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산’의 유월 하늘이 맑고 푸르다. 약동하는 봄은 희망도 함께 채워 이미 천하를 덮었다. 자연은 어김없는 듯, 좌절과 통한으로 웅크려 숨죽이는 포로들이 있는 작은 골짝에도 신록으로 물들였다. 풋풋한 풀 냄새를 가득히 몰아준다. 우리의 희망도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벌써 여러 날 계속되는 우리의 ‘휴전 반대’ 시위는 이젠 일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군들도 포로들의 이 운동이 자기네의 경비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같이 손도 흔들어 주는 여유를 부린다. 그러다가도 마산시민들의 시위 함성이 들리고, 우리의 시위가 군중 심리를 타고 거칠어지면 그들은 적극 진압한다. 이때 우린 고스란히 당하고 만다. 시민과의 연계(連繫) 불가능이기에 우리 시위는 한낱 미군의 경비훈련용 상대로 전락할 뿐이다.
이런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뿌연 앞날이 있을 뿐이다. 모르긴 해도 정보가 어두운 나 같은 티 나는 소년에게조차 감지되는 이런 상황, 수수깡 집의 뒤틀린 네 귀를 바로잡지 못해 안달하며 매만지는, 심정이 돼서 애만 끓인다.
그러다가 얼마간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정문을 제외한 경비업무를 맡고 있던 한국군은 철망을 사이에 두고 포로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고충을 포로에게 노출해 간접 개선하곤 했다.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있을 수 없는 포로들은 여름이 되면서 옷은 여벌을, 모포는 어울려서 사용할 양으로, ‘사바사바’로 철조망 거래를 하고 있다. 포로들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일부 한국군 초병도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호국 의지(護國意志)보다 초월적일 것이라고 여겼는지, 전혀 적대감이 있는 것 같질 않다. 한때의 적이 이렇게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 어린 나로선 기이하기만 하다. 서열이 말미(末尾)에 머물렀기에 이들처럼 거래를 따라 할 엄두를 낼 수는 없다.
다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정문의 경비초소에서는 알 길이 없고, 그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지급만 하고 있다. 모든 게 무르익는 조짐이 보인다.
‘휴전회담’이 겨레의 뜻엔 아랑곳없이 쌍방이 막바지 줄을 당기고 있단다. 반공을 자처한 포로의 뜻대로 남쪽에 남아서 미력을 봉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강제로 송환돼서 우리의 이중적 배신을 단죄받을 것인지 초조하다. 우리의 결사적 항거는 이런 이유에서 명분(名分)하고 뚜렷했다. 피를 마다하지 않고 항거함으로써 통일의 길에 다질 흙이라도 되고자, 우리는 울분 했던 거다. 하늘을 부르는 함성과 차마 땅으로 잦아들지 못해 괴어 흐르는 눈물에 하늘이 감동했으리라 믿고, 눈을 감고 도마 위에 오를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즈음이다.
요리는 ‘휴전 당사국’이 하겠지!
나 홀로 여러 경우상정(境遇想定)으로 가정해 본다. 만약 내가 휴전회담의 조건에 따라 또다시 자유의지로 선택의 폭을 넓힌다면 난 중립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남에도 북에도 환영받을 수 없는 변절자의 진한 색을 적으나마 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의 보존은 그냥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고 한다면, 그 가치는 처음 내가 자유의 넓은 땅을 택했을 때의 그 땅이 여기 남한에 국한될 수만 없지 않겠냐는, 아주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변호의 발상으로까지 진전되어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또 자아를 의식한 신앙의 뒷받침이 컸기 때문에, 지금 이 시 점에서 넓어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수도자의 삶이 또한 보람되고 지고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아서, 이 분야도 기웃거리는 얌체 생각도 하는 것이다. 진로의 개척은 오직 나 혼자 해야 하는, 이 땅의 고아이니까 당연한 고뇌다.
초조한 며칠이 지났다.
말아 올렸든 천막 가장자리 네 폭 천이 저녁이 되면서 내려지고 천막 안에선 앞날의 걱정 넋두리로, 언제나 같이 무거운 공기가 가득히 내리깔려 있다. 저녁을 타 먹고 그릇까지 씻어놓은 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주먹밥이 들어오는데도 이에 따른 설명은 누구도 안 한다. 더러는 ‘내일 아침은 이전에 없든 새벽일이 있을’ 거로만, 혹자는 ‘밥 짓는 시설에 이상이 있어’서 미리 주는 것으로만 중얼거릴 뿐, 무관심이다.
잠시 후. ‘지금 시간은 여덟 시 반입니다.’ ‘오늘 밤 열 시에 우리는 탈출합니다.’ 천막의 선도자(先導者)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선언한다. 난 귀를 의심한다. 그러나 또렷이 들리는 그의 말은 장엄하다. ‘우리에겐 철망을 끊을 절단기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오 분 전 열 시에 철조망 가까이에 가면 철조망을 순회하는 동초(動哨)가 철망 안으로 던져주는 절단기(切斷機)가 있을 것입니다. 천막마다 망을 보다가 던지는 절단기를 번개처럼 낚아채야 하는데 이 절단기를 가져올 사람은 나오시오! 절단기를 사용함에 자신이 있는 사람도 또 나오시오! 절단기를 받아 들고 기다리다가 열 시 정각에, 시각은 일 초도 빠르거나 늦어도 안 되니 반드시 그 시각은 지켜야 합니다. 철망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자르되 두 겹 철망과 그사이의 둥근 철망을 걷어 옆으로 밀어내고 다시 두 겹 철망의 두 기둥 사이를 자르시오! 단숨에 잘라야 합니다! 숨 돌릴 시간은 없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자! 그 일을 맡아 할 사람은 나오시오!’
