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이전

외통궤적 2008. 7. 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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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010324 교사교환

보름달을 쳐다보며 동네 길을 걸으면 어김없이 감나무 가지에 걸려있던 달이 나를 따라 움직이다가 내가 머무는 집의 밤나무 가지에 걸쳐있다가 이윽고 집으로 들어 갈 때에는 지붕위로 따라 숨는다. 이렇게 달이 나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달팽이가 제 집을 지고 다니는 것 같이 내가 달을 이고 다니는 것 같아서 싫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나를 따라서 교사(校舍)가 움직인다니 실색할 수밖에 없다. 정착민의 아들인 내게 유목민 생활을 닮은 교사이전이 정서적으로 맞질 않아서 그런지 반갑고 신나기는커녕 외롭고 허전하기만 했다. 교사가 내가 하숙하고 있는 고모네 집 근처로 이사한다니 나를 따라 교사가 이전하는 형국이 되어서 사뭇 야릇하다.

 

 

중학교도 제대로 갖춘 교사에서 공부하지 못했고, 이곳 '고급 중학교' 교사도 옮길 판이다. '농업학교' 교사가 우리 학교교사가 된다는 것이다. 헌데 동떨어져 있는 길 건너 교사에 우리 일학년 4개반이 옮겨 간다는 것이다. 우리 신입생으로 인새서 임시로 바꾸어 쓰던 '여자고급중학교' 교사를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곧 우리는 옛 '농업학교' 교사의 주변에 있던 여자 고급 중학교 교사로 교환이전한다는 것이다.

 

등굣길로만 생각하면 나야 백 번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새로 이사 하는 교사는 내가 하숙하고 있는 곳, 옛날 '농업학교'가 있는 ‘오릿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야 제대로 친정학교 언저리로 온 것이다.

 

 

교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관계로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마다 한마디씩 하신다. 거의가 함경도 분이신 이분들은 특유의 억양으로 ‘이 학교는 대학가투 한 게 참 좋지 아입네!?’ 이런 얘기를 여러 번 듣는데도 내겐 이렇다 할 느낌이 없이 덤덤한 나날이다. 대학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더욱 아리송할 뿐이다.

 

 

오리남짓한 길을 걷지 않아서 좋고 시간이 절약되니까 넉넉할 따름이다. 옛날 교사라는 것이 거의 다 목조건물이듯이 우리 학교의 본교사도 목조건물인데, 나직하여 정감이 가고 나무숲은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서 청량감을 높여주고 있다.

 

 

각 교사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대로 우리 신입생 일 학년이 상급반과 한 울타리 안으로 합친다니 바람직하긴 한데 우리가 공부해야할 교사는 이곳에서 큰길을 건너서 또 따로 떨어져서 있어야했다.

 

운동장을 갖춘 '간이학교'처럼 독립된 별관이니 말이 합친 것이지 여전히 우리 일학년 학생이 본관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떨어져있기는 매한가지다. 일과 중엔 본관접근에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에 유배돼 있다.

 

 

시설물이라고는 달랑 흑판과 책걸상하고 운동장 중심부에 위치한 교단이 전부이다. 그나마 운동장이 있어서 체육선생님의 시범운동은 눈이 부시도록 구경했지만 우리들의 체육시간은 늘 때움질이었다.

 

한 십 분쯤 지나도 시간표의 수업과목 선생님이 안 나타나면 어김없이 체육시간으로 뒤바뀌어 시간 때우기가 시작되니까 우리의 공부열도는 식어 얼어붙는 수밖에 없다. 나무 한 포기 없고 그늘 막 하나 없는 운동장이니 냉각된 우리의 의식일지라도 물리적 온도로 변환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실내 체육관은 이름도 뜻고 모르던 때다. 뙤약볕 아래서, 하얀 체육복을 단정하게 입고 가랑이 밑에 발걸이를 만들어서 팽팽한 투리닝자세로 도립(倒立)시범을 하는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고 그림 같아서, 아직까지 선명히 망막에 되살아난다. 역경 속에서도 자기의 직분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며 우리에게 체육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게 한 체육선생님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몇 안 되니까 기억을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자위한다.

 

 

내가 몸담았던 교사 언저리에 나무 한 그루든지 꽃 한 송이라도 있었던들 이런 기억은 깡그리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보통의 것은 기억에 없고 못 미치거나 넘치거나 극한적인 어려움을 겪었거나 가슴이 터져나갈 기쁨이 있어야 사는 맛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이 기억이라는 곳에 저장되는 것 같아서 지금은 오히려 교훈적 의미로까지 되살리고 싶다.

 

 

뭍을 그리던 섬 처녀의 기분이 이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직 낯설고 물 설다. 이곳에서 내 인생의 푸른 꿈은 실현되려는지. 아버지의 그림자가 마당 한 귀퉁이에서 떠나질 않는다. 글쎄, 하지만 여기가 내 생의 전기(轉機)가 됐음은 자명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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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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