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자루

외통궤적 2008. 7. 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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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010317 쌀자루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졸업에 얽힌 불거진 매듭도 없었나보다. 왜 그런지 그 영문을 모르겠다. 어쨌든 며칠이 지나서 ‘고급 중학교’ 합격확인은 했지만 마음은 무겁고 여전히 아버지가 마음에 걸린다.

 

기쁨도 잠깐,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사이 입학식 날이 코앞으로 닥쳤다. 아마도 모자와 교복은 그대로 이어 쓰고 입었을 것 같다. 예비소집 때 도 갔었는지 모르겠다. 각종 부착물이 준비된 것으로 보아서 다녀온 것 같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다.

 

다만 집에서 통학할 수 없는 거리이고 보니 하숙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하숙비가 돈이 아닌 쌀이라는 것 때문에 이 마디만은 생생히 기억되는 것 같다. 일상보다는 고통이 오래 잊히지 않는 인간의 심성 때문, 평범한 것은 잊히고 마디와 옹이와 상처만이 오래오래 기억되나 보다.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 차림으로 문밖을 나서야하는데 지난밤에 일러주신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 둘러보았다. 문 앞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흰 쌀자루에 멜빵이 걸쳐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쌀자루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복을 입은 채로 이 쌀자루를 지고 우리 동네를 벗어나는 용기를 낼 수가 없다.

 

대답은 하였으되 실행에는 망설임이 따르는 것이다. 뭇 사람의 시선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며 이 눈은 곧 화경(火鏡:볼록렌스)으로 변하여 나를 비추면서 내가 불붙어서 구멍이 나고 말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몸이 불덩어리가 된다. 많지는 않겠지만 대합실 안의 손님은 우리 동네 사람일 것이고, 새까만 교복을 입고 등에는 가방도 아닌 흰 쌀자루를 짊어지고 유유히 걸어 갈 수 있는 배포가 없었다.

 

그것만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얼른 앉아서 양팔을 뒤로 제치고 팔을 멜빵에 집어넣으련만, 머뭇거리고 어머니 얼굴을 올려보고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 눈치를 재빨리 알아차린 어머니가 얼른 등을 떠밀고 ‘내가 정거장까지 같이 가’마 하시며 차림도 그대로인 채로 쌀자루를 머리에 이신다.

 

아들의 체모를 위해서 오늘의 바쁜 일을 뒤로하시고 정거장까지 동행하시는 어머니의 고마움이 평생을 이어온다.

 

내가 자청하는 공부이니 어머니의 동행을 당연히 만류하고 내가 지고 가야 하건만 말뿐이지 행동은 미치지 못한다. 생각은 아버지의 농사일과 어머니의 집안일을 걱정하면서도 몸은 따르지 않았다. 내가 떠나면 숙박계(宿泊屆)는 누가 쓰며 보안서는 누가 다닐 것인지 걱정을 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내가 가야할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바쁘신 손까지 묶고 있질 않는가? 내가 이렇게 해서 집안에 어떤 도움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꼬리를 무는 의문과 채찍이 무섭도록 나를 짓누른다. 쌀자루는 어머니가 이고 가시되 짐은 내가 몇 갑절의 무게로 지고 가는 것이다. 어머니 또한 아들의 앞날을 홀가분하게 축복하지 못하는 천근의 무게를 머리에 이고 가신다. 언제나  어머니는 나를 어린이로 대하신다. 내가 앞서야 뒤따라오시지, 어머니께서 결코 앞서시지 않으신다. 행여 길을 잃고 딴 길로 들어서지 않을까, 혹은 변고가 있어서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는 숫제 나를 앞세우고 뒤따르신다.

 

혹여 먼 뒷날 장성했을 때 뒤따르는 상상을 미리 하시는 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성 본능일 것이다.

 

 

멀지 않은 정거장엔 질러가는 논길이 나 있다. 벼는 자라서 길 위를 넘보고 있다.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모자의 입은 굳게 다물어서 열리질 않는다.

 

개구리 첨벙 물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시다. 없는 말씀이니 귀로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어머니의 마음이 나의 등 뒤를 뚫고 가슴에 새겨진다. ‘얘야 언제 네가 아버지를 쉬게 하시고 집안을 돌보게 되니?’

