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고 , 또 장정이 되기엔 신체적으로 미숙하지만 이미 ‘ 인민군대 ’ 의 경험이 있고 삼 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심신의 고질 ( 痼疾 ) 없이 집단생활을 해 냈다는 것이다 . 이를 믿고 다시 한국군대에 입대하려는 것인데 , 격려하며 돌보아줄 사람 없는 나는 손잡이 없는 부삽처럼 구석에 처박혀 버려질 것 같아서 걱정되기도 한다 . 모든 것이 불확실할 뿐이다 . 뚫린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국수틀 속의 반죽 같이 내 선택의 여지는 달리 없다 . 그래서 담담하게 집결지인 ‘ 의령경찰서 ’ 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동료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 정곡 ‘ 지서에서 트럭에 올랐고 , 트럭은 계속 달리고 있다 . 트럭이 설 때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몇 명씩의 동료 입대자가 탄다 . ‘ 의령군 ’ 내의 집집에 박혀있던 동료의 수는 몇 인지 알 수 없다 . 오는 족족 태우다가 트럭의 적재함이 차니 동쪽으로 머리를 틀어서 어디론가 간다 . 내가 탄 트럭도 경찰서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가득히 차서 바로 대구로 가고 있다 .
푸른 사과가 잎을 따돌리고 햇볕을 받아 저마다 반짝이며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사과나무숲을 빠지면서, 책에 실리도록 이름난 사과의 고장, 능금의 도시를 비로써 관조 ( 觀照 ) 한다 . 그 이름 ‘ 대구 ’.
삼 년 전 이 도시의 어딘가를 밤중에 통과하여 역에서 화차에 실려 부산으로 내려갔던 죽음의 공포 포로, 올빼미 이동을 되새기면서 , 밤과 낮의 명암을 한 도시와 같은 역구내에서 처음 체험하는 내 역정 ( 歷程 ) 의 한 획이다 . 가슴이 고동치는 흥분이 일렁인다 . 전번은 포로의 몸으로 대구 역 홈을 밟았고 이번은 자유인의 몸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다하려 같은 홈을 밟는다 . 역 건물과 철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련만 나는 온전히 다른 객으로 변하였다 .
무수히 많은 밤하늘의 별들에 호소하며 빌던 그 때의 별빛이 오늘 작열하는 태양의 광명으로 되돌아 왔으니 나를 돌보는 천체의 보살핌에 감사할 따름이다. 고향의 부모 형제들의 염원이 나의 염원과 함께 ‘ 하늘 ’ 에 닿아 발현되는가보다 .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