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수용소’에서의 겨우살이가 시작되었다.
일 미터 육십의 키에 체중은 사십오 킬로그램 남짓 한 깡마른 체구인 나도 수용소의 형편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작업장에 나가야 한다. 도무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자신이 붙지 않는다. 매일 아침, 정문 앞 좁은 마당에 나온 차례로 줄을 서는 포로들은 일을 나가려는 장정들이지만 그중에 나 같은 약골은 없다. 위험하고 힘든 일은 아니라도 몸무게와 견주어지는 일,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이나 들어 올리는 일은 피했으면 좋으련만 마음대로 되질 않는 것이 요놈의 작업배정이다. 이런 일 저런 일을 경험하면서 일에 대한 요령도 어느 정도로 터득은 했지만, 몸무게와 관련이 있는 일, 개울물 퍼오기와 분뇨통 메어 나르기는 정말 면했으면 좋겠다.
평소와 다르다. 오늘은 자진해서 일터를 찾는 궂은 일꾼 패와 마지못해 나온 일꾼 포로들이 벌써 뒤섞여서 몇 겹으로 줄을 서서 기다린다. 누룽지 미끼에 코가 꿰여, 오히려 남에게 빼앗길세라 일직부터 줄 서 있는 건장한 장정(壯丁) 포로들의 기다림에도 그들만으로는 태 부족(太不足)한지, 나같이 약골이 강제로 작업장으로 내몰리는 이변의 날이다. 요구하는 작업장 수가 늘었던지, 아니면 작업량이 많았든지, 아무튼 모든 텐트 속의 모든 포로가 내몰리어서 일터로 나가고 있다. 내 차례에 닿아서는 또 어떤 일을 맡은 미군이 우리를 떼어갈까, 걱정스럽다.
어느새 우리는 자잘한 일꾼으로 둔갑해 있었고 작업은 으레 우리의 몫이려니 하여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응하는 일벌레로 동화돼 있었다.
난 개울가로 실려 가서 물통에 물을 담아 트럭에 싣는 일을 하게 되었다. 차가운 늦가을에 찬물 속에 맨발로 들어가서 물을 담는 것, 발이 시려서 참기 어렵지만 이 정도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나, 가득 채운 물통을 어깨에 메고 자갯돌 깔린 개울 바닥을 맨발로 걸어서 트럭이 있는 강가까지 가서 차에 올려주는 일이 힘에 부쳐서 감당할 수가 없다. 보통의 일은 요령이나 끈기나 일의 속성(屬性)으로 해서 그런대로 어렵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물통을 어깨에 메는 일은 순전한 내 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하니 다른 일과 판이하다. 이십 리터짜리 쇠 물통이라서 물 무게와 깡통 무게가 오히려 내 몸을 물속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모두 양손으로 물통을 들어 공중에 띄우면서 어깨에 올리건만 난 양손은 말할 것도 없고 무릎과 배와 가슴과 어깨를 다 합쳐 기를 써도 도무지 올라가질 않는다. 보다 못한 동료 포로가 거들어서 어깨에 메어 주지만 발을 옮겨놓다가 개울 바닥에 깔린 돌에 미끄러져 비척거리며 개울물만 튀기다가 그만 물통을 팽개치고, 간신히 몸을 가누고 바로 서서, 딴에는 허망한지 개울 바닥을 내려다본다.
작은 물고기가 발 옆을 스치면서 검푸른 물이끼 낀 돌 밑으로 숨어버린다. 그러나 난 숨을 곳이 없다. 물통을 메기엔 너무 작은 체구인 나의 작업을 지켜보든 미군도 차라리 외면하고 만다. 하늘이 노랗게 익어서 어깨를 짓누른다.
이렇게 된 데는 병치레도 한몫 있다.
현대적 의료 장비와 기술을 자랑하는 유엔군도 밀려드는 세균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던가! 언제부턴가 이질(痢疾)이 만연하여 수용소 안은 온통 난리가 났다. 화장실엔 환자의 줄이 끝없이 이어지고 간이의무실엔 피골이 상접(相接)한 환자가 실린 들것이 레일을 깔아 놓은 듯 궤도를 이루어서 끝없다. 이질의 병마는 나를 외면하질 않았다. 난 굶기 잘하는, 이골 난 결식 쟁이라 그나마 스스로 다스릴 수 있었다. 자고 나면 몇 명이 죽어 나갔느니, 몇 명이 후송되어서 돌아오질 못하고 있느니, 그들은 모두 황천길로 갔다느니, 진실인지 날조인지 소문은 우리 병자들의 마음을 극도의 공포로 몰고 갔다.
