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외통궤적 2008. 7. 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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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하루하루의 일과였지만 그런 대로 일주일은 넘겼다. 그동안 몇 번의 ‘민청 회’를 통해서 여러 선생님과 학생이 ‘인민군’에 지원한다며 교문 밖으로 나갔지만 그 다음날 지원한다든 선생님은 여전히 교실에서 수업을 했다. 아마 ‘군사 동원 부’의 배려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선생님의 ‘인민군’지원은 학생지원의 촉매제의 구실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어쩌면 선생님의 지원은 짜진 각본인지도 모른다.

 

 

칠월에 들어선 첫 주말이었다. 기왓장이 들썩거리도록 닳아 오른 '민청'회의는 오전수업도 걷어치우고 일찍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물끄러미 지켜만 보던 나도 대세의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어느새 물결의 한가운데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외면하고 피할 수는 없다. 군중의 심리란 이런 것인가 보다. 좋고 싫고 따지고 저울질할 겨를이 없이 모두가 흥분되어 이성이 마비되고 최면에 걸린다.

 

회의는 열기에 가득차 고조되었다. 이때에 누군가의 열렬한 호소로 '조국해방 전선'에 당장 뛰어 달리자고 부르짖는 소리에 만장 '맹원(同盟員)'은 즉석에서 일치의 환호로 응답했다. 이어서 삼 학년부터 줄지어 나서기 시작했다. 선생님들도 또 따라나섰다. 이날의 열기가 학생들의 신경을 마비시켰던지 점심시간은 아예 제쳐놓고 전선으로만 달려가는 것이었다.

 

학교는 군인 조달 창구였다. 우울한 하늘은 해무리가 햇빛을 가리고 있다.

 

칠월이라고는 하지만 동해의 바닷물로 식힌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려고 곧게 달리며 우리를 맞받아서 시원하다. 한기마저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는 남쪽의 전선을 향해서, 남쪽의 서울을 향해서 내닫고 있지만 바람은 거꾸로 서북의 본영을 향하여 준령을 넘어 평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오리 길을 걷는 검은 행렬의 발아래서 이는 뿌연 흙먼지도 함께 평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민청회의 열기와 다르게 칠월의 냉기류는 우리를 서늘하게 했다. 어느새 ‘군사동원부’앞은 신체검사를 받으려는 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루며 포위되었다. 신장과 체중만을 재는데도 몇 시간씩 걸리고, 합격한 학생들은 곧바로 역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는 열차에 오르고 있었다.

 

아무도 대열에서 이탈하는 학생은 없었다. 다만 신장과 체중미달로 되돌아가는 학생만 있을 뿐이다. 이들도 아쉬운 듯이 뒤돌아보고 뒤돌아보며 돌아갔다. 이들이 가는 곳은 합격자를 환송하는 역이다. 그들은 어쩌면 전 생애를 통하여 단 한번밖에 없을 절호의 기회를 노친 양, 자기만이 낙오되어서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되는 양 아쉬워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떨어졌다. 이유는 체중47,5킬로그램. 기준체중인 50킬로그램을 2.5킬로그램이나 미달하고 있으니 당연히 불합격체위다. 그러나 나는 섭섭하지 않았다. 내가 도와드려야할 병환의 아버지를 멀리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자유는 장남으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내겐 없었다.

 

어둑어둑한 오리 길, 고모님 집을 향한 걸음걸이는 한결 가벼웠다. 한시름이 걷힌 듯 점점 걸음은 빨라졌다.

 

 

그 다음 주 월요일의 수업시간부터 교실 안은 이 빠진 듯, 주인 없는 빈 책상이 많이 있었다. 수업은 하는둥 마는둥 어수선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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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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