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복

외통궤적 2008. 8. 1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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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1.020101 제대 복

전우들은 작별의 인사로 떠들썩하다. 부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 얼굴로, 번갈아 나를 얼싸안고 어깨를 두들기며 격려한다. 부대 모든 전우는 나에게 어떻게, 무슨 말을 나누어야 좋을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 실 그들은 나를 맞이할 이 없는 허공에 떠미는 것 같았을 것이다. 정말로 아쉬워했다.

 

나도 섭섭했다. 이를 악다물고 눈물을 감추었다. 1956년 여름의 전곡 0000부대의 제대신고식은 이채로웠다. 처음 있는 일, 새까만 바지 위에 까만색의 앞깃이 넓은 양복 풍의 웃옷은 군인의 신분을 민간인으로 둔갑시키기에 충분했다. 까만 머플러가 옷에 달려서, 목과 앞을 가리도록 하는 가리게 천이 붙어있는 신식 양복이다. 신은 황갈색 미군용 짝짝이 단화를 얻어 신고 손에는 보자기를 들고 있다. 머리엔 까만 팔각 모자를 쓰고 있다. 어딜 내놔도 알아 볼 수 있는, 반은 군인 같고 반은 민간인 같은 제대병들이다.

 

최초로 시도되는 복식(服飾)의 유별함이 오히려 나를 한동안 편안하게 할는지도 모른다. 갈 곳이 없는 제대병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나를 아는 장병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차라리 떠나는 나는 내친걸음이니 홀가분하다. 미련은 버려야한다.

 

자! 이제 어디로 발길을 옮겨놓아야 하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몰라도 무언가 풀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한동안은 기차도 무료요 밥도 무료다. 역전의 장병 휴게소에선 얼마든지 잘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 기간 안에 다닐 수 있는 곳은 다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주로 야간에 운행되는 군용열차에는 휴가 장병과 외출 장병이 대부분이다.

 

흰쌀에 뉘 섞이듯이 객실 하나에 한사람이 있는지 마는지 하게 드물다. 그래서 차안의 병사들은 이 이상한복장의 나를 흘겨보며 궁금해 한다. 알만한 위치에 있는 군인은 알 것이지만 이상한 눈으로 보는 그들을 내가 의식할 이유는 없다.

 

나는 이미 이런 시험대에 자청해서 올랐으니 무슨 토를 달겠는가?  흔들리는 병사의 고개가 일제히 움직여서 군인 같다. 모두들 고향의 꿈을 꾸고 있지만 나만 오로지 내일 아침의 일과가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은 종착역까지 가자! 그리고 생각하자!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귀향? 어디로 귀향하나?

 

누가 큰 소리로 묻기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누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온다면 속이라도 시원하련만, 도대체 아는 사람, 이 제대복을 알아보는 사람조차도 없고 누구하나 물어오는 이도 없다. 그럴 것이, 그들은 나를 행운의 귀향길로 부러워할 것이고 그들도 언제 저런 검은 옷을 입어보나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은 옷을 입었다함은 곧 고향으로 달려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산 대구 대전 서울, 곶감 꿰듯이 꿰어가면서 훑어 그려봐야 그 이름 각각 두자뿐이다. 거기에 아는 이름 한 사람도 없으면서 용감히도 뛰쳐나온 그 용기, 내가 생각해도 무모하다. 그런 것을 뚫기 위해서 나선 난데, 그게 어쨌단 말이냐? 자문하고 자답하면서 ‘캄캄한 내일을 열고자 이 한밤을 달리고 있지 않느냐’로 결론짓는다.

 

모든 수단을 강구해본다. 행정기관을 찾는 것, 이북사람이 모인 시장을 찾는 것, 고향사람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매달리고 싶다.

 

옳거니! 얼마 전에 만났던 수용소 안에서의 단짝이었든 ‘이병순’이 군대 오기 전에 잠시 있었다던 대구의 피난민촌의 어느 화투공장도 그 후보지다. 또 ‘거창군 신원면 양지리’의 ‘신성범’의 고향마을의 ‘국민학교’ 선생질도 우선은 그 대상이다. 일단은 내가 발을 붙여야 될 테니 발붙일 곳을 찾을 수박에 없다. 나는 얼음 위의 팽이와 같아서 돌리지 않으면 죽고 말 것이란 생각으로 온 머리가 꽉 차있다.

 

 

철교 위를 달리는 기차소리가 요란하고 긴 기적이 울린다. 이 철교를 지나면 곧이어 내가 자란 내 고향 ‘염성’역이다. 잠시 난 고향 가는 기차를 타고 간다. 꿈의 고향 행 기차는 언제 타볼 것인가?  깊은 한숨이 창가에 흐르는 불빛을 어리고 뿌옇게 서려가며 가득 차 온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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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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