시간이 흐르고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사는, 섭리의 손길이 나를 산 사람으로 갈라놓았다. 이런 일이 지난 뒤 수용소 당국은 일제히 신체검사를 시작했는데 이때의 내 체중이 일백 파운드, 사십오 킬로그램 남짓한 체중으로 ‘뼈 무게만 해도 그만큼 되겠다!.’ 는 짝꿍의 놀림을 받을 만큼 마른나무 꼬챙이 같은 사람, 분명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 난 사람 구실을 한답시고 이 대열에 끼긴 했어도 마냥 물 한가운데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몇십 배의 무게도 입으로 물어 올린다던데, 난 내 몸무게의 반도 못 들어 올리는, 미물보다 못한 사람인가? 나를 보는 동료 포로마다 측은한 눈길만 한 번씩 보낼 뿐,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그들로서는 누구도 이 작은 물통을 못 멜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제 물통은 어깨에 메고 다른 한 손으로 내 물통을 나와 맞들어서 겨우 한 통을 길어 나를 수 있었다.
어깨에 메지 못했으니 반 구실을 한 셈이다.
오전 작업은 그런대로 이렇게 끝났다. 영일 없는 우리 생활의 반나절이다.
오후의 작업이 시작됐다.
빽빽이 들어찬 아름드리 소나무가 발아래서 부서지는 창파(滄波)를 굽어보며 파도를 몰고 온 바람에 고개를 젓고 있다. 파란 파도가 검은 바위를 타고 오르다가 뒤집혀서 하얀 물거품을 내 뿜는다. 절벽에 부딪힌 노여움을 언덕 위의 소나무에 포효하듯 소리친다. 이 소리에 내 삶의 질곡을 섞어서 얼버무릴 수는 없는 것, 나 또한 파도에 외치고 싶다. ‘밀려오는 파도야 내 고향에 날 보내다오!’
국토의 동 남단 언덕 위에 유엔의 ‘영국군’이 포진하고서 방어진지를 구축하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오늘 나는 작업을 통한 영국인의 일 시키는 품을 비로써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체험한 포로들의 작업 양태란 삽을 꽂아놓고 십 분 있어도 그만 이십 분 있어도 그만, 아무런 독려도 하지 않는 미군의 일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서 있는 우리가 몸부림을 칠 지경까지 이르게 되어서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다. 이것이 ‘자율(自律)’인가보다. 아무리 태만해도 그만이다. 비록 그날의 목표에 미흡하게 됐더라도, 마무리가 미진하더라도 그만이다. 삽을 꽂아놓고도, 시간이 돼서 호각을 불면 꽂힌 삽의 흙을 뜨질 않고 그대로 나오는 데 비해, 오늘 영국군은 철저히 자기책임을 다하도록, 작업배정부터 할당제로 도급하고 그 진척을 수시로 검사하는 혹독한 사역이다.
한 가지 일을 성사하는 데 있어 미군은 그 작업 외에 파급되는 외적 요소까지를 폭넓게 감안(勘案)하여 다원적인 성과를 계량(計量)하는 데 반해서 영국군은 국소적으로 당장에 미치는 성과, 그 일의 국지적 결과만을 생각하는 협착(狹窄) 품이다.
그래서 기왕의 자리를 물리고 새로운 질서의 축으로 흡입되는가 보다. 이 새로운 축을 날카롭게 갈아서 고정하고, 보이지 않는 원심력을 조정함으로써 미래의 세계를 한 축에 모으는 지혜, 바로 이것이 미국의 사상이다. 이 윤리적 바탕 위에서 팽이채를 구사하는 방법이 일을 시키는 작은 소슬바람으로 분 것 같아서 새롭게 미. 영의 국체(國體)를 더듬을 수 있었다.
한편 호되게 몫을 다한 ‘영국 병사’의 책임감이 기왕의 영화(榮華)를 있게 했던 찌꺼기일망정 우리가 생각지 못했든 자주정신(自主精神)을 잠시나마 맛보게 한다.
파도는 멈추지 않고 절벽을 기어오른다. 바다는 언제 자며 나는 언제 집으로 갈 것인가?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