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탈출의 긴 터널을 뚫었어도 밤은 길지 않았다. 나는 더 멀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밝아온 새날,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일을 마음속에 펼치느라, 뒤치고 제치느라 진종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실 숨어있으려니 움직일 수 없었어도 육신의 피로만은 그런대로 조금 풀었다.
개구리는 세상이 제 것인 양 독창을 하다가 곧 함께 중창에 들어갔다. 개구리 합창이 멎는가 싶더니 우리를 맞아들였든 이장이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안내에 쫓아 즉시 행동하였다. 숨어있든 방을 빠져나와 동구 밖에 대기하고 있는 한 트럭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열둘이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한 방안에서 세 끼를 때우며 지내는 동안 어느새 틈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직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도망자다. 그래서 개인행동은 죽음을 스스로 부를 수 있다. 모두는 이점을 나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그대로 숨죽이고 따르기만 한다.
미국제 자동차 같진 않다. 일본제 자동차인데도 아직 살아서 털털거리는 것이 신기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이더니 큰 도로에 이르렀다. ‘운전수’ 외에 순경 둘이 타고 있다. 가로수 버드나무만 다가올 뿐, 우리의 행로는 죽은 자의 길처럼 말이 없다. 초여름 한밤의 공기가 얼굴을 때리며 구멍 난 피부를 통해 가슴과 머리로 마구 들어오며 간밤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그로 인하여 잊어버린 내 시간을 셈하게 한다.
햇수로 삼 년, 달수로는 온 33개월의 금쪽같이 귀중한 세월을 날려버렸으니 난 잃어버린 세월과 그 속에 배인 내가 받을 성장의 밑 걸음을 언제 받아서 자라야 하는지 기가 막힌다. 앞으로 나의 또 다른 시간은 누가 보장할 것이며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다만, 살아있는 나이기에 신께 감사할 수 있고 이제까지 절박했든 자취를 되새길 수 있으니 고맙다.
틈은 잠깐, 순간적으로 뒤바뀐 고향의 영상에 난 몰입하고 만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형제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나타났다가 다시 차례로 나타나며 나를 반겨 얼싸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신다. 영상은 흩어지고 말았다.
잠깐 사이에 별을 타고 먼 길을 다녀왔다.
자동차가 좁은 다리를 건너려고 멈칫거릴 때, 별도 함께 멈칫했다.
자동차는 쉼 없이 자갈길을 달려가다가 반딧불처럼 작은 등불이 비치는 어느 집 앞에 멈추었다. 서넛의 순경들이 나란히 앉아서 정중히 맞고 있다. ‘의령경찰서 정곡지서.’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내륙 깊숙이 들어온 듯하다. 자정이 오가는 듯, 묵직한 고요가 가라앉아 있다.
성글고 굵게 박힌 글씨체가 낯설다. 선명하진 않지만 보기에 획마다 방울지고 석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제 막 찍어낸 등사(謄寫) 유인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메워야 할 빈칸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어느
새 수용소 안에서 써먹든 양력 생일이 이젠 진짜 내 음력생일을 누르고 빈칸에 서슴없이 올라간다. 이만해도 난 ‘서양물’이 들었는지, 음력은 뒤로 처진다. 유월 스무 이틀이란 내 생일이 팔월 십이일로 거침없이 써진다. 늘 마음 한구석에 남는 그 날, 음력 ‘유월 스무이튿날’은 어머니가 챙기시고 할머니가 외시는 그날이건만, 이로써 난 이미 부모님과 할머니를 외면하고 있다. 자책하면서도, 딴엔 거슬러 그날을 알아보면 맞을 것이라는 생각과 언젠가는 바뀌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넘어가고 만다. 그러나 모든 건 지금이다. 지금이 내일이고 내일이 모레로 이어지는, 단순한 진리를 난 또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름, 부모, 본적, 생년월일, 본적을 차례로 적어나간다. 머뭇거리는 칸, 주소는 내가 있는 바로 이 자리,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00번지’를 일러주는 대로 단숨에 적고 머리를 둘러 사방을 훑으나, 칠흑 같다. 컴컴한 사무실 안은 등갓이 넓은 남포 석유등이 두 개 있을 뿐이고 방안은 단조롭다. 책상 세 개와 딸린 의자뿐이다. 맞은편 지서장이 앉은자리 뒷벽 천장 밑에 태극기와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서 우리들의 모든 걸 내려다보고 있다. 창밖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굵은 목소리를 내며 입가에 주름이 뻗친 늙수그레한 얼굴의 검은 구레나룻 ‘지서장’과 달걀 껍데기 팽팽한 얼굴을 한, 아주 젊은 순경, 둘이 부지런히 주고받으며 잉크병에 펜촉을 문지르며 쓰더니 우리에게 한 움큼 내미는 것이다. ‘이제부터 대한민국 경상남도 도민입니다. 자! 받으세요!’ 나도 갓 스물이니 받을 만, 하다.
우리는 자유인이 됐다. 그 책임은 이제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하고 우리에게는 국민의 의무와 권리가 주어지는 사실에 놀랐다. 번개 같은 솜씨다.
새로이 펼쳐질 무대의 장에서 변신한 우리를 선보일 참이다. 참으로 감격의 한순간을 맞으면서도 두렵다. 난 혼자다. 무연(無緣)의 이 땅에서 나뭇잎보다 작은 한쪽의 파란 딱지가 나를 보장하려는가! 이 한 장의 나뭇잎 같은‘도민증.’ 이것은 내가 발 디디기에는 너무나 좁은 공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이 모두 내가 겪어야 할 운명, 짜인 각본대로 움직일 뿐이다. 난 그것을 모르나 희망으로 채워 살 뿐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