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달리,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고 늘 깨어 살펴야 했다.
모든 학생은 이미 조직되어 있는 서클에 가입해야 했는데, 특히 그곳에서 부지(扶持)하려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민청(民主靑年同盟)’에 가입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이가 차지를 않아서 2학년이 돼야 가입할 수 있다. 학생은 학교생활을 개인별로 할 수 없으니. 반에서 민청에 가입할 나이가 되면 적지 않은 학생이 가입하게 되므로 나이가 차지 않은 우리 또래도 일괄해서 가입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인즉, 예비 ‘동맹원’으로 가입되는 것이다. 아마 학년 단위로 털어 처리하는가 보다.
오늘이 그날이다.
회의장은 공식화되어 있는 듯, 우리의 생각이 어림없이 미치지도 않건만 ‘옳소’ 소리만이 교실을 울려서 들릴 뿐이다.
배석한 선생은 시험관(試驗官) 모양으로 줄지어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이 회의가 마치 학업성적이라도 되는 양, 등단하는 학생의 거동과 언변을 자세히 적고 있다.
우리 1학년 학생들에게는 발언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참관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꾸로 앉아있는 모양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평상의 학교행사 같으면 앉은키가 작은 1학년부터 앞에 앉혀야 하련만 거꾸로, 저학년이 뒤쪽에 앉아서 참관인처럼 되고, 열성적이고 숙련된 순서로 앞뒤에 앉는다.
해서 우리에겐 진행 순서도 알 수 없고, 말소리도 들을 수 없고, 얼굴도 볼 수 없다.
다만, 유령의 회합 장에서 오로지 고함으로 찬성하고 박수로 채택하는 과정의 매듭에서만은 빠질 수 없다.
이것도 어물거리다가는 ‘자아 비판대’ 위에 올려 세워질 수 있기에 신경을 써서 고함칠 때 목청 돋우고, 손뼉 칠 때 따라 침을 직감할 수 있다.
‘자아비판(自我批判)’의 회순에선 지도교사의 제지가 있을 때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며, 열을 토해낸다. 모두 자기 현시(顯示) 행위다.
모르긴 해도, 이 시간을 위해서 준비한 고학년 학생이 부지기수일 거란 생각도 했다. 그들은 이 자리를 발판 삼아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초석을 쌓아가야 함을 벌써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을 받았다.
몇몇은 웅변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 같았고, 몇 명의 자아비판은 지루했으나 광적 토로도 있는가 하면 참회(懺悔)라도 하는듯한 인상조차 받았다.
분위기는 마치 학교를 떠메고 ‘모스크바’라도 갈 것같이 끓고 달았다. 시작된 회의는 그칠 줄 모르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이어지더니 어두울 때까지 이어졌다.
이 회의는 학교행사가 아니니 선생님들은 평가할 수 있는 권한밖에 없다. 그래서 밥도 거르고 미친 듯이 달려도 제지하질 못한다. 어쩌면 “‘열성 학생 당원’에게 찍혀서 ‘군당’에 불려 갈지도 모르니”, 학생들과 매한가지로 이 시간만큼은 묵묵히, 지도(指導)라는 이름으로, 선생님 또한 점수 잃지 않으려고, 몸을 사린다.
판국은 하고 싶은 학생이 주도한다.
학생은 등단하여 한마디씩 무언가를 발표함으로써 자기의 열도를 가지고 자리매김하기를 바라고 있다. 높고 낮음은 여기에도 있는 법,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하고 자아비판 할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동병상련이랄까? 피차가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돼서야 회의는 깃발을 내리고 말았다.
가장 인상적인 상급생, 위원장의 이름이 아직 생생하다. 극과 극을 내달은 형제의 오늘을 있게 한, 시절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진 협동’의 형 ‘진동선’이었다. 그 형제는 양극을 팽팽히 당기는 이념의 끈을 붙들고 안간힘으로 바들거렸다.
동생 ‘진동협’은 나처럼 이곳에 붙박고 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