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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인생 2008. 6. 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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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찍이 이 시기만큼 암흑의 터널이었던 시절은 없었다. 그 이후 난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단순하고 명쾌하게 나아갈 길을 찾았고 택했다.

그런대로 농사철은 어쭙잖게 어른들을 도와드린다며 내 딴에는 딴생각할 겨를 없이 도왔지만, 겨울철 농한기에 들어서면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여서 꼼짝없이 방에서만 지내는 몇 달이 계속되는데도 내겐 이렇다 할 소일거리가 없다.

저절로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되는데 그때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내가 신을 짚신을 내가 삼는다는 것인데, 매일 빈손으로 친구 집에 가서 진종일 있다가 돌아올 때는 짚신을 한 켤레씩 손에 들고 들어오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작은 이변으로 여겼다. 이제는 그런대로 내가 신을 신은 내 손으로 삼아서 자급하게 된 게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짓이다.

갓 해방을 맞은 우리는 우리글과 우리 역사를 1년밖에 배울 시간이 없었다. 졸업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다투어 초등학교 재수를 희망하고 그 길로 들어섰다. 되건 안 되건 책을 들고 씨름하고 있을 때다.

해방 후 졸업 때까지의 1년을 혼란스럽기만 하고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몇몇 친구들과 나는 그냥 1년의 짧은 기간으로 만족하여 마치기로 했다. 해방 후 초등학교 1년을 6년 전 과정으로 가름한 꼴이니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낙제생 같은 그런 짓이 죽기보다 싫었다. 고작해야 한글을 배우는 것이 전부이고 그 한글은 우리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내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일 년 후 곳곳에 중학교가 설립되는데 그때 오히려 그들보다 한 학년을 뛰어 이 학년에 입학했으니 초등학교 재수생은 중학교 일 학년이고 일 년을 쉰 나는 오히려 이 학년이 되니 어려움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갑절의 노력이 요구되는 부담을 안고 공부해야 하는, 무모한 욕심도 부렸다.

아직 지식에 대한 폭도 깊이도 알 수 없던 때에 상급학교란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지, 즉 집안 형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인 줄로만 알았든 나는 그저 듣고 보기만 하면 공부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기에 이 시기 일 년은 마냥 내 진로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 집안일을 돕고 무위도식이 되지 않느냐가 내 생각의 전부였다.

손을 뻗으면 이엉이 손에 잡히고 허리조차 펴고 들어갈 수 없는 친구의 집은 외동아들과 오붓하게 지내는 집이다. 친구네 집은 매우 유식한 아버지를 모신 가난한 집안이었다. 친구와 함께 진종일 윗방에서 비벼대는 우리에게 점심때가 되면 화로에 된장찌개를 올려놓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피신 ‘기재’ 어머님을 잊지 못한다. 그 덕에 살아서, 이 조그마한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친구 ‘이기재’ 어머니시다.

언제든지 만나는 날, 그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억을 찾아내게 하리라. 그렇게 될 날을 기다리며 하루를 지낸다. 무슨 의미이고 무슨 뜻이 담기고 할, 따질 일이 아니다. 그냥 그런 때가 내가 사는 인생의 한 점을 찍은 획이 됐다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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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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