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석정 바위산 등허리의 남서(南西)쪽 등에는 노송이 해풍을 피해서 남쪽으로 팔을 뻗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언덕이 급경사의 살찐 흙산을 이루면서 바다로 삐죽이 내밀고 튀어나와서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현무암 육각주(六角柱)를 빚어 세운 듯이 두르고, 억년의 세월을 파도에 쓸려 흙 한 줌 없는 바위 병풍이 됐다.
반대의 남서쪽은 해풍과 파도의 영향을 벗어나서 바닷물 가까이 흙을 붙여 내려놓았다.
흙이 있는 곳엔 사람의 자취가 남는 것인지, 해안을 따라서 우리 키만큼 깊고 긴 구덩이가 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경승지(景勝地)에 지렁이 굴같이 파놓은 것을 ‘군사훈련’ 시간에 보게 되었다.
아직 일 학년 교사(校舍)가 ‘오릿말’로 옮기기 전이었다.
배속된 군관은 현역 중위다. 교관은 전술훈련 시간에 간단한 이론교육을 끝내고 이곳, ‘총석정’의 남서향 언덕 풀밭에 앉히고 일장 설명 후 곧 ‘교통호’ 속에 들어가 각각의 기관포대 진지까지 이동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전쟁은 이미 끝나 해방(解放) 3년이 넘었건만,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주야간의 각종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
공부하러 온 학생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다니? 체육 시간 외에 주당 몇 시간씩 배정하고 현역 군관이 배속된 것을 수상히 생각은 했어도, 더는 아무런 징후도 느낄 수 없는, 귀머거리 학생이었고 시골뜨기였다.
야간 매복(埋伏) 훈련은 낮에 할 수밖에 없다. 목총을 들고 교통호 속을 누비고 난 후의 옷 꼬락서니는 그대로 농군이다. 배속 군관이야 아랑곳없이 제시간만 때우면 그만이다.
우리는 다르다. 그러니 군관은 단체로 제재를 가하는 특유의 훈련방식으로 우리를 장악하면서 훈련을 시킨다.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고 이 교통호는 누가 파놓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혹여 우리 학생들이 판 것이라면, 그들의 고생이 많았을 것 같고, 이 지역의 주민들이 팠다면 주민들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무리도 따랐을 것 같은, 추측도 해보았다.
느낌은, 이곳까지 남쪽에서 바닷길로 처 온다는 상정(想定)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어떤 긴박한 정세로 돌아가는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현역 군관과 교통호’, 이것은 대치의 징후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잠시, 내 눈이 해안선을 따라 남쪽 바다를 훑어 내려간다.
노랗게 익은 들녘은 푸른 바다와 구획되어 완만한 곡선을 그었고, 하얗게 밀려드는 파도를 모래밭이 핥고 있다.
바람막이 솔밭이 실오리처럼 가늘게 끝없이 이어져서 하늘과 들판과 백사장과 산자락이 맞닿아 한 점을 이룬다. 저곳에 내 고향 마을이 있을 것이고 우리 집이 있는 곳이리라.
불현듯 바닷가의 김장밭을 가꾸는 부모님 생각이 떠오른다. 신 벗고 바닷가 백사장을 마냥 달려가고 싶다.
눈을 내려 내 모습을 본다. 까맣던 오지랖과 가랑이가 흙 범벅이 되어 있다.
이건 아닌데....
고향에서도 이런 흙칠은 얼마든지 하는데?!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