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봉’ 높은 봉우리는 어깨에 구름을 두르고 만고에 흔들리지 않을 엉덩이를 질펀하게 깔고 앉아서 지구의 저쪽 대지에 뿌리박은 듯이 압도한다. 여인의 치맛자락이 가슴 중간쯤 내려오다 갑자기 자르르 흐르더니 주름 잡힌 치마폭이 비스듬히 넓게 펼쳐 깔렸다.
그 위에 골무 타래를 풀어놓듯이 텐트를 깔아 펴놓고 있다. 무릎 위에 얼른거리는 개미 떼, 줄지어 올라오는 포로 하나하나를 여인의 넓은 치마폭에 깔아 늘이고서 마주치는 북풍을 입김으로 불어낼 참이다. 줄지어 쳐진 저기 어느 텐트 속에서 된서리를 피해 가며, 오늘은 어떨까 내일은 어떨까 애태우며 얼마나 더 많은 날을 목을 늘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산은 어깨에 두르고 있든 구름을, 가슴 아래로 내리더니 어느새 말끔히 뒤로 젖히고 거무칙칙한 ‘바위 젖꼭지’를 드러내 포로와 더불어 미군, 국방군, 군속, 할 것 없이 싸잡아 감칠 듯이 내려 보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동래의 앞바다를 지키며 한반도의 남쪽에 우뚝 선 세기적 자유의 여신상 치마폭 위에 있을 것인가? 여기 이 여신의 치마폭 위에 얼마나 있어야 자유의 종은 울릴 것인가? 그사이 들은 바로는
유엔의 기치(旗幟)하에 미국에서 치는 자유의 종은 널리 세계의 구석구석을 울려 퍼졌다던데, 난 언제까지 바지 옆에 붙어 있는 주머니 속의 ‘양말과 장갑’을 확인하며 기다려야만 그 종소리를 내 귓바퀴로 잡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웬일인지 이 ‘장갑’이 부모님 슬하에 바쳐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엔 눈으로 보고 다시 확인한다. 만져만 보고서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혹, 한 짝이라도 없어졌지 않았나, 초조하기까지 하다. 이런 작은 물건조차 보관할 엄두를 못 내는 신분임을 다시 절감한다. 어쩔 수 없이 잘 때 확인하고 작업 나갈 때 만져보고 옷 입을 때에 짝 맞추는, 내 중요한 일과가 되어있다. 남 보기엔 하잘것없는 뜨게 감이지만 살려는 의지를 실오리 가닥마다 칠하고, 위험했든 지난 순간을 바늘로 코 떠서 꿴 것, 내 생각이자 말이자 뜻인 이 물건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할까 초조하다. 날이 갈수록 불투명한 고향길의 의구심과 더해서 불안하다. 오늘따라 우울하다. 시무룩이 천막 출입구를 바라볼 뿐이다.
벌써 다른 포로연대에서 아침 일과가 시작되었나 보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보면서’...,
노랫소리는 북풍에 실려서 날려 오며 크게 들렸다가 끊어질 듯 작게 들려온다. 이 소리가 자유의 종소리인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앞산에 가려서 뜨지 못한 해가 푸른 하늘을 더욱 푸르게 한다.
오늘 아침은 제법 쌀쌀하다. 포로들의 하루살이는 극소수의 작업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텐트 속에서 지낸다. 아침마다 정한 시간에 밖으로 몰리어 노래 연습을 한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허리에 차고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부르는 이 노래는 한을 담은 노래기도 하고 기쁨으로 튀긴 환호이기도 한 ‘국방군 가’다. 그러면서 어제까지 불렀던 ‘인민군 가’ ‘수류탄 덩이 붉은 대가리...’와 겹쳐서 야릇한 호기심마저 자아내는 것이다. 가사의 뜻, 곡조, 담긴 정신 등이 엎치고, 겹쳐서 내 정신이 한동안 혼란타.
그래도, 노래에 한을 담아 부르던 포로들은 바람을 피해서 무리의 남쪽 끝에 꼬리 잡아 엉켜 북풍을 피하고, 이와 달리 노래와 함께 기쁨을 가득 채워서 끓는 가슴을 불태우는 포로들은 당당히 북풍을 맞아 가슴으로 막는다.
덩어리는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여 철조망에 닿아 더는 옮겨 갈 수 없을 때쯤 노래 시간은 때맞추어 끝난다.
순응하는 삶, 가치 있는 죽음, 저울대의 양 지레의 중심축은 어디란 말인가? ‘양양한 앞길...’과 ‘수류탄 덩이...’의 편곡이나 합주곡, 합창곡은 될 수 없는 것인가? 모든 게 뒤집히고 얽혀진 어제와 오늘을 건너가는 나의 노래는 어느 것이 돼야 하나? 난 오늘 꼬리 자비로 일렁이는 포로 뭉치 속 중간에서 ‘양양한 앞길...’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입을 옷’을 뜨개질할 참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