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외통궤적 2008. 8. 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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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8.011127 입대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군대 가는 것이고 죽는 방법 중의 하나도 군대 가는 것이니 군대에 가면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의지할 곳이 일거에 해결되니까 그렇다. 군대에 가면 후방에서 어물거리다가 좌우의 소용돌이에 말리거나 질병으로 죽는 것보다 값있게 죽을 수 있어 그렇고,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을 보존해야할, 태어난 본분을 다하다가 죽을 수 있기에 그렇다.
 
내가 이 땅에서 살든 죽든 군대는 나와 숙명적으로 인연 지어질 수밖에 없는, 나를 포함하는 모든 젊은이의 활동무대임을 알기 때문에 당장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한 나는 군대에 또 나가지 않으면 이 땅에 발 부칠 수 없게 된다. 또렷한 대한 민국 국민이 되어 당당히 삶을 펼치기 위해서도 군복부를 마쳐야한다. 또 통일을 이루어야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부여된 책무이니 우리를 부르는 전쟁터를 외면한다는 것은 이 세대를 외면하는 것이며 나를 무용의 존재로 전락케 하는 뜻 없는 삶이라는, 거창한 이론이 나를 호도(糊塗)함을 자성하몀서 간다. 자기변명에 도취되어서라도 발걸음을 가볍게 하려 한다.




‘인민군대’에 발을 디딜 때를 생각한다. 정말 얼떨결에, 집안 식구 누구와도 작별인사 한마디 못 나눈 것은 제치더라도 글 한쪽 남기지 못한 채 소용돌이에 휘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비마다 냉정히 판단하고 처신할 수 있었던 것은 천행이다.

죽지 않고 사는 쪽으로!
그래야만 보다 낳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죽음은 내가 하고자하는, 보고자하는, 이루고자하는, 모든 것의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살았다.


그랬다. 
오늘 나는 고향을 떠날 때와 상반되는 처지에서 여전히 배웅하는 사람 없는, 홀로 군대를 가고 있다. 그 밖의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이즈음 나는 온전한 이 세상 사람으로 환원되어 수용소 안에서 다짐했던 삶의 의미는 망각하고 말았다. 편리한대로 해석하고 행동하는 연체동물(?軟體動物)이되 있다. 또 환경에 즉각 적응하는 천부의 기질이 노출되고 있다.  그런데도 나를 돕는 이는 아무도 없고 내 안에 있는 나를 움직이는 내 의지의 지향대로 행동하는 나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더구나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스스로 격려하며 온전히 무리에 묻혀서 흐를 뿐이다.


이후 많은 난관과 고초가 있을 것이지만 이것들은 죽음보다 상위에 있는 호화로운 수식(修飾)일 따름이다.
나는 여전히 맨주먹이다. 허지만 이 또한 사치스런 발상이고 소용없는 넋두리니 무일푼 맨주먹으로 뚫고 나가며 하나하나 내게 맞게 수용해야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석곡리’ 구장 집을 나서는 내 가슴이 텅 빈 볏섬 같다.  누가 퍼간 것도 아니고 누가 담았던 것도 아닌데도 공허한 마음은 한량없다. 버드나무 그늘을 따라 터벅터벅 ‘정곡’지서로 내려가는 내 양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채 흔들릴뿐이다. 팔에 달려 활개 치는 주먹, 손등만은 바람에시원하다.


이런 때,  작은 보자기 하나라도 손에 들려 있으면 흘러가는 구름과 친구 삼아서 가는 발걸음 가벼우련만! 내게는 이만한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깨진 쪽박운명인가?  아니면 현실을 과감하게 타파하든지 아니면 도망칠 용기조차 없는 못난 짓의 대가(代價)인가?

어느 쪽이든 불투명한 미래를 또 안개 헤치듯이 헤쳐 나가야 한다.
잘하면 북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안개 속이다.  난리 통에도 아직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아다. 힘을 내자!



짙푸르게 자란 벼 포기사이에 고추씨같은 작은 물풀이 파랗게 깔려서 뜨거운 볕을 여날라 벼 포기에 전하고 있다. 그 파란 물풀사이로 개구리 한 마리가 눈을 굴리고 있다. 일어서는 내 인기척에 놀라 물속으로 첨벙 들어간다. 개구리는 남쪽개구리나 북쪽개구리나 같다. 개구리는 전쟁이 없다.


나는 일어서서 궁둥이를 털었다. 나란히 뻗어선 먼지털이같은 버드나무 가로수가 나를 배웅하는 데, 이 버드나무의 그림자만 한 칸 한 칸 내 발길을 끌어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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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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