 

눈은 정거장을 향했으되 마음은 어머니가슴에 묻어 칭얼거린다. ‘어머니 빨리 털고 돌아와서 집안일을 돌볼 겁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리광 친다.

 

이러는 사이에 발걸음은 어느새 정거장에 닿았다. 어머니는 굳이 기차 안까지 오르시어 쌀자루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시고 내 손을 잡으시며 사돈어른과 고모님안부를 꼭 전하라고 당부하시고 총총히 내려가셨다.

 

기차는 짜증석인 기적소리를 울리더니 덜커덕거리며 움직였다. 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머니의 앞치마가 들리고 얼굴은 가려졌다. 어머니는 내 눈에서 점점 흐리게 보였다. 그리고 물기가 내 관자노리를 적셨다. 아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새것으로 마련한 쌀자루의 색이 너무나 희어서 눈부시도록 차안을 밝혔다.

 

검은 객실 안, 멜빵으로 둘린 흰 쌀자루는 발치에 놓였지만 유난히 커 보이고 당당해 보였다. 흔히들 갖고 다니는 손가방도 아니요 크고 작은 주머니들이 달린 색도 아닌, 시장에 팔려나온 쌀자루 같지만 쌀자루치고는 너무나 희고 도도했다. 의자 밑에 들어 옮긴 내 마음은 상념에 젖는다. 이제 천리타향의 첫발을 내디디고 북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한 자루의 쌀과 함께 시류를 타고, 고향마을을 등지며, 내 운명의 갈림길에서 궤도를 수정한 것이다.

 

어느새 기차는 <고저>읍에 당도해 있었다. 이제는 타관이다.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 내가 아니고는 이 쌀자루를 내가 의지할 고모네 집까지 옮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기차 안에서부터 양어깨 깊숙이 집어넣은 멜빵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홈에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고저’ 역이다. 오가는 모든 이가 어울리지 않는 흑백의 엮음새를 한 번씩은 아래위를 훑고 스쳐간다.

 

어찌하랴, 땅만 내려다보며 앞만 바라다보며 귀 막고 열심히 걸었다. 고모네 집까지는 오리남짓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어깨가 조이고 팔이 저려 온다. 단숨에 가기는 힘들었다. 신작로 가의 도랑에 발을 내리고 짐을 벗었다.

 

풀이 많은 곳을 택했어도 바지엔 먼지가 부옇게 묻었을 것을 생각하면 또 얼굴이 달아오른다. 체면이란 무엇인가? 상황을 도외시한 한 순간의 형상을 붙들고 고민하는 허울이다. 나의 진실한 모습은 보이건 안보이건, 내면에 숨겨져 있건 겉으로 드러나건, 내게서 나오는 것이니 감추려고 들지도 말 것이며 드러내려하지도 말라는 자문자답을 하고 먼 동쪽하늘을 바라본다.

 

 

샛바람이 넓은 '고저'들의 푸른 들판을 훑어서 시원하게 불어 올라온다. 땀은 식어서 얼굴은 보송보송하게 매끄럽다. 멜빵에 다시 양팔을 꿰어 넣는다.

 

반기시는 고모님은 언제나 같다. 아버지의 외로운 성가(成家)의 꿈을 지켜보시며 말없이 후원하시는 고모님의 자태는 성인에 가깝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두르거나 화내지 않고 감싸 안는 포용의 고모님은 긴 역정의 삶을 도인의 경지에서 이겨내시는 분이시다. 인근 동네에 널리 알려지신 분, 우리 집안의 빛을 널리 비춘 발광체였음을 자타가 공인하는, 그런 분이시다.

 

쌀자루를 받아 내리시는 고모님의 손길에서 어머니의 따스함을 느끼며 아늑한 고향집을 느꼈다. 새 생활은 시작되었다.

 

쌀자루의 두려움도 말끔히 씻어졌다. 다만 낯선 잠자리를 내 집으로 익혀야 하는 작은 변화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 떠나와서 그런지 어느새 집도 그리워 졌다. 냉수를 한 사발 들이킨다.

 

다시 마루에 걸터앉아 작은 텃밭 한 구석에 핀 맨드라미와 분꽃을 내려다보는 사이, 고향집 마당에서 꽃 가꾸는 누나의 환상이 잠깐 스쳤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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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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