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천친구

외통인생 2008. 6. 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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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서 온 친구

1714.001204 통천서 온 친구

 

두엄더미에 쌓인 흰 눈이 덜 녹아있다. 발길이 그 언저리에 닿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마당은 질퍽해서 발 빠지고, 군데군데 발자국이 크고 작게 각각의 방향을 알아차릴 수 없을 만치 어지럽게 엉켜서 조각되어있다.

 

여느 집 같으면 아직 전 날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서 살얼음을 반짝이고 있을 텐데 이 집 마당에는 많은 발자국이 새로 생기고 어제의 발자국에 덧 눌려서 살얼음이 부서지고 누런 황토 흙이 삐죽이 올라와 있다.

 

볏짚을 군데군데 깔아 놓고 그 위에 왕겨를 뿌려 놓았건만 이곳을 밟은 자국이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을 만치 많은 동무들이 이 집에 모여들었다. 맑은 하늘인데도 처마 밑에서는 비가 오듯이 물이 떨어진다.

 

눈 녹은 물이 툇돌 밑을 적시고, 떨어지는 물방울은 다시 마당으로 퍼져간다. 해가 올라올수록 처마 밑 물소리는 요란하고 햇빛은 더욱 방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다. 툇돌 위의 신발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방안에서는 저마다의 주장과 논리를 펴는 심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대동아 전쟁’의 얘기부터 인간생명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들은 것 아는 것을 저마다  죄다 털어놓는, 얘기 자랑 대회가 벌어졌다.

 

한  아이가 말하였다. 그 애의 말이 너무나 끔찍해서 방안의 통천 친구의 높은 소리가 자자들고 방안이 조용해졌다. ‘우리 삼촌이 어디서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군인들이 미군포로들을 상대로 담력 기르기를 하는데, 글쎄 말이다, 말뚝에다 묶어놓고 실제로 총검술 연습을 시킨다고 하드라.’

 

한 녀석이 맞장구를 친다. ‘우리 삼촌이 그러는데 뛰어가는 사람을 ’닛뽄도(장검)‘로 목을 자르면 오십 미터는 머리 없이 뛰어간다고 하드라.’ 방안은 일시에 얼음장처럼 차고 찬바람이 스치듯이 얼굴을 파랗게 얼렸다.

 

머지않아서 우리들도 소년 훈련병으로 징발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애들 사이에 퍼져있고, 그게 몇 년 안에 우리들에게도 닥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터라 이 얘기는 곧 우리들이 얘기인양 숙연해지면서 모두들 한숨이 가늘게 나왔다.

 

통천 친구가 소리 내어서 외쳤다. ‘일본은 망한다고 하드라’ 더더욱 놀랄 말이다. 일본은 ‘야마도’민족이고 ‘가미가제’가 미국의 군함을 뒤엎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차있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무슨 말인지를 모르는 양 눈만 깜박이고, 다음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일본은 물자가 달리고 연합군을 이루는 미영에게 이미 패하고 있다고 하드라.’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으니,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불안하다. 이 일들을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련만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해 본다면 일본사람들의 일본사관(史觀)교육의 철저했음을 뒤늦게나마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잠시 후에 화제가 우리들 관심사의 하나인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 할 때, 통천 친구는 또 일가견을 피력한다.

 

‘개를 보라’ 가 통천 친구의 주창이다. 반해서 내 주창은 ‘아니다. 사람은 개가 아니다.’ 다시 통천 친구가 벽을 향해서 홀로 웃고 있다가 정색을 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아기가 생기느냐?’ 되 물어온다.

 

단연 내 말에 방안의 모든 친구들이 동조하고 가세한다. 통천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몰아 부치며 ‘말 해봐, 어떻게 되는지’ 한다. 거기까지를 생각해본 바 없었던 나는 얼떨결에 ‘서로 안고 자면 아기가 된다.’ 고 말은 했으면서도 도무지 그런 건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으니 좌중을 한번 둘러보는데 ‘그렇다’ 고 맞장구치는 친구는 없다.

 

아까 와는 딴판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텨 가는 나를 상대로 해서 동조자도 못 구하고 일대 일 마주 말싸움을 하는데, 아무도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굽히지 않는 나를 향해서 ‘커서 봐라’ 한마디하고는 통천 친구는 밖으로 훌쩍 나가서 하늘을 보고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남의 말을 알아듣는 데는 언제나 내 나름대로 받아드리는 기준이 있는데, 이 기준이 이미 이때 있었나 보다.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언제든지 배타적 성향을 토대로 굳혀나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사물의 이해를 더디게, 아직도 많은 것을 알려고 몸부림치나보다.

 

우리가 얘기한 화제들은 그 중심이 죽음의 공포와 생명의 환희를 함께 얘기한 것 같아서, 이제 그나마 흐뭇해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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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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