁이 났다. 저 얼굴을 하고 집에 가다니. 일은 크게 확대되리라는 내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까불이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하다. 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기차에 나란히 앉아서 고향 집엘 갔다.
일요일 오후 늦가을 한나절은 그래도 햇볕이 따갑다. 저녁 기차로 올라갈 준비 때문에 조금 일직 들에서 막 돌아와서 ‘신작로’ 갓 도랑에서 손발을 씻고 있는데, 한적한 신작로 위를 ‘까불이’ 아버지가 길을 따라 올라오시는 것이다.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이 올라오시는 것이, 틀림없이 우리 집으로 오시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나는 믿고 있었다.
나와 ‘싸워서 멍이진 눈’을 숨겨 주리라는 내 마음과 같기를 은근히 바랐었고 까불이의 행동으로 보아서 그렇게 부모님께 이르질 않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감출 수야 없겠지만 적당히 둘러대리라는 생각조차 했던, 내 잘못도 떠오른다.
일어서서 인사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뺄 수도 없다. 이럴 때 알맞은 말이 ‘쥐구멍’이라도 가 꼭 알맞은 말이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연거푸 씻는척하며 발걸음 소리만을 듣고 있다.
곧 내 앞에 와서 멎을 것 같은, 숨 막히는 순간이 길게 이어졌다.
어서 지나가시든지 내 목덜미 잡든지, 집에 들어가 버티고 앉아 부모님의 귀가를 기다리시든지, 결정이 났으면 좋겠다.
이대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왜 내가 후회할 짓을 했는지 이번에는 내가 미워졌고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되겠다고도 마음 다졌다.
발걸음 소리는 멀어져갔다.
한참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으며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도랑 가에서 석고상이 돼 있었다.
이런 모든 건 잠시(暫時)로 일어났다. 그러나 내가 겪은 고통의 시간은 긴 하루와 같았다. 앞으로는 맞고만 살련다.
다지고 또 다진다.
할머니의 명명(冥冥)한 이르심이 가슴에 닿는다.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못 펴고 쪼그리고 잔다.’
멀리 사라지는 ‘까불이’ 아버지께 마음속으로 빌었다.
조금 전, 잠시의 오해를. 이 오해가 이번에는 신뢰의 우정으로 변해서, 아직 떠나지 않았을 ‘말구리’ ‘까불이’에게 뻗쳤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