우람한 장년 둘이 자진해 나갔다. 아마 그들은 전기공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천막마다 우리끼리 맞추어 놓은 내 시계로 하되, 말과 소리는 일체 허용이 되질 않으므로 명심하시고 넉 줄로 나란히 서서 천막 안에서 기다리다가 질서 있게 신속히 철망을 빠져나가되 일단 나간 다음엔 전력을 다해서 수용소를 멀리 벗어나시오! 서로 먼저 나가려다가 발에 채어 넘어지거나 철망에 걸려서 넘어지면 우리의 미래는 없는 것이오! 숨을 가다듬고 차분히 시간을 기다립시다! 지금부터 용변을 미리 보고 가장 간단한 복장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오! 아홉 시 이후에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마시오! 자르는 곳은 산 쪽으로 쳐진 철망이고 탈출은 천막마다 독자적으로 철망을 끊어 나가는 것이니 우왕좌왕하지 말고 우리가 나갈 곳으로만 나가시오! 잡혀서 되돌아 와 굴욕적인 생을 다시 반복하지 마십시오! 꼭 살아 내시오’ 또 한 번 엄숙한 포로의 포고가 있다.
갈구하든 자유의 몸이 되는 첫발이 또 다른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는, 이 기막힌 사연! 그보다, 잘못되면 우리는 몰살할 수도 있다. 공포의 순간이 각각(刻刻)으로 다가오고 있다.
난 간추렸다. 모든 걸 다 버리고 주먹밥과 ‘묵주(默珠)’와 성경책을 호주머니마다 넣고는 신 끈을 홀쳐매고 순서에 따라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새로이 전개될 깜깜한 앞날을 더듬고 있다. 멀리 달아나자! 그리고 잡히지 말자! 내가 있는 수용소는 정문에서 가장 가까이, 미군 경비실로부터 지척에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서 뛰자! 그다음은?. ? . 난 다짐하고 또 다진다.
신호가 온다! 신호를 받자, 앞에서부터 오른쪽 산 밑의 철조망 쪽으로 허리를 굽혀서 밀려 나가고 차례로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마지막 철망은 아직 내 키를 못 넘긴 채 기둥 양옆에 서서 잘라 올리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허리를 최대한 굽혀서 빠져나간다. 성급한 사람은 그냥 철망을 기어오른다. 아무도 말릴 수는 없다.
석 잠잔 누에가 뽕나무 잎 갉아 먹는 소리, 마른날에 우박 쏟아지는 소리를 뒤로하면서 난 전력으로 질주한다. 잇달아서 골을 메워 들어선 다른 수용소에서도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수용소를 에워싸고 있는 관리 순환도로를 따라서 달린다. 숨이 하늘에 닿도록 뛰었다. 산 밑의 도로를 벗어나며 뒷산을 손과 발로 기어서 오르기를 정신없이 반복했을 때 산은 어느새 탈출한 포로들로 새까맣게 뒤덮여 있다. 한숨을 돌리려 뒤를 돌아보니 눈이 부시도록 탐조등을 쏘아대고 미군의 고함이 터지고 이윽고 각 망루에서 불을 뿜는다. 셀 수 없이 많은 중화기가 달아나는 포로를 향해서 총알을 쏟아붓는다.
난 아직 칠 부의 능선에 머물러 있고 예광탄(曳光彈)은 머리 위를 날거나 옆으로 박힌다. 미군의 아우성과 한국군의 호령 소리와 포로들의 숨소리로 작은 골짜기는 일시에 전장이 되어버린다. 비명(悲鳴), 총에 맞아 거꾸러지는 포로, 우리가 올라가는 산은 모든 경비 망루의 중화기와 미군 화력의 표적이 되어 무차별 쏟아지고 있다.
난 아직 살아서 산등성을 넘고 있다. 이제 직격탄은 면했으나 그들의 기동성 있는 전투 장비를 무엇으로 당하며 어떻게 피하랴!
이런 난리를 치르면서도 산은 조용히 어둠을 깔고 우리를 맞고 있다. 그러나 한순간도 머물 수는 없다. 또 다진다. 빨리 달아나고 멀리 가서 숨자!
낮같이 밝은 수용소 불빛에다 탐조등을 보탰으니, 포로들의 행로는 그대로 드러나고, 그 위에 날 실 같은 빨간 예광탄으로 짜인 화망(火網)은 많은 포로를 다치게 한다. 명과 암이 갈리는 능선을 뒤로하고 정신없이 산을 내려 달린다. 등 넘어 산골은 여전히 콩 볶듯 요란하고 하늘은 벌겋게 닳아, 올라간다. 비명(悲鳴)에 가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1952년 6월 18일 새벽은 내 생애(生涯)에서 또 하나의 획을 긋는 날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