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2 전투

외통궤적 2008. 7. 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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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010327 훈련 2 전투

‘오릿말’ 본교 근처의 새 교사로 이전한 뒤의 일이었다. 배속 군관도 바뀐 이른 봄이다.

아지랑이가 손에 잡힐 듯, 풀벌레 소리가 귀에 들릴 듯, 사월 초순 토요일 오후였다.

손때가 묻어서 반질거리는 목총을 저마다 어깨에 메고 투박하고 실물보다 무거운 막달 나무 ‘모의 방망이 수류탄’을 두 개씩 허리춤에 차고 학교 문을 나섰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언제 배웠는지 몰라도 나만 빼고 ‘군가’를 잘도 부른다. ‘수류탄 뗑 이 붉은 대가리….’ 줄 꼬리는 부연 흙먼지를 받아 마시면서도 곧잘 따라 부른다. 사월 초순의 꽃샘바람은 넓은 황무지 벌판에도 어김없이 불어 그나마 숨통을 틔운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다.

삼십 분쯤 행군해서 도착한 곳이 야전 훈련장이다. 언제 만들었는지, 또 한 번 놀란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바위와 언덕과 실개천이 얽혀서 훈련장으론 적지(適地)인 듯하다. 아무런 표지도 구조물도 없는 천연 그대로 훈련장이다.

대오(隊伍)는 흩어지고 편한 곳에 앉아서 군관의 전투적 상황설명을 진지하게 듣는다. 모두는 영문을 모르는 이 훈련에 어리둥절하다. 어릴 때의 병정놀이를 생각해서 놀이 삼아 한다면 또 몰라도 ‘현역 장교’가 지휘하는 이 자리는 자못 진지하고 심각하다.

앞에 있는 ‘적의 진지’를 공격하는 훈련이다. 포탄과 탄알 망을 뚫고 전진하려면 포복도 해야 하고 지형지물의 이용도 있어야 하고 적기의 폭격을 피해서 재빠른 이동이 필수적이라면서, 분대별로 조를 짜서 공격한다는 것이다. 군관은 높은 곳에 올라서 지휘하고 앞의 학생 하나는 각종의 깃발로 이미 약속해 놓은 ‘적의 방어 화력’을 깃발로 표시한다. 상황 표시를 잘 보고 공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공격하라는 교관으로부터의 명이 떨어지고, 이 명은 어김없이 실행해야 한다. 이 훈련은 학업성적에 들기 때문에 안 할 수도 없다.

드디어 내가 속한 분대의 차례가 됐고 공격 개시 명령을 받았다. 바위 뒤에 엎드려서 다음 화력의 신호가 있을 때까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

봄볕을 받아서 파랗게 물든 이름 모를 풀싹이 송곳처럼, 삐죽이 솟아 나와 키 재기를 한다. 어느새 파랗게 자란 다북쑥 옆엔 자주색 할미꽃이 고개 숙이고 있다. 바위는 아직 어름같이 차건만 따사로운 봄기운을 알아차린 푸성귀가 사람보다 먼저 생명을 노래하고 자연을 찬미한다.

전시도 아니다. 우리는 노략질도 아니요. 도륙(屠戮) 패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작은 의문이 순식간에 스쳤다.

다시 상황 신호가 바뀌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진에 가까워 수류탄 투척 거리가 되면 던져야 한다. ‘교관’은 이미 그 요령을 자세히 설명했고 이를 관찰하는 판이다.

우리 분대가 이미 ‘적의 참호’ 가까이 다가가서 수류탄을 까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갑자기 교관이 고개 숙여 참호 속을 내려다본다. ‘교관’의 판단은 앞선 분대가 공격을 완료하고 모의 수류탄을 수거해 참호에서 다 나왔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상황변화를 기수에게 전달한 것을 뒤늦게 알았나 보다.

참호 속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수류탄이 고개 숙이고 있는 교관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내 수류탄은 참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군관의 머리 정수리에 떨어졌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미 끝난 학생들이 ‘우리 분대’를 지켜보다 우르르 몰려가서 붙들고 확인하느라 법석이다. 나도 따라 뛰어갔다. 그러나 교관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담담히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훈련을 재개시켰다. 그런데, 모자 옆에서 선혈이 얼굴 위로 흐르지 않는가. 학생들이 응급조치한다며 한곳으로 데려가 손수건을 대고 지혈하느라 법석이다.

내 수류탄이다. 내 수류탄에 맞아서, 그 무거운 박달나무에 맞아서, 머리를 깼으니 어떻게 보면 대단한 앙심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해하려면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교관의 눈치만 살폈다.

며칠이 지나고 다음 훈련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이 일은 나를 무척 당황하게 했다. 어째서 그 많은 학생은 아무 일 없이 마쳤는데, 내 수류탄만이 ‘교관’의 머리를 명중시켰을까. 적중률이 높아서일까? 아니면 순발력이 낮아서일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은 세월이 반세기를 훨씬 지난 지금까지 풀리질 않는다. 이런 것을 풀어내는 독상술(?讀狀術)이라도 생겼으면 속 시원하겠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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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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