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외통궤적 2008. 7. 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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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010119 연극

장터 바닥에다 뉘 집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미끈한 서까래 감을 들여서 가설무대를 짓고 있었다.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고 거적과 멍석을 깔아서 제법 넓은 공연무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관객을 가두는 포장도 치지 않고 넓은 장터를 그대로 두고 있었다.

 

흔히 하는 무료공연을 의미하므로 우리들의 관심도 꽤 있었다. 공짜니까.

 

일본 정부의 '전시동원' 선동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든 방법이고 이 공연에는 전쟁을 고무하고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를 다지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삼부로 나뉘어서 일부는 슬픈 이야기를 담은 신파극이고 이부는 웃음을 담고 있는 희극이고 삼부는 노래와 춤으로 엮어지는 쇼로서, 자주 보는 신파극의 전형임을 할 수 있도록 광고 벽보도 붙여 놓았던 터다.

 

이 공연은 동네 주민들 누구라 할 것 없이 광고를 보고 공연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해방'을 덜컥 맞았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주최 측도 사린다. 이왕 꾸민 신파극이니 보기나 하자는 중론이 있어서 공연하기로 했나보다.

 

극단은 읍에서 조직하여 군내를 돌아다니다가 '해방'을 맞은 꼴이다.

 

'해방'되기 전부터 이미 기획한 공연물의 연출 장소와 시간을 지키느냐 아니면 없었던 걸로 하느냐 하여서 논란이 분분하고, 이를 판가름할 행정기관도 생기기전이니까 우리 지역의 어른들이 의논하여서 결정한 모양인데, 이 공연물이 시비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이를 간파한 나머지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일본의 치안책임인 경찰서는 이미 그 권능을 잃고 지역마다 자치적인 '치안대'가 조직되고 이 '치안대'가 그나마 구실을 해야 하는데, 그저 도둑이나 방화를 예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 이 기구가 입회하여 공연물 검사를 할 수 있는 정서도 갖고 있질 못했다. 그래서 마을의 원로들이 의논 끝에 공연물을 올렸을 것이다.

 

어둡기 전에 장터 마당은 꽉 메워지고 집집이 전깃불을 문밖에 내 걸어 환히 밝혔다. 가로등 갓밑에 모여드는 부나비가 불빛에 가득한, 구월초승의 어느 날이다.

 

나라도 아직 없고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꿈을 꾸는 잠결의 나날을 보내는 때지만 막은 올렸다.

 

 

동네는 이백오십 집 남짓하지만 세 성바지가 살고 있어서 약탈이나 파괴나 방화는 없었지만 인근 동네에서 모여드는 구경꾼들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동네 어른들은 극도로 긴장하는 이른 밤이었다.

 

이막삼장의 극은 일본군에 자진 입대한 가정의 어려운 형편을 이해하고 돕는 상부상조의 극이어서 별 무리는 없었지만 간간이 일본인의 복장과 가무가 나올 때 뒷자리에서 함성과 공연중지를 요구하는 욕설이 들리곤 했다. 이부의 코미디는 그런 대로 잘 넘어 갔다.

 

헌데 삼부에서 문제가 생겼다. 노래 말의 전부가 '해방'과는 정서가 먼 가사들이요 '궐기하여 싸우고 죽창을 들자'는 투의 노래를 그대로 일본말 가사로 부른다.

 

이 간단한 프로그램을 바꾸지 않았다는 무성의한 태도에 관중은 폭발했다. 공연은 중단됐고 무대는 관중석에서 던지는 돌팔매로 수라장이 됐다. 그러면서도 관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참이 경과한 뒤에 수습 방안이 나왔는데 공연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즉 무대 위의 사람이나 관객이나 하나같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왕 벌여놓은 것이니까 잘못 됐어도 눈감아주는 동네인심이 드러났고, 급진적인 사람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니 중지시켜야한다는 것인데, 동네의 후한 인심이 우세해서 그대로 계속한다는, 지극히 촌스런 결말이 났다.

 

이미 '해방'이라는 종은 울렸으되 여운은 길어도 음미할 겨를없이 그 종소리에 파묻히고, 일본의 잔재(殘滓)도 깡그리 남아있는 이 밤, 공백을 메울 수 없는 우리의 처지, 남의 힘에 의해서 얻는 '해방'이라는 '비애의 단막극'이 여기 있었다.

 

어느 때나 격변기에는 그 속에 묻혀있는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는가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때 그 시간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적어도 이토록  시국을 잊고 지냈다.

 

세상은 바뀌었되 생각은 아직 따르지 못하고, 원한 맺힌 선열을 욕되게도, 이 신파극을 지켜보아야 했으니 이 노릇이 어린 내 눈에조차 이상하리만큼 어설프고 이치에 닿지 않았다.

 

어른들의 양 같은 순박함이었다고 할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쓰디써서 입을 다신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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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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