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깨

외통궤적 2008. 7. 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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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4.011119 도리깨

우리의 ‘민간인’수업(修業)은 처음부터 절룩거리고 있다. 서툴고 어색하고 엉성하다.
가정을 이루지 못했으니 여전히 남자들끼리만 우글거리는 울타리 없는 수용소고, 세 끼니는 못밥이나 밭두렁 밥같이 삼베보자기를 덮은 함지 밥이니 고작 밥통이 양철통에서 함지로 바뀌었을 따름이기에 그렇고, 재실 뒷간은 허전하고 열없도록 틔어서 어쩔 줄 모르겠으니 수용소 뒷간 같아 그렇고, 잠자리는 아늑하기는커녕 들떠서 날마다 남의 집 같아서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야성(野性)을 제한 받는 나포된 들짐승이다. 아무리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오래 했기로서니 얼속깊이 박혀있는 나의 옛 습성을 앗아가진 못했는가보다.

 

구둘 장 깔고 앉아서 앉은뱅이 겸상을 받든지, 하다 못해서 개다리 외상이라도 받으면서 자란 우리네이건만 이즈음 민간인 생활은 객지생활의 어쩔 수 없는 설움으로 치부 하드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잠자리는 야전군 생활과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우리를 직접 억압하는 총칼이 없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유예된 억류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우리의 할 일이 별도로 없으니 눈앞에 벌어지는 일손 돕기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이 땅을 택한 것은 아닌데 싶어서 서글프다. 그렇다고 당장 무슨 수를 낼 수 없는, 병아리 국민인 것을 우리가 잘 아는 까닭으로 오늘도 도리깨질을 하면서 우리가 묶고 있는 이 마을의 돌봄에 작은 보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에 콩 타작마당에서, 새참 시간에 쉬는 도리깨를 힘겹게 받쳐 들고 돌릴 때 도리깨아들은 으레 내 발을 때리거나 옆으로 뻗치며 엉뚱하게 엉켜서 옆에서 일하는 사람의 옆구리를 찔렀다.

또 힘으로 아들을 돌리려면 도리깨채를 힘 있게 잡고 어깨 위 앞과 뒤로 휘둘러야하는데 작은 키에, 없는 힘 역부족으로 한 참을 씨름하다가 참 시간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꾼들에게 도리깨를 빼앗기곤 했던 것이 나의 도리깨 경험의 전부다.

 

헌데 나는 지금 만사를 제치고 한몫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도 눈칫밥을 못 면한다. 너무나도 잘 아는 이런 이치를 모른 체 내 작은 체구만 내세워서 몫을 외면 하긴 싫다.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하려 다짐하고 대든다.

 

누가 편들 사람이 있길 하나, 아니면 누가 동정할 사람이라도 있길 하나, 이런 생각은 아예 하질 않으니 속은 편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아서 늘 속상한다. 그래서 동료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고 나는 갑절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가며 따라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이렇게 힘든 도리깨질을 천부의 즐거움인양 즐겨열심히 하시든 아버지의 모습이 잠깐 스친다. 이런 아버지의 정신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학교 때, 알량한 공부랍시고 책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는 늦게 마당에 나오려면 어쩐지 계면쩍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 나이에 그렇게 생각할 것까지는 없었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 때의 상황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도리깨자루가 또 갑자기 얼어붙듯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버지는 씽끗 한번 웃으시면 그 날의 건강상태는 좋으신 날이다. 벼 타작마당에서도 인부들이 여럿이 쉬고 있을 때 잠시 몸을 빼서 북데기 속에 묻혀있을 벼이삭을 한 알이라도 떨어내려고 도리깨질을 혼자 하시는데도 뒷모습만 바라보며 모른 척 스쳐 지나야하는 나의 거동, 짚단을 묶는 팀 옆에서 짚단 사이사이에 끼어 들어간 꼬부라진 벼이삭을 가려내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외면하고 학교로 발길을 옮겼던 나, 이런 짤막한 일이 왜 잊혀지지 않고 오늘 이 보리타작 마당에서까지 영향을 주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동료들이 쉬는 틈에도 어설픈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어린 그때보다는 한결 쉬워진 것은 그만큼 자랐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를 보면서, 자수성가하시는 아버지께서 도리깨를 잘 다룰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서는 지금 나와 같은 어른들 틈에 끼여서 제몫, 한몫을 다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모와 자격지심으로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나는 아직 혼자 타박타박 두들기며 도리깨질을 익힌다. 껄끄러운 북데기를 도리깨채로 뒤적인다.  ‘대한민국국민’으로써 새로이 첫 발 내디딤이 이렇게 북데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북데기가 내 앞날을 예시(豫示)하는지도 모른다. 이러고도 보리알 한 알도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을!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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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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