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열차

외통궤적 2008. 7. 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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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10328 군용열차

오월의 산야가 단비를 맞아서 더욱 푸르게 반짝거렸다. 수북한 갈나무 잎이 솜털을 등에 내어 새 세상을 향해서 한껏 뻗어 가지런히 보드랍다. 어느새 그늘이 좋고 바람이 시원하다.

철길 건널목을 지날 무렵 모퉁이를 돌아 나온 ‘양양’행 하행열차가 기적을 길게 울린다. 객차가 오르내릴 시간이 아님에도 지나다니는 것으로 보아 임시열차다.

기차는 내가 있는 건널목을 향해서 시꺼먼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고 있다. 급커브길이 있는 ‘철 다리’를 앞두고 속도가 줄어지더니 천천히 철‘다리’를 향해서 굽어 들어온다.

기관사 옆에는 군인이 앉아 있는가 싶더니 다음 화차에는 탱크와 장갑차와 군용트럭이 가득가득 실려 있다. 놀랍다. 나는 이렇게 큰 탱크와 군용트럭을 아직 보지 못했고 더군다나 이런 것들을 실은 기차가 이 철길로 지나다니는 것을 ‘태평양전쟁(이차대전)’ 중에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동안 잦은 밤 기차의 운행은 이런 대포와 탱크와 트럭이었구나 하고 생각된다.

기찻길은 단일선로다. 때문에, 야간으로만 수송을 감당할 수 없었던지, 객차를 연착시켜 가며 대낮에도 운행하는가 보다. 무언가 이상한 조짐이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너나 할 것 없이 훈련용일 것으로만 생각할 따름이다. 눈을 씻고 보아도 틀림없는 군수품이다. 동네 어귀로 사라져 가는 기차 꽁무니를 뚫어지도록 보지만, 분명한 것은 대포와 장갑차다. 무엇 때문에 남쪽으로 실려 가는 것인가?

기차는 우리 동네 ‘염성’역은 스쳐 지나가 버렸는지 벌서 ‘말구리’ 바닷가 모퉁이를 돌며 또 한 번 긴 기적을 울린다. 내 작은 머리로는 이 괴변(怪變)을 어떻게 풀지 모르겠다.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기차를 만났다. 이번에는 그림으로만 보았든 야포가 무개차 칸칸이 가득가득 실려 있다. 긴 기차 꼬리 뒤쪽 객실 대여섯 칸에는 군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남쪽으로 달려가는 구부러진 기차의 앞 대가리를 내다본다.

삼팔선에서 잦은 충돌이 있다는 뜬소문이 사실인가? 저렇게 많은 군수품이 필요한 것일까? 집으로 오는 내 발걸음 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어느새 제자리에 서 있다. 다음 기차가 이어 내려올 것 같은 예감마저 들면서 올라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 내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발은 날개를 단 듯이 땅 위를 찼고 단숨에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저녁을 일찍 먹고 학교에 갈 채비를 서둘러 정거장으로 달려갔다.

내려간 기차가 돌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것, 시간도 지키지 않는 여객 운송 열차를 마냥 기다리면서 서성거렸다.

뒤죽박죽된 기차 시간을 용하게 참아 기다려서 얻어 탔다. 기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오늘 중으로 학교가 있는 ‘고저’ 읍에 당도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요행이었다.

널따란 들판에는 산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늘진 곳의 진녹색과 해가 아직 남아있는 연녹색의 두 가지 색 벌판이 확연하게 갈라져 보인다.

기차는 그늘 속의 진녹색 들판을 전속력으로 미친 듯이 달려 올라간다. 그늘은 점점 들판을 잠식해 들어간다. 그늘은 들판을 멀리 동쪽으로 넓혀가고 햇빛을 받은 연록의 들판은 바닷가로 자꾸 밀려간다.

어둠이 들판으로 밀려 내린다.

내가 탄 기차는 또 내려오는 열차에 찻길을 내어주려 ‘통천’역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어두움이 깔린 역 구내에 갑자기 굉음이 울리더니 군인이 가득히 탄 군용열차가 쏜살같이 내려갔다.

다시 천천히 내가 탄 기차가 움직였다. 역 구내의 전깃불이 점점 빨리 흘러갔다. 시내의 전깃불은 빙빙 돌았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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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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