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안의 재실인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 만 도민증(道民證)을 받아 들고 첫 번째로 묶는 집이고 우리와 특별한 인연이 되어서 그런지 관심 진다. 동네 안에선 이런 큰집을 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서 이 동네에 이 재실의 주인 성씨가 박혀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재실을 돌보면서 지내는 집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가한 이즈음의 내 생활이 이런 생각까지 하게 하는구나, 하며 물끄러미 처마 밑을 바라본다. 나도 민간인으로서 삶의 물결에 쓸려 헤엄을 치는구나 싶어서, 저쪽의 작은 언덕을 언제 가 닿나 싶어서 조금은 두렵다.
이런 큰집을 눈여겨보면 바로 우리네가 사는 집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자세히 보아 건축양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으레 기둥은 둥글고 대청마루가 통나무로 짜여 있고 들보는 위로 구부러져 한결 실내 공간을 넓고 시원하게 했고, 또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듯, 그 많은 날 속에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기상이변의 물난리를 생각한 듯, 높고 높게 돋아서 지은 것이 여느 집 경우보다 다르다. 그것은 그만큼 그 집의 공공성이 있거나 중요시됐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공공성이 그대로 살려지는지는 나를 의심케 한다.
내가 이 난리 통에 몸을 의지했던 집들은 언제나 이런 공공건물이었다. 고향에서는 바닷가의 ‘정각’에서, 황해도 ‘황주’에서는 ‘인민학교’에, 대전에서는 학교의 ‘관사’ 같은 데서, 숙식을 함께하며 단체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건물은 죄다 뚜렷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단순한 공통점이 나를 오늘 이렇게 이상한 데까지 생각게 한다.
공공건물이 나의 발자국을 띄게 하고 한 걸음 옮겨놓게 하여 사회인을 만드는 구실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이렇게 어렵게 사회에 진출하는지, 나만 유독 시와 때를 잘못 타고나서 이런 과정을 밟는지 참으로 괴이하기까지 하다. 여기는 시골이니까 마땅한 건물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아마도 인원이 많으면 학교 건물을 빌렸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창고나 마을공회당이었을 것이다.
이런 공공건물은 언제나 사람의 심성을 거칠고 무디고 성글게 하련만 내가 피할 수 없는 무력함이 안타깝게 나를 또 이 지경으로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순한 심성을 심어가려면 모름지기 내 눈과 내 키가 그만그만하게 닿을 듯 말 듯 한 처마 높이의 집에서, 누워서 손을 위로 뻗으면 손끝과 발끝이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흙냄새가 물씬 나는 집에서 자고 일어나야 하고, 밖에서 마당으로 들어올 때 추녀 끝이 내 눈썹과 높이를 겨루듯 나직하고, 지붕에 올린 박 넝쿨의 흰 박꽃이 아침과 저녁을 알리고, 가을엔 둥근 박이 쪼그라진 줄기를 의지해서 구를 듯 나를 기다리는 집, 가벼운 내가 박 따는 일만큼은 자만해도 좋을 만큼 지붕이 보드라운 집, 박 따 내리는 일이 완벽한 내 전유(專有)의 작은 일이라서 내 마음을 즐겁고 순하게 하는 박 올린 집이라야 할 것 같다. 그렇건만 여기 이 큰집은 내가 자란 우리 집과 너무나 모양이 다르고 포근히 감싸 안는 맛이 없어서, 삭막함마저 느낀다.
난 옛 생각에 잠시, 하늘 위로 날아갈 것처럼 휑하게 트인 이 집의 부연 달린 추녀를 올려보며 이 집은 영 내 마음을 감싸줄 것 같지 않을 뿐 아니라 나도 발붙이지 못하고 실려 갈 것처럼 달뜬다.
지서로 갔든 연락원이 돌아오고 또 함지 밥이 펼쳐진다. 뒤뜰 감나무와 배나무에선 올된 참매미의 청아한 울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다가 한순간 멈춘 듯, 하더니 소리와 함께 푸드덕 날아갔다.
우리 집 박꽃은 벌써 이울었을 것이다. 그곳에도 머지않아 매미 소리가 그치고 찬 바람이 불면서 가을 지붕 위의 둥근 박이 익을 텐데 그 박은 누가 딸까. 동생이 따기엔 어리고, 내가 가기엔 꿈길이고, 어쩌면 내가 없어서 박을 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전한 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참매미의 맑은소리가 다시 내 귀를 뚫는다. 이 소리는 우리 동네 참 매미 소리와 다름없다.
박 따는 쾌재는 언제 외치나! 흰 박꽃이 그립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