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외통궤적 2008. 8. 6. 10:44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3181.011203 번호
숫자는 인간이 만들어 쓰는 것 중에 가장 슬기로운 발명인성 싶다. 무엇보다 지능의 높낮이 가늠쇠가 되어서 동물과 다르게 인간을 지혜롭게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를 가두는 족쇄가 되어서 구속하고 스스로 얽매여서 고민하는 일면도 없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의 욕심이 수를 낳아 가꾸고 기름으로써 마침내 수의 개념을 외면하고는 살 수 없도록 되었으니 수는 사람만이 휘두르는 마법의 방망이로 시작부터 있어왔다 하겠다. 수가 얼마나 영악한지 그 마력을 잴 수 없어서, 어릴 때의 생각으로 풀어보고 싶다. 내 어릴 때 할머니의 말씀이, 닭은 하나밖에 세지 못하기 때문에 알을 하나만 둥지에다 남겨두어도 그 자리에다 알을 계속 낳는다고....한알도 없이 다 꺼내오면 닭은 짚가리나 나무단 구석 같이 닭이 제가 낳기 좋은 아무데나 낳게 되고, 이를 찾아다니며 꺼내 와야 하기 때문에 둥지에 꼭 달걀 한 개를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꺼내오기 쉬운 닭 둥지에서 낳도록 으레 짚으로 엮어서 매달아 놓고, 그 자리에 한 알만 남기고 낳는 족족 꺼내 오신다는 말씀이시다. 그런데 더 아리송한 것은 그 알이 진짜 알이 아니고 비중이 높은 무거운 나무의 흰 속을 달걀 같이 다듬어 넣어주면 영락없이 그 자리에 낳는다는 것이다.


흥미롭기도 하려니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내 생각이 대뜸, 그러면 닭은 하나밖에 세지 못하는구나! 고 생각하게 됐고 이후 수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는 본능이나 모성이나 생리 따위를 모를 때이니 우화 같은 닭대가리 말씀이 무척 잊히지 않고 지금도 내 삶의 지표를 암시하고 있다.
 
‘셀줄 알아야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진 이 이야기다. 그래서 무엇이나 열심히 세는 버릇이 생겼고 손가락셈도 하기에 이른 기억이 새롭다. 뿐만 아니라 따져보면 수(數)는 모든 화의 근원인 듯싶어서 또 달리 아찔하다. 내가 계란이 되어서 도둑맞을 것 같고 계란에다가 번호를 매기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이미 이런 일은 내게 벌어지고 있다. 부화한 병아리가 번호메긴 계란껍질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은데도 사람은 계란껍질과 맞먹는 옷에다가 번호를 붙이고도 마치 낙인(烙印)이라도 된 것처럼 움칠 수도 뛸 수도 없이 되는 것은 이 역시 수에 능통한 인간만이 수를 전횡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나도 예외 없이 일관된 번호로 관리 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잊히지 않는 포로번호에 또다시 군대번호를 부여받는 날이다.



번호는 무형의 족쇄다. 나는 지금 이 무형의 족쇄를 차는 것이다. 이 족쇄로 나를 이 땅에 묶어 놓고 멀리 이국으로의 꿈을 차츰 이 땅으로 옮기도록 당겨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확고한 발자국을 이 땅에 찍어 명실상부한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바라고 기다렸던 삶의 뿌리를 깊이깊이 박고, 누가 떠 옮길 수도 밀어낼 수도 없는 그런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려는 것이다.


탈출와중에 헤어졌던 짝, ‘이 충성’과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앞뒤로 늘 붙어 다녔고 지금 군번을 타는 줄에도 나란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꼬불꼬불 긴 줄을 끊기 있게 버티어가며 떨어지지 않는다. 누구의 의견을 물은 적도 없고 받을 것도 없다. 그래서 타낸 것이 ‘이 성춘’은 9#####3. 나는 그 다음 번호인 …4번이다. 헌데 여기서 내가 눈앞의 번호를 예측하여서 3번인 것을 4번으로 한 까닭이 있다.

내가 수의 개념이 둔해서 본능적으로 같은 수가 많이 들어가는 4번을 택하여 내게 이 번호가 차례지도록 자리를 바꾼 것을 ‘이 춘성’은 모른다. 그야 상관없으니까. 여기서도 내 잠재의식 속에 수의 단순성을 바라는 명료한(?) 아둔함이 수를 외고 다녀야하는 부담을 던다는데 내 꾀가 발동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내 성품이다. ‘이춘성’의 번호가 나와 이어진 번호니까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인 것 같아서 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적어도 번호순으로 가르는 일에 있어서는 그렇다. 다만 그 밖의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받쳐주면 될 것 같아서 흡족했다.


친구는 그동안 어디서 생활했는지 피부병을 얻었다며 의무실을 열심히 드나들었다.그러면서 사타구니에 손을 연신 집어넣고 긁적였다. 묻지도 않는 말에, 목욕탕에서 옮았다며 애써 설명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목욕탕에서도 병이 옮아오나?  의문이 일었지만 더 이상 알아볼 길도 더 이상 물어볼 데도 없다. 우리는 피차의 어려운 점을 헤아렸기 때문에 편안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나와함께 평행봉에 올라 몸을 휘둘렀고 배를 탈 때까지의 시간을 때웠다.


두 번째 육지를 떠나고 있다. 먼젓번은 포로의 신분으로, 이번에는 한국군인의 신분으로 미군의 수송선 LST를 타고 제주도 훈련소로 떠난다. 같은 배를 타건만 감회는 남달리 새롭다. 떳떳함이 넘쳐서 신이 난다. 죽음의 길인데도 신이 난다.  왜 그럴까?
밥줄이 이어져서 그럴까?  아니면 함께 하는 연대성에서 오는 개인영역의 축소 내지는 마비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반드시 이 과정을 밟아야 내가 바라는 길로 들어선다는 확신 때문이다.


배 안은 멀미와 피로로 지쳐서 쓰러지는 장정들로 어수선하다. 그러나 나는 건재하다. 하느님의 돌보심, 부모님의 염원, 내 의지의 소산(所産), 어느 것이라도 좋다. 나는 꼭 살아서 돌아가 집을 떠날 때 작별의 인사 한 마디, 글 한쪽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한, 그 증발(蒸發)한 한을 풀어야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달걀에 번호가 매겨져 돌아 왔습니다.!’ 이렇게.... /외통-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자  (0) 2008.08.06
제주도  (0) 2008.08.06
  (0) 2008.08.06
대구  (0) 2008.08.01
입대  (0) 2008.08.01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