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공장

외통궤적 2008. 8. 1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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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4.020103 화투공장

하루 사이에 별수 있을까? 까만 제대복을 입고 괴나리봇짐 같은 보자기를 들고 밤차를 탔다. 대구역에 내렸다.

대구는 난생처음으로 밟아보는 고장이라서 얼떨떨한 데다가 특색의지형이 없어서 찾아다니기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동서남북을 가릴 수 없는 이상한 곳이다. 사방이 그만그만한 산으로 둘려서 넓은 하늘을 이고 있다. 고작 아침과 해거름에서야 해를 기준으로 방위를 가늠하게 할 뿐이다. 한낮이나 흐린 날의 대구는 방향조차 잃기 쉬운 곳이다.

딴에는 일자리를 구한답시고, 수용소 단짝 ‘이병순’ 친구가 군대 나오기 전까지 있었다던 그곳, ‘대구시 동구 신천동’의 ‘피란민’ 촌을 찾았다. ‘이병순’이가 어떻게 해서 그곳까지 흘러갔는지 모르지마는 군부대에서 만난 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거기엔 많은 동료 친구가 있을 것이란다. 화투를 만드는 수공업 공장이라서 많은 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공장주는 함경도에서 나온 피난민으로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할 것이란 귀띔까지 해준 터였으니 한번 찾아가서 필요하면 날 써보라고 할 심산이었고 그 기대는 적중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이따금 이따위 일이나 하려고 제대했는가 싶어서 서글프기도 했지만, 우선은 내가 안주해서 사주(四周)를 살피고 내가 움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뛸 수 있을 터라고 생각하여 그대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호강 줄기의 가지인 ‘용계천’의 제방을 새까맣게 덮어 깔아 들어선 기름종이 지붕의 난민촌은 객차처럼 길게 강을 따라서 이어지고 겹겹이 포개서 붙어있다. 특색이 없어서 동 호수를 모르면 전혀 알아볼 수 없다. 똑같은 바라크 집으로 지어놓고 그 집을 돼지우리 모양으로 좁게 한 토막씩 칸 막아 그 안에 부엌과 방을 드린, 간이 수용시설이다. 허리를 굽혀서 들고나는 부엌문, 이 집은 애초엔 부엌 없이 방 한 칸씩 나뉘었나 본데, 그것을 난민들이 부엌을 달아내서 늘렸다. 해서 알록달록한 부엌 위의 지붕이 됐고 자연히 물매가 낮아지면서 기어들고 기어냐는 집이 되었나 보다. 맞은편에 마주 뚫린 문이 대문이자 방으로 드는 방문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살림집 중 제일 간단한 구조다. 거기다가 부엌 위에 다락을 매어 쓰고 있으니 기막힌 장난감 집 같은 입체형 집으로 둔갑하고 있다.

지금 난 가릴 수 있는 한, 가리고 넓힐 수 있는 한 넓히려는, 난민들의 처지를 모른 체 그들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이다.

‘이후림’. 아저씨는 날 반가이 맞았고 이미 사양길에 들어서서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옆집 한 칸도 남에게 넘기고서 단칸방에서 부부가 함께 가내 공업을 하는 실정이다. 일하든 직공(?)들은 죄다 군대에 가고 지게 벌이 전선으로 나갔다. 지금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서도 나를 위해서는 크나큰 선심은 아닐지 모르지만 찾아왔으니 기꺼이 함께 있겠다는 눈치다. 그것은 손은 많을수록 좋은 수공업이니까 입에 풀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닥친 나의 처지와 그의 배가 맞아떨어졌기에 이룩됐다. 그래서 바로 머물게 됐고 괴나리봇짐도 풀어놓게 됐다.

희망도 없고 보장도 없는 나날이지만 난 여기를 거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일이 있을 때는 그런대로 방 한구석을 차지하여 궁둥이라도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있지만 일이 없을 땐 불문곡직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무작정 거닐면서 기웃거리며 닥치는 대로 묻고 비집어 파서 알아보고 다니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때가 정확하게 끼니때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이 지켜야 하는 스스로 약속이다.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사서 고생이라더니 나는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젊은이 거의 호구(糊口)의 목적으로 군에 머무르질 않는가?! 내 이 무모한 거동이 어떤 행운과 연관 지어질 것인가? 아득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세상에 있을 것이라고 믿어 만족하려 들지만, 아무래도 난 지금 상황을 수용할 수가 없어서, 밤마다 줄담배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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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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